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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함께하는 일상
[공지] 장로교(계약) 청교도 보수

김혜정
2018. 12. 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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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 중심 신학
이병규 목사님의 신학사상과 신앙은 성경 중심입니다. 성경에서 시작해서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성경이 머무는 곳에 머물며, 성경으로 마쳤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연구하였으며, 교회에서나 신학교에서 성경을 많이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로 신구약성경 전권에 대한 강해서와 신구약 설교집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신구약성경 전체 강해서를 출판한 한국 기독교 역사의 신학자나 목사는 2-3 명에 불과하며, 전 세계적으로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신구약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가르쳤으며, 성경말씀을 전할 때도 순수한 말씀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바울 사도와 같이 아무 것도 섞지 않고 말씀 그대로 가감하지 않았으며,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려고 인간의 방법으로 하지 않고 성경의 순수한 그대로만 전했습니다(고후2:17, 고전2:3-5).
신구약 성경말씀을 신앙과 목회와 삶의 유일한 법칙으로 삼았습니다.
2. 기도 중심 신학
이병규 목사님은 목회를 시작하면서 매일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하였으며, 매일 새벽 예배 후에는 연세대 뒤편 봉원산에 있는 기도실에 올라가서 11시까지 기도하였습니다.
또한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기도원 산속에 있는 기도실에 일주일에 2일 이상 머물면서 기도했습니다. 고령으로 새벽예배를 인도하지 않을 때에는 매일 새벽 4시에 봉원산 기도실에서 11시까지 기도했습니다. 그의 영권은 기도를 통한 “신령한 세계에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산에서 기도하는 생활,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것을 강조하였으며, 신학생을 비롯한 모든 교역자들은 하루에 2시간 이상 기도, 성경 10장 이상 읽을 것을 특별히 강조하였습니다.
3. 구원 이뤄나가는 신앙
이병규 목사님은 구원 이뤄나가는 도리를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 사함 받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요1:12, 5:24). 이것을 기본 구원이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기본 구원을 받은 자는 완전한 천국백성이 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보통 신자들은 이 단계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구원 이뤄나가는 도리는 기본 구원을 받은 성도가 죄에서 점점 벗어나는 것이며, 중생한 영이 점점 자라나고, 신앙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목표는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나는 것입니다(엡4:13,15).
기본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찰나적으로 일어나지만,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일은 일생토록 힘써야 하며, 믿음을 쓰는 만큼 구원이 이뤄지게 되며, 하늘나라 가서 누리는 영광과 존귀는 구원을 이루어나간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마5:19, 고전15:39-41).
4,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신앙.
이병규 목사님은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중생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중생은 하나님의 단독적인 역사이며(엡2“4-5, 요1;13),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다는 것을 말합니다(요1:13, 3:5,8).
중생의 요소는 물(요3:5, 벧전1:23)과 성령(요3:5-8, 6:63), 곧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사람은 범죄할 수 있으나, 중생한 영은 절대로 범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1)완전하신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신적출생이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요일3:9)“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으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그는 죄를 지을 수 없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이다”
3)하나님께로부터 나신 분이 그를 지키시기 때문입니다(요일5:18).
4)하나님은 영 전체를 새 생명으로 다시 살려 주셨기 때문입니다(엡2;1).
5)중생한 영은 다시 죽지 않기 때문에 범죄하지 않습니다(롬6:23).
(요5:24)“내가 진정으로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의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지고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니, 그는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5. 청교도적인 경건신앙
이병규 목사님은 청교도적인 경건신앙을 몸소 실천하였으며, 가르쳤습니다.
미국에서 청교도적인 신앙을 가진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선교함으로 우리나라의 초대교회는 청교도적인 경건한 신앙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병규 목사님은 우리나라 초대교회의 청교도적인 경건신앙을 지키며, 그 신앙을 계승하려고 힘을 많이 쓰셨습니다. 청교도들이 성경에 기초한 거룩한 삶을 추구하듯 신앙생활의 기본적인 세 가지를 항상 강조하셨습니다.
1)철저한 주일 성수 2)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 3)온전한 십일조 생활입니다.
이병규 목사님은 주일성수 신앙에 철저하셨습니다.
이북 공산주의 정권에서 1948년 11월 3일 주일, 국민투표를 하도록 공포했습니다. 교회를 박해하고자 고의적으로 주일을 택한 것입니다. 전도사 시절 목숨을 걸고 그는 주일을 거룩히 지키도록 가르치고 교인들이 투표에 참석하지 않도록 앞장서다가 붙잡혀 감옥에 들어가 고난을 받기도 하셨으며, 명륜교회 시무 시에는 주일날 화폐개혁이 있었으나 끝까지 주일성수 했습니다.
주일에는 세상일을 하지 않고, 오락을 금하며, 물건을 사고파는 매매행위를 금했습니다.
주일성수는 십계명의 중심계명이며, 현대의 선악과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의 안식일과 신약시대의 주일에는 연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육일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 째 되는 날 안식하심으로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으나, 신약시대는 주일로 변경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오랜 후에 다른 날을 정하여 이레 중 첫날에 안식일을 지키게 하였고(히4:7-10), 전에 계명이 연약하여 폐하였기 때문입니다(히7:18).
또한 주일에 성부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셨고(계1:10), 성자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며(마28:1), 보혜사 성령이 강림하신 날이 주일로서 3위1체 하나님이 합동해서 구원역사를 완성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행2:1). 그래서 신약의 사도들도 처음에는 토요안식을 지키다가 후에는 주일을 안식일로 지켰습니다(고전16:2, 행6:7).
6. 전 천년설
이병규 목사님은 전 천년설을 주장하셨습니다. 전 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전에 있다는 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악한 죄악세상은 심판하고, 마귀는 천년동안 무저갱에 잡아 가둠으로 세상을 미혹하지 못하게 되어 천년동안 죄 없는 시대가 됩니다. 그 때에 구원받은 성도들은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땅에서 천년동안 왕 노릇하게 됩니다. 계시록 19장 11-21절에서 주님의 재림이 있으며, 20장에는 재림 후에 있을 성도의 부활과 천년왕국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천년왕국은 이 땅위에 천년동안 이루어지는데 죄악의 하늘과 죄악의 땅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 곧 죄 없는 새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도의 영혼 구속은 중생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몸의 구속은 부활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만물 구속은 천년왕국이 임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천년왕국 임하기 전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다는 전 천년설이 성경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7.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고 추도예배를 드리지 않는 신앙.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성경에서 금하고 있습니다.
1)이방인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고전10:20)
2)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는 우상의 제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고전10:18)
3)성령께서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고전15:29)
또한 성경은 추도예배를 금하고 있습니다.
1)하나님만 예배의 대상이며, 하나님 외에 죽은 조상이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출20:4-5)
2)추도예배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형식만 빌린 죽은 자를 위한 제사의식입니다.
3)죽은 자에게 제사함은 바알브올을 숭배하는 죄입니다(시106:28-29).
4)아브라함이나 이삭과 야곱과 같은 믿음의 조상들이 추도예배를 드린 예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하며, 추도예배는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잘못된 의식입니다.
오늘날 진리가 어두워지고 성경을 소홀히 하며, 종교 다원주의로 교계가 어지러운 이 시대에 이병규 목사님의 성경 중심의 보수 정통신앙과 신학사상을 계승 발전시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워나가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진리를 밝혀나가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사상을 기본으로하여 300개의 지교회와 해외 20여개 나라 선교 파송및 광주에 만평의 기도원을 원로,은퇴 목회자의 케어 타운의 운영과 특히 무료 인재 신학 인재 양성 기관으로 신학교 신학대학 신학 대학원을 설립 하여 주의 복음자를 양성하는데 최우선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또한 바른 진리를 보수 하기위하여 바른 성경을 편잔 발행및 강해서 66권 성경 66권의 설교집 그리고 각 제자 목회자님들의 이어지는 영감있는 영서의 편찬으로 사상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가르치고 성경대로 믿으며 성경이 지시하는대로 행하는 신학 사상으로 하나님과의 언약 게약을 절대로 믿고 마지막 주님오시는날의 그날까지 우리의 부족한 믿음이지만 예배를 이어 나가려는 교단이며, 사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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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한 자는 범죄치 않음
요한일서 5:14-21
14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
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을 줄을 또한 아느니라 16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17모
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18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
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 하느니라 19또 아는 것
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20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
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21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1.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얻음
본문 14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다 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안 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구하는 것은 100% 다 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기를 힘을 써야 됩니다. 즉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3에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욕심으로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면 그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사람의 뜻대로 구한다고 다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찾습니까? 성경에서 찾습니다. 또 하나님의 섭리와 성령의 감동과 신앙양심으로 찾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을 구할 때에는 얼마든지 주십니다.
본문 15절에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구한 것은 다 이루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은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 것은 반드시 주실 것이므로 이미 받은 줄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2.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
본문 16-17절에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 길을 걸어가는 성도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입니다.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는 중생한 신자가 짓는 죄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또 중생한 영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겨 있기 때문에 (요 5:24), 다시는 사망이 없습니다(요 11:25-26). 그러므로 옛 사람을
따라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영적 사망에 이르지 않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
또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는데, 이 죄는 믿지 않는 불택자의 죄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죄 사함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롬 6:23). 사람에게는 원죄가 있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죄 하나를 범했을지라도 그 죄 값으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
다. 현세에서도 영이 죽은 자이고, 내세에서는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자 중에서도 언제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안 믿어도 다음에 예수님을 믿을 사람 같으면 택한 백성이며, 그때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입니다. 택한 백성의 죄는 예수님께서 그 죄 값을 물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택자의 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사함 받을 수가 없습니다. 즉 사함 받지 못하는 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또한 사함 받지 못하는 죄는 성령 훼방죄와 짐짓 짓는 죄, 그리고 불택자의 죄로 죽을 때까지 예수 믿지 않는 죄입니다. 이러한 죄는 사함 받지 못합니다. 성령 훼방 죄는 성령의 역사인 줄을 중심으로 알면서도 죽을 때까지 거역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면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데, 죽을 때까지 성령을 반대했기 때문에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또 짐짓 짓는 죄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0:26-27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라고 하였습니다. 짐짓 짓는 죄도 성령의 역사인 줄 알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줄 알면서 고의적으로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반항하는 죄입니다. 성령 훼방 죄나 사망에 이르는 죄나 짐짓 짓는 죄는 다 같은 것입니다.
성도가 짓는 죄에 대해서
하여간 죽을 때까지 믿지 않으면 사함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믿으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아무리 성령의 역사를 반대 하다가도 회개하고 믿으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즉 누구든지 회개하고 믿는 사람은 전부 다 죄 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중생한 성도가 짓는 죄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짓는 죄는 이미 예수님이 죄 값을 다 지불했기 때문에 지옥 가는 죄는 아닙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이 짓는 죄도 죄는 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 값을 다 물어 주신 죄이기 때문에 지옥에는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의 값을 다 물어 주셨지만, 죄이기는 하므로 하나님께서 회개 시키게 하시려고 물질문제, 자녀문제, 여러 육신의 문제 등으로 징계 하십니다. 그런데 징계해도 회개하지 않으면 쫄딱 망하게 만드십니다. 마지막에는 죽는데 이르게 하십니다. 그래도 택한 백성이므로 불 가운데서 벌거벗고 나온 것과 같은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일이 없도록 삼가 조심하며, 생명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3.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범죄치 않음
본문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 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중생한 자를 가리킵니다. 중생한 자라는 의미는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난 자, 즉 거
듭 난 자입니다. 거듭 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죽었던 영혼이 살아 난 것입니다. 또한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라고 하였는데, 중생한 영은 범죄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라는 뜻은 성령께서 성도를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4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신 자 곧 성
령께서 지키시기 때문에 악한 자가 감히 만지지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은 범죄치 않는다는 것이 오늘 본문 말씀에 확실히 나타나 있습니다. 범죄치 않는다고 했으면 범죄치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되겠는데, 간혹 범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생한 영혼이 범죄치 않는다”라는 것을 “습관적이고 상습적으로 범죄하지 않
는다. 그러나 혹시 실수로 범죄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이처럼 범죄치 않는다고 확실히 나와 있는데 이것을바꾸어 해석한 것은 진리에 바로 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이 범죄 하는 것은 뭐가 범죄 하는 것일까요? 믿는 사람은 중생한 영과 육신의 부패성이 있는데 육신의 부패성이 범죄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범죄하는 것은 육신의 부패성, 곧 옛사람이 범죄하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은 새사람이
기 때문에 범죄하지 않습니다. 중생한 영은 하나님만 좋아하고 하나님 말씀만 좋아합니다. 또한 중생한 영은 죄를 절대 반대 합니다.
따라서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자기 속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새 사람은 선을 행하려 하고, 옛 사람은 죄를 지으려 하여 서로 싸우다가 옛사람대로 살면 죄를 짓고 새 사람대로 살면 의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 속에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범죄 하는 것은 옛 사람이고 이것을 따라가면 범죄 하는 길입니다. 의를 행하는 것은 새 사람이고 중생한 영혼을 따라가면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확실한 말씀입니까?
또한 중생한 영혼은 악한 마귀가 만지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 한 성구만 믿어도 아주 참 좋습니다.
전에 명륜교회에 강희숙 권찰이라고 있었는데 삼선교에 살았습니다. 나이가 한 삼사십쯤 되었는데 혼자서 새벽예배에 나오는 젊은 여자였습니다. 삼선동에서 명륜동으로 오려면 동소문고개를 넘어야 됩니다. 그런데 혜화동 로타리쯤 오다보니 어떤 남자 한 명이 따라오더랍니다. 그래서 빨리 걸었더니 또 빨리 따라오더랍니다. 거의 다 따라 잡힐 만큼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난 자 마다 범죄 치 아니하는 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 도 못하느니라” 하고 이 성경말씀을 갔다 댔다고 합니다. “악한 자가 감히 만지지도 못하는 데 어딜 따라오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남자가 ‘이 여자는 예수쟁이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대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 남자는 예수 골수분자(骨髓分子)를 ‘괜히 붙잡았다 큰일 나겠다’고 생각하고 달아난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잡힙니다. 그러니까 성경말씀으로 마귀를 이겨야 합니다. 이 한 구절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생활
본문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고, 온 세상은 마귀에게 속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올라갑니다. 세상은 마귀에게 속했기 때문에 내려갑니다. 성도는 올라가고 세상은 내려가니까 서로 마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난과 핍박이 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그래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따라서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온 세상과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다 마귀에게 속한 줄 알아야합니다. 불신자속에 역사하는 공중에 권세 잡은 자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2:2에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불순종의 아들들, 즉 말하자면 불신자 안에서 역사하는 영은 공중 권세 잡은 마귀입니다.
또한 예수 믿는 사람도 불순종 하게 되면 마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인데 반해 불순종 속에는 마귀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지 악한 자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악한 자, 마귀에게 속한 불신자를 따라가면 안 됩니다. 불신자는 악한 자에게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
은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야지 불신자가 하자는 대로 따라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추석을 지키려고 무덤에 가서 절하거나 제사 드리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성도는 제사 안 지내고, 차례도 안 지냅니다. 세상 사람들은 차례를 지낼 때 조상이 와서 먹는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귀신 섬기는 것이고 마귀 섬기는 것입니
다. 무덤에 가서 절하는 것도 마귀에게 하는 것입니다. 조상은 벌써 세상 떠나서 천당을 가거나 지옥을 갔지, 거기에 있을 리가 없습니다.
육신은 곧 장막 집이라 했는데, 죽은 사람을 묻어 놓고 그 앞에 절하고, 입었던 의복 앞에 절하는 것은 모두 우상을 섬기는 행위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에 절을 하거나 제사 음식 먹는 것 모두 안 됩니다. 온 세상이 마귀에게 속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요새 예수 믿는 사람들도 무덤에 가서 절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귀 섬기는 것인지 모르고 하나님께 죄 짓는 것인지 모르고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묘지가 일산에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장례 지내러 갔었는데, 열두 명 정도 되는 여자들이 무덤 곁에 서서 찬송을 한참동안 불렀습니다. 인도 하는 사람은 아마도 전도부인 같았습니다.
한참 인도 하더니 그 다음에는 “절해라, 절해라” 하니까 전부다 넙적 엎드려서 절을 했습니다. 찬송을 부르지 말든지 절을 하지 말든지 둘 가운데 하나를 해야 될 것 아닙니까? 마귀 섬기려면 뭐하려고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모르고 죄를 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르고 짓는 죄도 죄입니다. 양잿물을 모르고 먹어도 죽습니다. 모르고 지어도 죄이고, 죄 값은 반드시 사망입니다. 모른다고 해서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모르는 것은 자기가 배우지 못해서 모르는 것이고, 또 성경을 보지 않아서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죄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말씀을 제대로 알아서 죄를 짓지 않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영적 지각 있는 생활
본문 20절에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에게 영적 지각을 주었습니다. 참된 자는 하나님이신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또한 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참 하나님을 알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 안에 있게 됨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고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우상을 멀리하는 생활
본문 21절에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우상 섬기는 것이 큰 죄이므로 우상에서 멀리 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 하라”는 것은 자신이 우상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더 귀히 여기는 것이 우상인데 자기가 우상이 되면 안 됩니다. 또한 자기 남편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남편이 우상이고, 아내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
하면 아내가 우상이고,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자녀가 우상이고,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돈이 우상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우상이 되지 않도록 항상 우상에서 멀리 떠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에스겔 14:2-4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그런즉 너는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
에 무릇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많은 대로 응답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자기 마음과 자기 생각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을 따라가지 않고 항상 하나님 말
씀을 따라가는 생활을 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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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한 영은 범죄치 않음
본문 9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했습니다. 의인은 그리스도에게 속했고 죄는 마귀에게 속했다고 했습니다. 의를 행하면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이고, 죄
를 지으면 마귀에게 속한 자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씨’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났다는 것은 거듭난 것을 말하는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새로 났다고 했
습니다. 거듭난 영혼은 범죄 하지 않는데,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어서입니다. 씨는 말씀입니다. 말씀인 물과 성령으로 중생했고 말씀이 그 속에 있기 때문에, 중생한 영혼은 범죄 하지 않습니다.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했습니다. 거듭났다고 했습니다. 중생되었기 때문에 범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혼은 범죄 하지 않지만 믿는 사람이 육체의 정욕대로 살면 범죄 합니다. 중생한 영혼은 새사람이고, 육체의 정욕은 옛사람입니다. 육체의 부패성이 옛사람입니다. 옛사람과 새사람이 있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새사람으로 살면 범죄 하지 않고, 옛사람으로 살면
범죄 한다고 했습니다. 왜 범죄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거듭났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육신의 부패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부패성으로 살면 범죄 합니다. 반대로 영으로 살면 범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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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은 거듭나는 것임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남
‘거듭났다’는 것은 중생했다는 말씀인데,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씀입니다. 믿기 전에 영혼은 다 죽은 영혼이므로 중생하지 못하면 하늘나라 갈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죽었는데 어떻게 하늘나라를 가겠습니까? 그래서 니고데모에게 “너희가 거
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가 없느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중생하느냐 물어보니까 무엇으로 한다고 했습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요3:5).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했는데, 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5장 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하였고, 또 야고보서 1장 18절에,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으로 거듭납니다. 말씀으로 중생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았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썩지 아니할 씨가 뭐라고 했습니까? 말씀입니다. 거듭날 때 썩지 아니할 씨로 우리가 거듭나는데, 그 씨는 하나님
의 말씀입니다. 죽지 않는 항상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거듭나는 것이 분명합니다.
한번 중생한 자는 다시 죽지 않음
본문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았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항상 살아있는 씨로 거듭났기 때문에 이것은 죽지 않습니다. 한번 중생한 영혼은 절대 지옥에 가지 않고 절대 죽지 않습니다.
한 번 살아난 것은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가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됩니까? 중생한 영혼이 죽습니까? 죽지 않습니까?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지 않습니다. 죄를 지어서 지옥가게 되면 또 중생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중생을 해야 하는
데, 중생은 여러 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은 한 번만 하는 것입니다. 중생은 단회적으로 완성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죄를 지어도 중생한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구원은 받아 놓은 것입니다.
죄는 중생한 영이 짓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부패성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육신의 소욕, 육신의 부패성, 옛 사람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새사람은 중생한 영인데, 중생한 영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중생한 영은 언제나 의만 좋아하고 하나님만 즐거워하고 의만 이루어나가려고 합니다. 죄는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중생을 했는데 거기에 왜 죄가 있겠습니까? 말씀이 죄가 있습니까? 성령이 죄가 있습니까? 중생의 요소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인데 거기 어떻게 죄가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말씀 속에 어떻게 죄가 들어가고 성령 속에 어떻게 죄가 들어가겠습니까? 중생한 영혼은 죄가 없습니다. 죄는 육신의 부패성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육체의 욕심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의 욕심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욕심이 마음을 이용해서 나오는데 그것을 언제나 제해야겠습니다. 제하고 그 마음이 언제나 중생한 영혼에 이용당해야 됩니다. 그래야 선한 마음이 됩니다.
그 마음이 죄악성에게 이용을 당하면 악한 마음이 되고 중생한 영혼에 이용당하면 선한 마음이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선한 마음이 있고 악한 마음도 있습니다. 부패성에 이용되면 악한 마음, 중생한 영에 게 이용이 되면 선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악한 마음 선한 마음이 있는 것은, 마음이 하나인데 중생한 영에게 이용 될 때는 선한 마음이고 그것은 깨끗합니다. 죄악성에게 이용되고 욕심에게 이용이 될 때는 악한 마음인데 그것은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음은 하나인데 어디에 이용되느냐에 따라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생한 영은 말씀과 성령으로 되었기 때문에 항상 살아있습니다. 절대 죽지 않습니다. ‘항상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왜 죽겠습니까? 한번 중생한 영은 죽지 않습니다. 지옥 가지 않습니다. 타락되지 않습니다.
한 번 중생했어도 죄 지면 타락해서 지옥 간다는 설이 있는데, 천주교, 루터파, 알미니안파들이 한 번 중생한 사람도 죄지으면 지옥 간다고 합니다. 우리는 칼빈주의입니다. 칼빈주의는 한번 중생한 사람은 절대 지옥가지 않습니다. 이런 교리를 믿는 교회가 장로교입니다.
골로새서 1:13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하늘나라에 옮겨 놓았다고 했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영이며, 하나님 나라에 옮겨 놓은 것이고, 하늘나라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털 끝 만큼도 더러운 것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라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중생한 영혼이 이미 구원받았고 지옥가지 않는다고 했으니, “그러면 예수님 믿는 사람이 마음 푹 놓고 죄를 져도 되지 않느냐?”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옛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인데, 그렇다고 지옥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죄를 지으면 징계를 하십니다. 아들이 잘못하면 채찍으로 때려서라도 그 아들을 바로 세우려고 합니다. 아들이 더러운 것을 묻히고 들어오면 불구덩이에 집어넣는 아버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더러운 것들이 묻었으면 다 씻어서 고쳐주려고 하지 않
겠습니까? 예수님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시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더 큰 징계를 주십니다. 쫄딱 망하게 됩니다. 영혼만 구원 받고 세상에서 쫄딱 다 망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중생한 사람은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지 않으십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시지만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절대로 가만히 두시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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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 예배 하지 말라
추도예배는 제사 양식만 고쳐놓은 겁니다. 오늘날 추도예배 드리는 교회가 많이 있는데 그것은 방식만 고쳐놓은 것이지 제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청주에 있는 상당산 기도원 원장이 한목사인데, 그 목사님이 기도원에 계셨을 때에 제가 갔었는데, 자기는 보수 평양 신학
교를 졸업 했다는 것입니다. 평양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교회 일을 한 12여 년 간 보시다가 연세가 많아서 그 교회를 사면했는데, 후임으로 기독교 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후임 목사가 다 뒤집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후임 목사가 와서 추도예배를 하는데 연합추도예배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당에 쭉 상을 차려놓고, 여러 교인들이 조상들 이름을 다 써 붙이고 촛불을 켜놓고 다 절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바로 가르쳤는데 후임이 와서 다 뒤집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소속이 중요합니다. 또 홍은동에 성결교 교회가 하나가 있었는데, 그 목사님은 우리한테 여러 해 동안 와서 배웠는데, 우리에게서 배운 대로 교회를 하였고, 사경회도 우리 교단 목사를 데려다가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그 목사님이 병이 나서 그 교회를 사면했습니다. 그리고 후임이 성결교에서 왔는데, 추도예배를 자기아버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조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등 일년에 제사가 많지 않습니까? 제사식으로 추도예배를 합니다.
제사하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추도예배도 방식만 다르지 제사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도예배 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는 추도예배가 없습니다. 아브람이 죽은 다음에 이삭이 추도예배 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죽은 다음에 야곱의 열 두 아들들도 추도예배 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윗이 죽은 다음에 추도예배 하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당한 다음에 추도예배 했습니까? 베드로가 순교당한 다음에 제자들이 추도예배 했습니까? 죽은 사람을 기념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은 예수 믿었으면 천당 갔고, 안 믿었으면 지옥 갔는데 추도예배 한다고 해서 오겠습니까? 죽은 사람 기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신명기 26:14에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 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라고 하였고, 시편 31:12에 “내가 잊어버린바 됨이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파기(破器)와 같으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죽은 자를 위해 성물을 쓰지 말고,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추도예배도 방식만 다르지 정신은 제사와 같은 것입니다. 천당 갔는데 뭐가 슬퍼서 제사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 사상이 죽은 자를 기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단 천당과 지옥에 갔으면 끝입니다. 죽은 자를 기념하는 것은 성경에 어긋난 것입니다. 믿음을 잘 지킨 사람들은 추도예배 하지 않았습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제 4회 총회록에 보면 추도예배 하지 말라는 게 있습
니다. 부모의 죽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음식을 차리거나 손님을 초대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추도예배를 하면 치리한다고 하였습니다. 한국총회가 처음에 이렇게 했습니다. 이북에서도 이기선 목사님이 추도예배 하는 것을 못 보았습니다. 김현봉 목사님이추도예배 했습니까? 바로 믿으려는 성도는 추도예배 안합니다. 추도예배하는 교회는 옳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대개 추도예배를 합니다. 한번은 전화가 왔습니다. 유명한 목사님인데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어 추도예배를 해야겠는데 나보고 와서 좀 축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난 안한다”고 하였습니다. 고려측 석원태 목사님도 추도예배 안 한다고 합니다. 바로
믿으려는 생각이 있으면 추도예배 안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다른 사람의 양심을 망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므로 먹으면 안 되고, 추도예배도 죽은 사람을 기념하지 말라고 하였으므로 하면 안 됩니다. 성경은 죽은 사람을 기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고 추도예배 하지 말고 바로 나가야 합니다.
다른 교회에서 온 교인이 추도예배를 해달라고 하면 안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을 붙잡으려고 교역자가 추도예배를 해주면 신앙 양심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추도예배가 잘못되었음을 가르쳐서 안 하게 해야지, 목사가 따라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그 교회가
몽땅 다 흑암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진리를 바로 세워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교회에서 합동으로 추도 예배하기 위해 예배당 안에 상을 차려놓고, 죽은 조상들 이름을 써 붙이고, 촛불을 켜놓고, 흰 옷을 입고 와서 거기다 절했답니다. 예배당이 우상 섬기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가증합니까? 추도예배 할 때에 “십자가를 붙여 놓고 하면 된다, 추도예배 안 하는 것은 불효다, 추도예배 하는 것이 효도다”라고 하고, 또 십자가를 붙여놓고 “예수님께만 기도하면 된다”고 하는데 이것도 다 우상화 된 것입니다.
전에 내가 목포에 있는 일로교회에 사경회 하러 가서 추도예배 하지 말라고 사경회 때 말하니까 그 교회 나이가 좀 든 장로님 한 분이, 목사님께서 추도예배 하지 말라는 게 옳다는 겁니다. 그 장로님이 이북에서 나오셨는데 이북에서 배운 신앙이 그것이라는 겁니다. 목포에
서는 그 장로 말씀이, 부모가 떠난 다음에 일 년 있다가 떡을 해가지고 온 동네에 다 돌린답니다. 그것은 형식만 바꿨지 제사하는 것과 똑 같은 것입니다. 추도예배도 죽기 전날 합니다. 초하룻날 죽었다고 하면 그 전 날, 그믐날 하는 겁니다. 제사와 똑같습니다. 안 믿는 사람하고 똑같이 하는 겁니다. 제사하는 방식으로 상 차려놓고 절하는 데도 있고, 촛불 켜놓고 절하는 데도 있습니다. 또 상을 차려놓고 예배 보는 데도 있습니다. 상은 왜 차려놓습니까? 천당 간 사람이 와서 먹습니까? 또 지옥 간 사람이 와서 먹습니까? 자기 부모가 믿었으면 천당 갔을텐데, 상은 뭐하러 차려놓습니까? 또 안 믿었으면 지옥 갔을텐데 상은 왜 차려놓습니까?
이것은 다 귀신 섬기는 것입니다. 제사하는 정신이 있어서 그 제사하는 방식만 고친 겁니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예수 믿으려면 추도예배 안 해야 됩니다. 성경에 어디 추도예배가 있습니까? 죽은 사람 기념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안하는 게 원리 원칙입니다. 그런데 요새 많은 교회들이 추도예배 하고 있습니다. 핍박 안받기 위해서입니다. 또 명목은 좋게 갖다 붙입니다. 즉 자손들에게 부모의 교훈을 가르치려고 한다는 명분을 내세웁니다. 추도예배 하면서 “너의 할아버지가 무슨 교훈 했다, 또 아버지가 무슨 교훈 했다, 증조 할아버지가 무슨 교훈 했다”고 하면 성경에 맞습니까? 또 목사는 일 년 내내 추도예배만 하다가 그만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목사가 기도하고, 성경 연구하고, 하나님께 바로 해야지 죽은 사람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느라고 돌아다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산 사람을 위해서 해야지, 왜 죽은 사람을 위해 일을 하느냐는 겁니다. 그러므로 추도예배는 안 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믿어야 합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믿자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믿으려면 추도예배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하였으므로 이런 것들을 금해야겠습니다. 목매어 죽인 것 먹지 말라고 하였는데, 개는 대게 목매어 죽입니다. 요새는 모르지만 전에는 거의 다 목매 죽여서, 믿는 사람들이 개고기를 안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믿음이 약한 사람이 개고기를 먹으면 “개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아무튼 네 가지를 성경에서 금했으므로 안 해야 됩니다.
우상의 제물을 모르고 먹다가도 우상의 제물이라는 것을 알면 즉시 먹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 지키는 것, 추도예배 하지 않는 것, 십일조 드리는 것, 이것이 요긴한 것입니다. 주일은 철저히 지켜야 되고,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반드시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안 바
치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한 것입니다. 믿음을 근본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바른 신앙은 주일 지키는 것, 십일조 드리는 것, 우상의 제물 먹지 않는 것, 여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추도예배 하는 것은 제사하는 방식만 바꿔놓은 것이지 제사와 똑 같습니다. 우리가 바른 진리를 받았습니다. 이 바른 진리를 세워 나가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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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 하는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잘되게 해주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잘 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잘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우러러 공경하라는 말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사람을 잘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자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은 잘 됩니다. 순종하는 믿음이 산 믿음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은 또 윗사람을 존경하고 순종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윗사람을 존경하고 순종 잘 하라고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히 윗사람을 존경하고 순종합니다. 그러면 어디를 가나 윗사람에게 순종 잘하고 윗사람 존경 잘하는 사람을 나쁘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양심을 쓰는 자
양심을 쓰는 사람을 잘되게 해주십니다. 항상 양심을 써서 정직하고 무엇이나 범사에 양심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진실한 자
진실한 사람을 잘 되게 해주십니다. 믿음직하고 진실해야합니다. 언제나 믿음직하고, 무엇이든 맡길 수 있을만한 진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람이 볼 때나 안 볼 때나, 주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진실한사람입니다. 이런 진실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지 누구에게 맡기겠습니까? 진실한 사람에게는 윗사람이 모든 것을 다 맡긴다고 합니다. 이기선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진실한 며느리에게는 쌀독과 열쇠를 다 맡긴다”고 합니다. 시어머니가 진실한 며느리에게는 다 맡기는데 진실하지 않으면 안 맡긴답니다. 진실하니까 나가 볼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진실하면 다 맡겨줍니다. 믿음직하고 양심적이고 또 순종 잘하고 경외하면 말입니다.
능하고 지혜 있는 자
그 다음에 능하고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이 믿음을 쓰면 능한 자가 되고 지혜가 생깁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능하고 지혜 있는 사람은 무엇이나 맡기면 척척 잘해 나갑니다. 믿음으로 행하고 믿음을 쓰면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바로 행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능력도 주시고 지혜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능하게 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맡겨놓으면 척척 다 하고 지혜롭게 합니다. 그리고 양심대로 합니다, 이것을 맡겨도 잘 하고 저것을 맡겨도 잘하는 것은 하나님이 지혜와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잘 참는 자
고난을 잘 참는 사람입니다. 무슨 일을 하려면 고난이 많습니다. 고난 없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고난을 달게 잘 참고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1장 8절에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고난을 잘 참고 또 고난을 통과해야 좋은 것이 옵니다. 고난을 통과하지 않으면 좋은 것이 오지 않습니다. 일 년 곡식도 삼재팔난(三災八難)을 당한다고 합니다. 일 년 곡식이 자라나서 열매를 맺으려고 하면 세 가지 재앙을 만나야 하고 여덟 가지 난관을 통과해야지 된다고 것 입니다. 무엇이나 고난과 난관을 통과하지 않고서 될 수 없습니다. 그
래서 모든 고난을 잘 참고 통과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고난을 통과해야만 축복이 옵니다. 고난을 당하지 않으면 무슨 축복이 있겠습니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충성된 자
그 다음에 마지막은 충성된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시험을 당할 서머나 교회를 향해서 감옥에 갇혀도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해도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양심대로 충성되게 하고, 무엇이나 믿음직하고 신임할만하고 무엇을 시켜도 감당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고난이 와도 잘 참고, 지혜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잘 참고 견디면서, 윗사람을 잘 공경하고 순종하고 양심 쓰는 사람이 되면, 무슨 일이나 잘 됩니다. 직장이 왜 없겠습니까? 이런 사람을 서로 데려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집에다 데려다 놓으면 집이 바로 되고, 공장에 데려다 놓으면 공장이 바로 되고, 사무실에 데려다 놓으면 사무실이 바로 됩니다. 직장에 있으면 직장이 바로 되는데 그런 사람 있으면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국가의 공무원이 되면 국가의 공무가 바로 됩니다. 군대에 가면 군대가 바로 되어 나갑니다. 이런 사람이 없어서 세상이 바로 되지 못 하는 것이지, 이런 사람이 있으면 여기저기서 서로 데려갑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형통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잘 순종합니다. 그리고 양심대로 하고 진실하고 믿음을 쓰니 지혜와 능력이 생깁니다. 믿음으로 잘 참고 충성되면 하나님이 얼마나 귀히 여기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어서 못씁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말씀대로 살고 믿음을 써서 하나님이 기뻐 하시고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신앙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창세기 39:1-23 시험을 이긴 요셉의 신앙 이병규목사 강해설교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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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병을 고치심
38년 된 병자 고친 날은 안식일이 되기 때문에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걸어간다고 핍박이 들어왔습니다.
본문 10절에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
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신 날은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안식일에 네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1절에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라고 하였습니다. 병 나은 사람이 나를 낫게 한 그가 자
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본문 12-13절에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
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유
대인들은 율법주의로 안식일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을 건져내는
일,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안식일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유대인들은 율법주의에 치우쳐서 선한 일도 알지 못하고 정죄하였습니다. 그러면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되겠습니까? 안식일이 오늘날 주일로 변경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토요일이 안식일인데 신약시대에는 주일로 변경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4:7에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팍케 말라 하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을 다른 날로 정했다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이 토요일이었는데 주일로 변경되었습니다.
히브리서 7:18에는 “전에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전에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페하였다는 것은 구약
시대의 계명은 폐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날을 정했다는 것입니
다. 신약시대에는 주일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부활로 인해서 이루어졌
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안식을 주신 날(요 20:19),
유월절 날로부터 50일째 되는 날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행 2:1-4), 성
부께서 계시 주시던 날(계 1:10)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께서 역사하신 날입니다.
그러면 안식일(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요새도 율법주의자가 있고, 폐법주의자가 있고, 율법을 바로 이용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 가지 종류입니다. 폐법주의는 율법을 다 없앴다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무엇을 사도 괜찮다고 합니다.
율법주의는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
주의도 아니고, 폐법주의자도 아닙니다. 율법을 바로 지키자는 주의입
니다. 율법을 바로 지켜서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율법을 폐했
다고 하면 십계명을 다 버려야 됩니다. 즉 십계명을 범해도 괜찮다고
해야 됩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
니고,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3:20
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으로는 죄
를 깨닫는 것입니다. 율법을 다 철폐하면 무엇으로 죄를 깨닫겠습니
까? 예수님은 내가 율법을 폐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러 왔
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신앙에서 떠난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를 깨닫게 해서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
이라고 했고, 또 한 가지는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
니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므로 영의 양
식이 되어서 자기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다 폐지하면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안식일을 주신 목적은 엿새 동안에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
고, 제 7일에 안식하셨으므로 너희도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하다가, 제
칠일에 가서는 다 쉬라는 것입니다. 소나 양이나 문안에 유하는 객이
라도, 자녀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다 쉬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
님이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는 날입니다. 또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받는 것이 주일입니다. 주일을 지켜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
닙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벌써 구원을 받았습니다. 안식일은 하나
님이 주신 안식을 받는 날이므로 주일에 영적안식을 받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왜 주일을 지키라고 했는가? 주일을 지키므로 영이 자라
나고, 구원을 이루어 나갑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장차 너희에게 영원
한 안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안식하는 때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4:9에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일을
지키면서 하나님이 앞으로 영원한 안식을 줄 것을 바라보며 나가는
것입니다. 즉 천년 왕국, 영원한 안식, 이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에 대해서 우리가 율법주의대로 나가면 안 됩니다. 율법
주의는 주일에 아무것도 하면 안 됩니다. 율법주의는 주일에 무엇을
하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즉 주일 날 병을 고쳐도 안 되고, 마귀에
게 눌린 사람을 해방시켜도 안 되고, 또 5리 이상 가면 안 되고, 주일
에 길가로 가다가 풀밭으로 가면 안 되는 것 등 세밀한 법칙을 가지고 유대인들이 지켰습니다. 이것이 율법주의자입니다.
그와 반대로 오늘날 폐법주의자가 많은데 폐법주의자는 안식일을
안 지킵니다. 주일날 사는 것, 파는 것, 일하는 것 등 다합니다. 또 어
떤 교회들은 토요일에 노는 사람들을 흡수하려고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을 다른 날로 고치려고 한다고 합니다. 지금은 주일에 대한 개념들
이 다 없어졌습니다. 새벽예배 때에 “연보만 하고 가면 된다, 또 토요
일에 와서 연보만 하고 가면 된다”는 식입니다. 이것이 폐법주의자들
입니다. 이 다음에 하나님이 무엇을 가지고 심판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의 말씀으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바로 이용하여 안
식일을 바로 지켜서, 율법의 근본 정신되는 죄를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것이 첫째입니다.
그 다음에 주일을 지키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을 받는 것이 주일을 지키는 큰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을 받아서 7일간 그 안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영적 안식도
되고, 육신의 안식도 됩니다. 또한 주일을 지키므로 구원을 이루어 나
가는 일을 해야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해야 됩니다. 안
식일의 궁극적인 목적은 장차 오는 안식으로, 천년왕국을 통과해서 영
원한 안식이 있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는 것입니다. 영적 안식을 받는
동시에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또 죄를
깨달아 회개하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정신입
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예수님이 병을 고치셨다고 잘못 되
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잘한 것입니다. 또 마귀
에게 눌린 사람을 해방시키는 것은 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식일의 근본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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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음
다시 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새로 난 것이기 때문에 깨
끗한 것이고 거룩한 것이며 털끝만큼도 죄가 없는 것입니다. 새 생명
이므로 다시 타락하지 않습니다. 중생한 영은 다시 타락하지 않고 지
옥에 가지 않습니다. 한 번 중생한 사람도 범죄하면 다시 지옥에 간다
고 믿는 교단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한 번 중생한 사람
은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는다’라고 믿습니다. 칼빈주의 즉, 장로교 교
리는 한 번 중생한 사람은 다시 타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교, 루터파, 알미니안주의는 한 번 중생한 사람도 죄를 지으면 지
옥에 간다고 얘기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새로 만드셨는데, 진리
의 말씀의 씨로 성령께서 만들어 놓으셨는데 어떻게 지옥에 갈 수 있
겠습니까? 한 번 중생한 사람은 타락하여 지옥에 갈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믿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은 새 생명이며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또 하나님의 말
씀과 성령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고 범죄 할
가능성도 없습니다. 박윤선 목사의 요한일서 주석에 보면, 새로 거듭
난, 새 사람은 범죄할 가능성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맞습니다.
새 생명이 어떻게 범죄하겠습니까? 범죄하는 것은 우리 인간 속에 있
는 부패성, 그 부패성이 저지르는 것입니다.
중생한 사람은 새 사람인데, 옛 사람이 또 있습니다. 옛 사람은 부
패성이고, 새사람은 중생한 영입니다. 우리는 중생한 영을 받았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았는데, 그것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영입니다.
중생한 증거는 예수님이 구주로 믿어지는 것임
‘내가 중생 했느냐, 안 했느냐’는 것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요한일서 5:1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
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
께로서 난 자라고 했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중생한 것입니다. 중
생한 증거가 무엇입니까? 예수가 구주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주로 믿어지면 그것은 중생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이 구
주로 믿어지면 중생한 것이고, 안 믿어지면 중생하지 못한 것입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하면 예수님이 우리 속에 쏙 들어 옵니다. 예수님의 영이 들어오고 양자의 영이 들어오고 우리에게 새 생명이 시작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습니다, 믿습니다”하는 것은 상당히 좋은 것입니다. “믿습니다”, 한 마디만 해도 모든 것을 다 받은 것입니다.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양자의 영이 들어오는 것이고 하늘나라의 호적에 올라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받는 것입니다.
믿음이 상당한 보배입니다. 요한일서 5:18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
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
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하였고, 요한일
서 3:9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
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서 났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범죄치 아니한다고 하였고,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중생한 영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
의 씨가 그 속에 있기 때문에 죄를 짓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씨는 죄
가 털끝만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기 때문에 죄를 짓
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씨로 중생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씨는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가지시고
살려 놓았기 때문에 다시 범죄하지 아니하고 의(義)만 좋아합니다. 털
끝만큼도 죄가 없습니다. 악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 속에 중생한 영
혼만 있는 것이 아니고 육신의 부패성도 있습니다. 즉, 옛 사람과 새
사람 둘입니다. 육신의 부패성은 옛 사람이고 새 사람은 중생한 영입
니다. 내 마음과 몸이 중생한 영을 따라 살면 의를 행하고, 부패성을
따라 살면 죄를 짓게 됩니다. 속에 부패성이 있으므로 그것을 따라 살
면 죄를 짓고 중생한 영을 따라 살면 의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
국 중생한 영을 따라 살면 의의 병기(兵器)가 되는 것이고 부패성을
따라 살면 죄악의 병기, 불의한 병기가 되는 것입니다.
중생은 하나님의 단독적인 역사임
본문 8절에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
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역사
로 중생 시키신다는 뜻입니다.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와 같이
됩니다. 자기도 알지 못합니다. 중생은 하나님의 단독적인 역사입니다.
협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협력해서 중생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
의 단독적인 역사로 살려 놓는 것입니다.
살려 놓을 때에 어떤 사람은 거꾸러져서 회개하기도 하고, 또 살려
놓았지만 자기도 알지 못하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후자
의 경우 그러다 얼마 후에 중생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은 당장에 중생한 것이 나타났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
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예수님께서 물으실 때 “주여 뉘시오니이
까”하며 바울이 당장에 거꾸러져서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
은 중생을 해도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언제 중생했는지 몰
라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지면 그것은 중생한 것입니다.
안 믿어지는 것은 중생한 것이 아닙니다.
믿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믿음을
주셔서 예수가 구주인 것을 믿어지게 하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죽은
영혼이 아니고 산 영혼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그 영혼이 죽은 영혼입
니다. 하나님께서 살려 놓으셨는데, ‘나’라는 인간 속에 중생한 영도
있고 부패성도 있습니다.
중생한 새 사람과 육체의 부패성인 옛 사람이 싸움
한 사람 가운데 중생한 영인 새 사람과 부패성인 옛 사람이 있습니
다. 새 사람과 옛 사람이 싸웁니다. 로마서 7장에 선을 행하고자 하지
만 악이 함께 하고 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악만
행한다, 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은 중생한 영이 있기 때문에 새 사람이지만, 또 부패성이 있기 때문에 옛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옛 사람으로 살지 말고 새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중생한 영으로 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
십니다. 중생한 영 속에는 말씀이 내재해 계시고, 성령께서 내재해 계
십니다. 또, 외부에서도 말씀과 성령이 감동을 시키십니다. 중생한 영
의 안에서 성령과 말씀이 내재하심으로 역사하시고, 또 영 밖에서도
성령께서 감동을 시키시고 말씀을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부패성은 마귀가 함께 합니다. 우리 속의 부패성은 마귀가 충동을
시켜서 죄를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부패성은 죄를 짓자는 것이고 중
생한 영은 성령과 합하여 의를 행하자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겠
는데, 중생한 영은 성령과 합하여 의를 행하자는 것이고 부패성은 마
귀와 합하여 죄를 짓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따라가야 하겠습니
까? ‘나’라는 사람, 그 마음과 육체가 어느 것을 따라가야 하겠습니까?
중생한 영을 따라가면 그것은 의를 행하고 부패성을 따라가면 그것은
마귀를 따라가는 것이 되어 죄를 짓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옛 사람
을 죽이고 새 사람이 장성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옛 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옛 사람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죄악입니다.
갈라디아서 5:19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
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
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였습
니다. 옛 사람의 첫째가 음행입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好色)
은 모두 성적인 죄입니다. 그리고 우상 숭배, 원수 맺는 것, 술 취하는
것 등 모두 19가지입니다. 술 한 잔 마시는 것도 옛 사람입니다. 새
사람은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고 성령을 따라 살게 됩니다. 옛 사람
은 마귀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이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자라나야 함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바른 복음을 전해 주었는데, 아직도 젖이
나 먹고 밥을 먹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3:1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
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
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
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고린도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셨지만 그들은 자라나지 못했습니다.
중생한 영이 자라나서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하겠는데, 아직 어린아이의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중생할 때는 어린 영의 상태이며, 점
점 자라나야 합니다. 장성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
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중생시켜 놓았으니 이제는 자라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 안에
서 참된 것을 하여 그에게까지 자라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그
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까지 자라나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처음에는 어린아이로 중생했지만 점점 자라나야
합니다. 어디까지 자라나야 할까요?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야 합니
다. 그런데, 아직도 어린아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은 왜 자라지
못했습니까? 그들은 육신에 속했기 때문에 자라나지 못했습니다. 시기
와 분쟁으로 육신에 속했기 때문에 자라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물욕과 정욕과 사욕, 시기와
분쟁, 이러한 것들 때문에 자라나지 못하고 아직도 어린아이라고 했습
니다. 자라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과
성령으로 새 생명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분명히 새 생명을 받았지요?
받았으면 자라나라는 것입니다. 자라나지 못하고 내내 그대로 나아가
는 것은 하나님 앞에 매우 죄송스러운 일입니다. 자라나야 합니다. 자
라나려면 육에 속한 모든 것을 다 제거해야 합니다. 옛 사람을 죽이
고, 쳐서 복종을 시켜야 합니다. 이기주의, 욕심의 사람, 정욕의 사람,
물욕의 사람, 이러한 것들을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과 말씀의 인
도를 받아서 자라나야 합니다. 자라나서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장성한 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송스러운 일입니까?
어느 집에 아이가 여럿인데, 하나는 자라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저 겨우 뒤집기나 합니다. 아이들이 여덟 달이면 걸어 다녀야 합니다.
저는 창광교회 아이들을 보면 몇 달이나 되었느냐, 고 물어봅니다. 그
리고 여덟 달에 걷지 못하면 책망을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보통은 여
덟 달이면 걸어 다녀야 합니다. 그런데 걷지도 못하고 세 살 나도 굴
러다니고 열 살 나도 굴러다니고 스무 살 나도 굴러다니고 마흔 살
나도 굴러다니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자신은 자라나지 못하면서 다
른 사람의 무엇이 틀렸다고 폄론을 하기도 합니다. 자기는 아직도 굴
러다니면서 말입니다.
넉 달 난 것도 굴러다니고 한 살 난 것도 굴러다니고 열 살 난 것
도 굴러다니고 마흔 살 난 것도 굴러다니면, 그 부모가 얼마나 걱정이
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에 지금 말한 이 상황보다 조금
이라도 낫게 보실 것 같습니까? 우리는 몇 살 났습니까? 신앙의 연령
이 몇 살입니까? 잘 걸어 다니십니까? 달음박질 잘하세요? 몇 십 년
되었어도 아직도 걸어 다니지 못하고 자라나지 못한 아이의 상태로
있는 사람, 큰일 났습니다. 신앙의 연령이 스무 살, 마흔 살이 되었는
데 아직 일어서지도 못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걱정하시겠습니까? 생
각해 보십시오.
우리 기도원이 이곳으로 옮겨 온 지가 금년이 13년째입니다. 그 전에 고천기도원에서 18년을 보냈으니 이제까지 31년입니다. 또, 그 전에 삼각산, 관악산 다 합하면 신앙 연령이 40~50세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40~50세 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자라났는가, 보면 자
라나지 못했습니다. 고린도교인들처럼 육신의 소욕이 있기 때문에 자
라나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젖이나 먹여야 잘
먹지, 단단한 음식은 먹일 수가 없어서 먹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자
라나려면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또, 자라나면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젖이나 먹고는 건강 유지를 할 수 없습니다.
어렸을 때는 젖만 먹어도 괜찮습니다. 잘 자라납니다. 그러나 아이
들의 나이가 들어가면 젖만 먹여서는 안 됩니다. 이유식을 먹이다가
그 다음에는 단단한 식물인 밥이나 빵 같은 것을 먹여야 합니다. 그러
므로 자라나려면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단단한 식물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5:12-14에 “때가 오래므로 너
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교
역자들은 교인들에게 신, 구약 성경을 단단한 식물로 먹여 주어야 합
니다. 그래야 자라납니다. 또, 자라난 사람은 그것을 먹어야 합니다.
젖이나 먹어 가지고서는 안 됩니다. 신, 구약 성경을 초보적인 교리로
가르치는 것이 젖으로 먹이는 것입니다. 즉, “예수를 믿으면 된다, 믿
으면 된다”, 여기까지만 인도하는 것이 젖으로 먹이는 것입니다. 그러
나 단단한 식물은 거기서 좀 더 진보하여 성경 말씀에 대한 깊은 해
석과 신령한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깊이 해석하여 신령한 뜻으로 먹어야 자기 영이 힘을 얻고 자라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젖이나 먹어서는 안 됩니다. 교역자들도 밤낮 초보적인 것만 하지 말고 단단한 식물을 먹여야 성도들이
자라납니다.
‘노아의 방주’를 젖으로 먹이려면 “예수 믿는 사람은 다 방주에 탄
것이다”라고 하면 됩니다. 그러나 단단한 식물로 먹이려면 “예수를 믿
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기를 만들어야 한다, 인격을 만드는
것이 방주 짓는 일이다, 예수를 믿고 예수의 형상대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 방주 짓는 일이다”, 이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홍수는 환난
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자기 실력을 만들어 나가야 앞으로 환난을 이
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 단단한 식물을 먹이는 것입니
다. 모든 성경 말씀을 단단한 식물로 먹일 수 있고 또, 젖으로 먹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라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나이가 얼마나 되었기
에 아직도 자라나지 못하고 아이 상태로 있습니까? 작년보다 조금 자
라났습니까? 자라나야 합니다. 자라나지 못하는 것은 육의 사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즉, 영의 사람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자라나지 못
한 것입니다. 중생한 영을 써서 영의 양식과 단단한 식물을 먹고 소화
시키어, 그러한 노력으로 점점 자라나서 최종적으로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와서
이루어지고 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사랑이 자라나
고 의가 자라나고 지식이 자라나고 영이 자라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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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이병규목사 강해설교의 형태와 특징연구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석사 나은기
I. 서론 7
A. 연구의 동기 7
B. 연구의 목적 7
II. 이병규 목사의 생애와 목회 9
A. 영향을 받은 스승들
9
B. 목회자의 길 11
C. 산기도 목회 12
D. 사경회(査經會) 목회 14
E. 교단 설립과 후진 양성
16
III. 역사상 설교의 여러 형태들 19
A. 강해설교 19
1. 강해설교는 무엇인가? 19
2. 강해설교의 역사적
조명 23
B. 강해설교 외의 다른 설교 유형 36
1. 제목설교(topical sermon) 36
2. 본문설교(textual
sermon) 37
3. 주해설교(expository sermon) 39
C. 개혁주의적인 설교 41
1. 개혁주의는 무엇인가?
41
2. 개혁주의 설교란 무엇인가? 45
D. 복음적 설교(균형을 이룬 설교) 49
IV. 이병규 목사의 설교와 그 특징
56
A. 이병규 목사의 설교 준비 56
1. 기도 가운데 본문 선택과 통합 56
2. 설교 원고 작성 58
3. 주일
설교 59
B. 성경 제일주의 강해설교 60
1. 성경 전체를 설교하려는 계획 있는 설교 60
2. 주제와 대소지가 분명한 설교
60
3. 성경 진리를 열정적으로 밝히는 설교 62
4. 예화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설교 63
5. 십계명을 철저히 지키게 하는
설교 64
C. 목회적 설교 66
1. 분명한 목적이 있는 설교 66
2. 명확성과 구체성 있는 설교 66
3. 설교의
어떤 형태에 매이지 않는 목양적 설교 67
4. 세속적 시대정신을 책망하는 교정적 설교 68
5. 강조점이 분명한 설교
69
6. 반복을 통한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설교 69
7.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설교 70
8. 책망이 있는 설교
70
9. 성도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적용적 설교 72
10. 영력(靈力)이 충만한 설교 73
D. 신학적 설교
75
1. 하나님 중심적 해석과 설교 75
2.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설교 76
3. 그리스도의 구속 중심적 설교
80
4. 역사적, 어원적, 교리적 정확성을 중요시하는 설교 83
V. 결론 85
http://dlps.nanet.go.kr/DlibViewer.do?cn=KDMT1201034731&sysid=n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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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 목사의 신학사상 / 광명 성산교회 이창옥 목사글
http://ksungsan.com/nayaboard/board/view.php?boardname=p02&no=14&page=1&cate=&s=&keyfield=&keyword=
이병규 목사님은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정통신앙을 세워나가는 일에 한국교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신 한국 교계 보수신앙의 기둥으로 인정받는 이 시대의 큰 스승이셨습니다.
이병규 목사님의 신앙과 가르침을 받은 주님의 종들이 국내외적으로 많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병규 목사님은 1924년 평양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였으며, 청년 시절에는 이북에서 이기선 목사님과 김의홍 목사님에게 성경을 많이 배웠으며, 6•25 전쟁으로 인해 월남하여 부산 고려신학교 제7회 졸업생으로 박윤선 목사님으로부터 개혁주의 신학을 배웠습니다.
1953년 10월 3일 서울 “명륜교회”를 개척하였고, 1956년에 고신측 경기노회 소속으로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같은 노회소속 김현봉 목사님에게 성경과 경건 생활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마산 문창교회 예배당과 관련된 소송이 성경적이지 않음으로 강력히 반대하던 중 1959년 고신측 경기노회가 총회에서 나오게 되었고, 1960년에 김현봉 목사님과 함께 공의회를 조직하였습니다. 1965년 서울 신촌에 “창광교회”를 개척하였고, 1980년 9월 22일 계신측 총회를 조직하였으며, 계약 신학교와 계약 신학대학원 대학교를 세워서 많은 교역자를 양성하였습니다. 2014년 7월 20일 91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이병규 목사님의 신학사상과 신앙에 대하여 간략하게 기술하려고 합니다.
1. 성경 중심 신학
이병규 목사님의 신학사상과 신앙은 성경 중심입니다. 성경에서 시작해서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성경이 머무는 곳에 머물며, 성경으로 마쳤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연구하였으며, 교회에서나 신학교에서 성경을 많이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로 신구약성경 전권에 대한 강해서와 신구약 설교집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신구약성경 전체 강해서를 출판한 한국 기독교 역사의 신학자나 목사는 2-3 명에 불과하며, 전 세계적으로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신구약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가르쳤으며, 성경말씀을 전할 때도 순수한 말씀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바울 사도와 같이 아무 것도 섞지 않고 말씀 그대로 가감하지 않았으며,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려고 인간의 방법으로 하지 않고 성경의 순수한 그대로만 전했습니다(고후2:17, 고전2:3-5).
신구약 성경말씀을 신앙과 목회와 삶의 유일한 법칙으로 삼았습니다.
2. 기도 중심 신학
이병규 목사님은 목회를 시작하면서 매일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하였으며, 매일 새벽 예배 후에는 연세대 뒤편 봉원산에 있는 기도실에 올라가서 11시까지 기도하였습니다.
또한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기도원 산속에 있는 기도실에 일주일에 2일 이상 머물면서 기도했습니다. 고령으로 새벽예배를 인도하지 않을 때에는 매일 새벽 4시에 봉원산 기도실에서 11시까지 기도했습니다. 그의 영권은 기도를 통한 “신령한 세계에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산에서 기도하는 생활,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것을 강조하였으며, 신학생을 비롯한 모든 교역자들은 하루에 2시간 이상 기도, 성경 10장 이상 읽을 것을 특별히 강조하였습니다.
3. 구원 이뤄나가는 신앙
이병규 목사님은 구원 이뤄나가는 도리를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 사함 받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요1:12, 5:24). 이것을 기본 구원이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기본 구원을 받은 자는 완전한 천국백성이 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보통 신자들은 이 단계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구원 이뤄나가는 도리는 기본 구원을 받은 성도가 죄에서 점점 벗어나는 것이며, 중생한 영이 점점 자라나고, 신앙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목표는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나는 것입니다(엡4:13,15).
기본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찰나적으로 일어나지만,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일은 일생토록 힘써야 하며, 믿음을 쓰는 만큼 구원이 이뤄지게 되며, 하늘나라 가서 누리는 영광과 존귀는 구원을 이루어나간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마5:19, 고전15:39-41).
4,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신앙.
이병규 목사님은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중생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중생은 하나님의 단독적인 역사이며(엡2“4-5, 요1;13),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다는 것을 말합니다(요1:13, 3:5,8).
중생의 요소는 물(요3:5, 벧전1:23)과 성령(요3:5-8, 6:63), 곧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사람은 범죄할 수 있으나, 중생한 영은 절대로 범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1)완전하신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신적출생이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요일3:9)“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으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그는 죄를 지을 수 없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이다”
3)하나님께로부터 나신 분이 그를 지키시기 때문입니다(요일5:18).
4)하나님은 영 전체를 새 생명으로 다시 살려 주셨기 때문입니다(엡2;1).
5)중생한 영은 다시 죽지 않기 때문에 범죄하지 않습니다(롬6:23).
(요5:24)“내가 진정으로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의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지고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니, 그는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5. 청교도적인 경건신앙
이병규 목사님은 청교도적인 경건신앙을 몸소 실천하였으며, 가르쳤습니다.
미국에서 청교도적인 신앙을 가진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선교함으로 우리나라의 초대교회는 청교도적인 경건한 신앙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병규 목사님은 우리나라 초대교회의 청교도적인 경건신앙을 지키며, 그 신앙을 계승하려고 힘을 많이 쓰셨습니다. 청교도들이 성경에 기초한 거룩한 삶을 추구하듯 신앙생활의 기본적인 세 가지를 항상 강조하셨습니다.
1)철저한 주일 성수 2)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 3)온전한 십일조 생활입니다.
이병규 목사님은 주일성수 신앙에 철저하셨습니다.
이북 공산주의 정권에서 1948년 11월 3일 주일, 국민투표를 하도록 공포했습니다. 교회를 박해하고자 고의적으로 주일을 택한 것입니다. 전도사 시절 목숨을 걸고 그는 주일을 거룩히 지키도록 가르치고 교인들이 투표에 참석하지 않도록 앞장서다가 붙잡혀 감옥에 들어가 고난을 받기도 하셨으며, 명륜교회 시무 시에는 주일날 화폐개혁이 있었으나 끝까지 주일성수 했습니다.
주일에는 세상일을 하지 않고, 오락을 금하며, 물건을 사고파는 매매행위를 금했습니다.
주일성수는 십계명의 중심계명이며, 현대의 선악과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의 안식일과 신약시대의 주일에는 연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육일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 째 되는 날 안식하심으로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으나, 신약시대는 주일로 변경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오랜 후에 다른 날을 정하여 이레 중 첫날에 안식일을 지키게 하였고(히4:7-10), 전에 계명이 연약하여 폐하였기 때문입니다(히7:18).
또한 주일에 성부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셨고(계1:10), 성자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며(마28:1), 보혜사 성령이 강림하신 날이 주일로서 3위1체 하나님이 합동해서 구원역사를 완성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행2:1). 그래서 신약의 사도들도 처음에는 토요안식을 지키다가 후에는 주일을 안식일로 지켰습니다(고전16:2, 행6:7).
6. 전 천년설
이병규 목사님은 전 천년설을 주장하셨습니다. 전 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전에 있다는 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악한 죄악세상은 심판하고, 마귀는 천년동안 무저갱에 잡아 가둠으로 세상을 미혹하지 못하게 되어 천년동안 죄 없는 시대가 됩니다. 그 때에 구원받은 성도들은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땅에서 천년동안 왕 노릇하게 됩니다. 계시록 19장 11-21절에서 주님의 재림이 있으며, 20장에는 재림 후에 있을 성도의 부활과 천년왕국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천년왕국은 이 땅위에 천년동안 이루어지는데 죄악의 하늘과 죄악의 땅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 곧 죄 없는 새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도의 영혼 구속은 중생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몸의 구속은 부활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만물 구속은 천년왕국이 임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천년왕국 임하기 전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다는 전 천년설이 성경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7.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고 추도예배를 드리지 않는 신앙.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성경에서 금하고 있습니다.
1)이방인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고전10:20)
2)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는 우상의 제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고전10:18)
3)성령께서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고전15:29)
또한 성경은 추도예배를 금하고 있습니다.
1)하나님만 예배의 대상이며, 하나님 외에 죽은 조상이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출20:4-5)
2)추도예배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형식만 빌린 죽은 자를 위한 제사의식입니다.
3)죽은 자에게 제사함은 바알브올을 숭배하는 죄입니다(시106:28-29).
4)아브라함이나 이삭과 야곱과 같은 믿음의 조상들이 추도예배를 드린 예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하며, 추도예배는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잘못된 의식입니다.
오늘날 진리가 어두워지고 성경을 소홀히 하며, 종교 다원주의로 교계가 어지러운 이 시대에 이병규 목사님의 성경 중심의 보수 정통신앙과 신학사상을 계승 발전시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워나가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진리를 밝혀나가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사상을 기본으로하여 300개의 지교회와 해외 20여개 나라 선교 파송및 광주에 만평의 기도원을 원로,은퇴 목회자의 케어 타운의 운영과 특히 무료 인재 신학 인재 양성 기관으로 신학교 신학대학 신학 대학원을 설립 하여 주의 복음자를 양성하는데 최우선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또한 바른 진리를 보수 하기위하여 바른 성경을 편잔 발행및 강해서 66권 성경 66권의 설교집 그리고 각 제자 목회자님들의 이어지는 영감있는 영서의 편찬으로 사상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가르치고 성경대로 믿으며 성경이 지시하는대로 행하는 신학 사상으로 하나님과의 언약 게약을 절대로 믿고 마지막 주님오시는날의 그날까지 우리의 부족한 믿음이지만 예배를 이어 나가려는 교단이며, 사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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