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16: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원수와 어떻게 하면 화목해집니까?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원수라도 하나님께서 화목하게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화목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화목이 됩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싸움한 다음에 어떻게 해야 화목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가서 빌까? 무엇을 할까?’ 하지 말고 그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십시오. 그러면 화목이 됩니다. 다시 말하는데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화목이 됩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려면,

첫째로 자기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자기가 바로 서고, 그 다음에

셋째로 사랑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기뻐 하시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바로 서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원수를 사랑하면 화목할 날이 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 어떻게 화목할까 하고 아무리 고심해도 소용없습니다. 백 가지 방법을 써도 쓸데 없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자기가 바로 서고, 그 다음에 사랑하면 화목이 됩니다.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계를 500만원 짜리 들고, 그것을 물어나가느라 지금 반찬도 못 사다먹고 연보도 못하고 십일조도 못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얼마쯤 나갔습니다. 그것이 무슨 일입니까? 먼저 500만원 탈 것을 경영해놓은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아이들 먹을 것을 사다 먹이며 제대로 생활을 해야겠는데, 500만원 탈 것에만 욕심을 부리고 계획을 해놓고서 오늘 해야 할 것은 전부 비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얻어다 먹고, 남에게 폐를 끼치며, 아이들 먹을 것도 안 먹이고, 또 하나님께 바칠 것도 못 바치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이제 거의 탈 때가 됐는데, 계가 깨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참 잘됐다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크게 경영해놓고서는 자기가 오늘에 할 바를 못하니까 아주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오늘에 할 바를 못하니까 함정에 빠지지 않습니까? 경영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에 할 바를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는 법,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받은 다음에는 하나님의 권고가 임하도록 기다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고가 임할 때에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셋째는 자기를 다 바치는 것입니다. 믿는 일을 위해 재정과 환경 모두 다 바쳐서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때 안 된다고 그만두지 말고 계속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열 번, 스무 번, 100번이라도 노력을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십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먼저 말씀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즉시 순종해야 됩니다. 말씀부터 붙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부터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권고가 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거나 하

라고 하십니다. 또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하나님의 권고가 임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하지 말고 순종하여 가라는 것입니다. 하라는 말씀입니다. ‘힘이 없다’, ‘자격이 없다’, ‘돈이 없다’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대로 가면 됩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를 다 바쳐야 합니다. 자기 힘으로는 안하고 얻어 갈 생각을 하고, 얻어먹을 생각만 하는 것은 거지 근성입니다. 그런 생각은 못 씁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바쳐서 희생해야 합니다.

개척 교회할 때도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기울어야 합니다. 누가 해주겠거니 하지 말고, 먼저 자기 것을 다 팔아야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안 될 때 다른 사람이 보조해 주어야 합니다. 자기 것을 다 기울여서 계속해서 힘을 쓰면 하나님의 만능으로 이루어지게 만드

시는 것입니다. 인간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역사에 쓰이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자격 없는 사람을 들어서 쓰십니다. 사라가 아이를 낳을 자격 있습니까? 육체적으로 희망이 없습니다. 자격이 없고 희망이 없지만, 하나님의 권고함에 따라서 말씀대로 행하려고 힘을 쓰니까 마침내는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성공하였습니다.


이병규목사설교집 15

창세기 21:1-21 이삭과 이스마엘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중생한 영은 범죄치 않음


본문 9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했습니다. 의인은 그리스도에게 속했고 죄는 마귀에게 속했다고 했습니다. 의를 행하면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이고, 죄
를 지으면 마귀에게 속한 자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씨’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났다는 것은 거듭난 것을 말하는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새로 났다고 했
습니다. 거듭난 영혼은 범죄 하지 않는데,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어서입니다. 씨는 말씀입니다. 말씀인 물과 성령으로 중생했고 말씀이 그 속에 있기 때문에, 중생한 영혼은 범죄 하지 않습니다.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했습니다. 거듭났다고 했습니다. 중생되었기 때문에 범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혼은 범죄 하지 않지만 믿는 사람이 육체의 정욕대로 살면 범죄 합니다. 중생한 영혼은 새사람이고, 육체의 정욕은 옛사람입니다. 육체의 부패성이 옛사람입니다. 옛사람과 새사람이 있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새사람으로 살면 범죄 하지 않고, 옛사람으로 살면
범죄 한다고 했습니다. 왜 범죄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거듭났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육신의 부패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부패성으로 살면 범죄 합니다. 반대로 영으로 살면 범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중생은 거듭나는 것임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남


‘거듭났다’는 것은 중생했다는 말씀인데,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씀입니다. 믿기 전에 영혼은 다 죽은 영혼이므로 중생하지 못하면 하늘나라 갈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죽었는데 어떻게 하늘나라를 가겠습니까? 그래서 니고데모에게 “너희가 거
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가 없느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중생하느냐 물어보니까 무엇으로 한다고 했습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요3:5).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했는데, 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5장 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하였고, 또 야고보서 1장 18절에,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으로 거듭납니다. 말씀으로 중생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았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썩지 아니할 씨가 뭐라고 했습니까? 말씀입니다. 거듭날 때 썩지 아니할 씨로 우리가 거듭나는데, 그 씨는 하나님
의 말씀입니다. 죽지 않는 항상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거듭나는 것이 분명합니다.


한번 중생한 자는 다시 죽지 않음


본문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았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항상 살아있는 씨로 거듭났기 때문에 이것은 죽지 않습니다. 한번 중생한 영혼은 절대 지옥에 가지 않고 절대 죽지 않습니다.
한 번 살아난 것은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가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됩니까? 중생한 영혼이 죽습니까? 죽지 않습니까?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지 않습니다. 죄를 지어서 지옥가게 되면 또 중생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중생을 해야 하는
데, 중생은 여러 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은 한 번만 하는 것입니다. 중생은 단회적으로 완성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죄를 지어도 중생한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구원은 받아 놓은 것입니다.


죄는 중생한 영이 짓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부패성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육신의 소욕, 육신의 부패성, 옛 사람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새사람은 중생한 영인데, 중생한 영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중생한 영은 언제나 의만 좋아하고 하나님만 즐거워하고 의만 이루어나가려고 합니다. 죄는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중생을 했는데 거기에 왜 죄가 있겠습니까? 말씀이 죄가 있습니까? 성령이 죄가 있습니까? 중생의 요소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인데 거기 어떻게 죄가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말씀 속에 어떻게 죄가 들어가고 성령 속에 어떻게 죄가 들어가겠습니까? 중생한 영혼은 죄가 없습니다. 죄는 육신의 부패성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육체의 욕심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의 욕심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욕심이 마음을 이용해서 나오는데 그것을 언제나 제해야겠습니다. 제하고 그 마음이 언제나 중생한 영혼에 이용당해야 됩니다. 그래야 선한 마음이 됩니다.


그 마음이 죄악성에게 이용을 당하면 악한 마음이 되고 중생한 영혼에 이용당하면 선한 마음이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선한 마음이 있고 악한 마음도 있습니다. 부패성에 이용되면 악한 마음, 중생한 영에 게 이용이 되면 선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악한 마음 선한 마음이 있는 것은, 마음이 하나인데 중생한 영에게 이용 될 때는 선한 마음이고 그것은 깨끗합니다. 죄악성에게 이용되고 욕심에게 이용이 될 때는 악한 마음인데 그것은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음은 하나인데 어디에 이용되느냐에 따라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생한 영은 말씀과 성령으로 되었기 때문에 항상 살아있습니다. 절대 죽지 않습니다. ‘항상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왜 죽겠습니까? 한번 중생한 영은 죽지 않습니다. 지옥 가지 않습니다. 타락되지 않습니다.


한 번 중생했어도 죄 지면 타락해서 지옥 간다는 설이 있는데, 천주교, 루터파, 알미니안파들이 한 번 중생한 사람도 죄지으면 지옥 간다고 합니다. 우리는 칼빈주의입니다. 칼빈주의는 한번 중생한 사람은 절대 지옥가지 않습니다. 이런 교리를 믿는 교회가 장로교입니다.
골로새서 1:13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하늘나라에 옮겨 놓았다고 했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영이며, 하나님 나라에 옮겨 놓은 것이고, 하늘나라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털 끝 만큼도 더러운 것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라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중생한 영혼이 이미 구원받았고 지옥가지 않는다고 했으니, “그러면 예수님 믿는 사람이 마음 푹 놓고 죄를 져도 되지 않느냐?”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옛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인데, 그렇다고 지옥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죄를 지으면 징계를 하십니다. 아들이 잘못하면 채찍으로 때려서라도 그 아들을 바로 세우려고 합니다. 아들이 더러운 것을 묻히고 들어오면 불구덩이에 집어넣는 아버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더러운 것들이 묻었으면 다 씻어서 고쳐주려고 하지 않
겠습니까? 예수님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시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더 큰 징계를 주십니다. 쫄딱 망하게 됩니다. 영혼만 구원 받고 세상에서 쫄딱 다 망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중생한 사람은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지 않으십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시지만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절대로 가만히 두시지 않으십니다.

시험이 들어올 때에 취하여야 할 태도


◉ 하나님께 바로 서라


그러면 여러 가지 시험은 하나님이 성도를 사랑하셔서 주시는데, 그 여러 가지 시험이 들어올 때에는 어떻게 하여야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께 바로 서야 합니다. 사르밧 과부는 바로 섰기 때문에, 통에 가루가 얼마 안 되었고 병에 기름이 얼마 안 되었지만, 3년 6개월 동안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기름이 다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시험이 올 때에 하나님께 바로만 하면 하나님이 다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바로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 하나님을 의지하라


둘째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나가므로 그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그러면 연단이 됩니다. 이기지 못할 것을 이기고, 참지 못할 것을 참고, 끊지 못할 것을 끊고, 사랑하지 못할 것을 사랑하고, 용서하지 못할 것을 용서하고 나아가야
됩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를 공궤하지 못할 형편이었으나 그래도 엘리야를 공궤하고 나가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모든 것을 승리적으로 통과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시험이 올 때에 잠간 근심함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라고 하였는데, 시험이 올 때에 시험은 크고 자신은 연약하여 자기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잠깐 근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 앞에 바로서서 순종해 나가면, 하나님이 만능으로 도와 주셔서 그 시험을 이기게 되며,
쓸만한 사람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역자도 많은 환난을 받으면서 나가면 쓸만한 교역자가 됩니다. 온실의 화초와 같이 아무런 환난을 당하지 않고 나가는 사람은 환난이 올 때에 그 환난을 이기고 나갈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이 들어올 때에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이겨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성도로 만들어집니다. 시험이 없으면 만들어지지 못합니다.


칭찬과 존귀와 상급을 받음


시험을 통해 연단을 받아 고상한 믿음으로 만들어진 성도는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상급을 받게 됩니다. 그 믿음은 금보다 더 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이 많이 올 때에 연단을 잘 받아야 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은 하나님이 좋은 선물을 주시려고 주시는 것입니다. 즉 연단을 시켜서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시려고 여러가지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승리적으로 통과하여야겠습니다. 시험을 승리적으로 통과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주시려는 것을 받지 못합니다. 즉 하나님이 주시려는 선물이 자기 것이 되지 못합니다. 또 자신이 만들어지지 못합니다. 도리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고, 마귀의 일만 해주게 됩니다. 방심부주의하면 시험에 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올 때에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하며 하나님께 바로 서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그 시험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시험을 이기라


하나님은 이기는 자에게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7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겨야 합니다. 서머나 교회에는 이기면 무엇을 주신다고 하였습니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계 2:10). 이기지 못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지 못합니다.
버가모 교회에는 이기면 감추었던 만나와 예수님의 새 이름을 기록한 흰 돌을 주신다고 하였고(계 2:17), 두라디라 교회에는 이기면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 별을 주신다고 했습니다(계 2:27-28). 그 다음에 사데 교회는 이기면 흰 옷을 입고, 생명책에서 이름이 흐리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계 3:5).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이기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계 3:12). 라오디게아 교회는 이기면 예수님 보좌에 함께 앉도록 하여 주신다고 했습니다(계 3:21). 전부이기는 자에게 주신다고 했지, 진 자에게 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기선 목사님도 이겨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도 이기기를 다 원하고 자기 아들이 씨름판에 나가서 씨름하면 자기도 허리를 꾸부리고 낑낑하며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영감님 왜 이러십니까?”하면 저기에서 씨름하는 사람이 “우리 아들이라”고 한답니다. 이기는 사람은 사랑이 충만합니다. 이기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잘 참습니다. 이기는 사람은 끊어 버릴 것을 끊어 버립니다. 이기는 사람은 희생, 봉사를 잘합니다. 이기는 사람은 가지 못할 곳을 갈 수 있습니다. 즉 소돔 고모라도 갈 수 있고, 아골 골짜기도 갈 수 있습니다. 이기는 사람은 어디든지 가서, 그곳에서도 이깁니다. 소돔 고모라에 가서 이기면 소돔 고모라가 소생합니다. 황무지에 가서 이기면 황무지가 소생합니다. 가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기려면 하나님께 회개하고 순종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흠이 있는 자는 흠이 없어지고, 부족한 것이 있던 자는 부족한 것이 없어집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 틀렸다고 하지 말고 자기부터 고치면 됩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먼저 대접하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대접하지 않는다”고 하지 말고, 대접을 받고자 하면 나부터 대접을 하면 대접이 돌아옵니다. 남을 대접했는데, 대접이 안돌아 오면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배로 받습니다. 사람에게 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받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하나님께 받는 것도 물론 좋지만, 현세에서 받지 못하면 그것은 하늘나라에 저금이 된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은 성도를 연단시키시는데 그것을 잘 이겨야 됩니다. 여러가지 시험은 경제적인 시험, 사회적인 시험, 친구간의 시험, 가정적인 시험, 교회적인 시험, 국가적인 시험 등 많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시험이 올 때에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큰 유익을 주시려고 시험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잘 이겨야 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올 때에 믿음을 지켜야만 이깁니다. 시험이 올 때에 이기지 못하면 자기가 만들어지지 못합니다. 욕심은 욕심대로 계속 부리면서 나갑니다. 욕심이 우상이 되어서 나가면 믿음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시험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 가라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즉 사랑이 충만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사랑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자비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불쌍히 여기는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참고 견디는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 만큼 예수님을 닮아간 것으로 주님이 나타나실 때에 나타납니다. 또 만들어진 것을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고 마실까?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 마귀의 시험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올 때에 염려하지 말고 거기서 연단을 잘 받아 만들어져야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으며, 시험을 승리적으로 통과합니다. 또 금보다 귀한 불로 연단 된 믿
음이 만들어지고, 그 믿음은 영원한 영광과 존귀와 칭찬과 상급을 받습니다. 참 좋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법


1)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고 돌이킬 것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의 첫째는 자기를 부인
하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아무리 알려고 해도 모릅니다. 자기중심이고 죄 가운데 있고 욕심으로 나가고 세상에 속해 있는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알려줘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항상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사역을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중심, 돈 중심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사역을 중심으로 살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잘 될까? 어떻게 하면 나의 구원을 이루어나가고 다른 사람의 구원도 잘될까?’를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2) 성경말씀과 섭리적인 역사를 따라갈 것 


그리고 성경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말씀과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가 합해져야 합니다. 성경말씀과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를 따라 가야만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를 무시하고 성경대로 하려고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또 성경을 떠나서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만 따라가도 안 됩니다. 성경말씀과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를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면 찾아집니다.


3) 신앙 양심을 쓸 것 


그 다음에는 신앙양심을 써야 합니다. 양심을 쓰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양심을 쓰지 않는 사람은 암만 성경을 배워도 성경을 모릅니다. 성경을 배워도 언제나 흑암 속에 있기 때문에 그 성경말씀이 자기에게 빛이 되지 못합니다.


4) 기도함으로 성령의 감동을 따라 갈 것 


그 다음에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말씀의 감동을 받아서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아,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구나.’ 깨닫게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사역을 중심으로 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를 순종해야 하며, 신앙양심을 써야 되고, 성령의 감동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2.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가 나타남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엘리야의 경우 엘리야가 갈멜산에 올라가서 850명을 거짓선지자를 숙청을 하고 이세벨이 추격하는 바람에 도망쳐서 광야 브엘세바에 가서 로뎀나무 아래서 쓰러지지 않았습니까? 거기서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죽
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엘리야가 방황하여, 오리무중에 빠져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무슨 기도를 해야 할 지도 모르고, 갈팡질팡하면서 ‘살아야 하느냐? 죽어야 하느냐?’ 살 길이 막연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엘리야가 자기를 부인했습니다. 자기가 하겠다는 것, 큰 일하겠다는 생각, 자기가 하면 될 줄 알던 것들을 다 부인했습니다. 자기는 이제 죽은 자와 같이 된 것입니다. 엘리야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자기를 부인한 것입니다. 죽여달라고 하는 것은 벌써 자기를 부인한 것 아닙니까?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을 깨닫는데 까지는 여러 가지 순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 즉 천사를 보내서 떡과 물을 먹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섭리적인 역사입니다. 또 잠이 드니까 다시 보내서 떡과 물을 먹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섭리적인 역사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산, 여호와의 산인 호렙산을 향하여 가라고 했지요? 거기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깨닫고 갔을 때 나중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신앙양심을 쓰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중심으로 하여 이제는 자기 생명을 내어 놓고 걸어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했습니다. 세미한 음성이 들려온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 후에는 순종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세 가지를 하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하라고 했습니까? 첫째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서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둘째는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서 너 대신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세 가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깨달은 후에는 그대로 실천을 했습니다. 실행을 했습니다. 순종을 했습니다. 순종을 한 후에는 하나님께 서 다 해주셨습니다. 떡과 물을 먹으라 하실 때 순종해서 먹으니까 호렙산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호렙산으로 가니까 굴 밖으로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굴 밖으로 나가니까 바람과 불과 지진이 지나갔습니다.
그 다음에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세미한 음성이 들려오고 그 음성대로 순종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대로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 찾아집니다. 찾으려고 하지 않으면 못 찾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찾는 것을 힘써야 합니다. 첫째는 알고, 그대로 될 줄 믿고,
그 다음에는 순종을 하면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오리무중에 빠져서 흑암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 됩니다. 찾으면 찾아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말씀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순종만하면 됩니다.


빌립집사가 전도 할 때, 어디로 가라고 했습니까? 광야로 가라고 했습니다. 전도하러 다니는데 광야에 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도시, 성중에 들어가든지 동네에 가든지 해야 전도를 하겠는데 “광야로 가라!”고 했습니다. 빌립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광야로 갔습니다. 광야로 가니까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 역사가 무엇입니까? 에디오피아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갔다가 수레를 타고 오는 것을 만났습니다. 빌립이 바짝 수레 옆으로 가니까 성경을 읽고 가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가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 다음에 빌립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읽는 성경을 깨닫나요?” 하고 물어보니까 그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깨닫겠습니까?” 하며 수레에 올라와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빌립이 올라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여 구속의 도리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을 마음이 생겼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렇게 역사합니다.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모르면 섭리를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섭리를 순종하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제일 첫 번에 준비할 것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사역을 중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으로 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살아서도 안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사역을 중심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나가면 하나님께서 다 일해주십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에게 이삭을 위하여 이삭의 아내 될 사람을 택해서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늙은 종은 어디를 가서 누구를 데려올 지 막연한 것입니다. 이삭의 아내될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또 데려
오면 그저 따라 오겠습니까? 모르는 사람을 왜 그저 따라가겠습니까?
그래도 명령을 순종해서 갔습니다. 가니까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났습니다. 어떤 처녀가 물을 기르러 나왔습니다. 기도하기를 물 좀 달라고 할 때 물을 주는 여자, 또 나귀에게도 물을 먹여주는 여자는 하나님이 이삭의 아내로 택한 줄로 믿겠다고 기도했고, 한 여자가 오자 물 좀 달라고 했습니다. 여자는 물을 길러다 먹였습니다. 또 나귀에게도 물을 먹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하다 하여 패물도 주고 말도 해보고 그 집에 들어가서 다 하니까 하나님께서 일을 다 해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의 아내를 데리고 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는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며 욕심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사역을 중심으로 해야 하며 십자가를 각오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납니다. 성경말씀대로 하려고 애를 쓰면 하나님의 섭리가 보여집니다. 섭리가 보여지면 그대로 하면 됩니다. 신앙양심을 쓰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대로 하면 하나님의 뜻이 나타납니다. 또 그대로 하면 만능입니다. 만능으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바라는 것들이 다 실상이 됩니다. 처음에 바라기만 하고 했는데 해보니까 실상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루어졌단 말입니다. 이루어지니까 또 그 증거가 생겼습니다. 믿는 사람은 많은 것을 얻게 되고 많은 것을 산출하게 되고 많은 것이 창조되고 많은 것이 실상이 되고 많은 것이 증거가 됩니다. 증거가 많습니다. 그래서 찬송가에도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라고 했습니다.


3.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짐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라고했는데, 세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다 나왔습니다. 산, 땅도 다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서 천지가 다 나왔습니다. 또 사람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짐승과 새는 하나님이 있으라 하신 말씀에서 나왔는데 사람도 있으라 해서 나왔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창조했지만 창조 전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하신 것이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사람을 창조했습니다. 창조했는데 영혼과 육신을 다 창조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으며 육신도 영혼에게 맞도록 흙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영혼 창조가 먼저입니다. 영혼 창조가 먼저고 그 다음에 육신 창조입니다.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그랬는데 생기가 영혼이 아닙니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남여로 창조하셨는데 그것이 먼저 육신과 영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흙으로 사람을 창조한 것을 2장에 다시 말한 것은 재론한 것입니다. 영혼은 벌써 창조된 것입니다. 영혼이 먼저 창조가 되고 그 다음에 육신을 창조한 것입니다. 영혼이 주인이니까 먼저 창조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창조한다고 했으니까 영혼이 먼저 된 것으로 봐야 됩니다. 그 다음에 육신은 흙으로 창조했습니다. 코에 생기를 불어놓은 것은 진리와 영감으로 하나님과 연결시켜 놓은 것입니다. 코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이 영혼이 아닙니다. 생기를 불어넣은 것이 영혼이라고 하면 영혼이 창조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속에서 유출된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지 하나님의 속에서 유출된 것이 아닙니다. ‘생령이 된지라’에서 생령이라는 말은 생물이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생령이 된지라’ 하는 말은 생물과 같은 말입니다. 생령이라는 말은 창세기 1장24절, 28절에 있는 “생물”과 같은 것입니다.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의 생물이 생령과 같은 뜻입니다. 생물은 살았다는 말입니다.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니까 살았다. 하나님과 연결되니까 산 영혼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연결되면 산 영혼이 되고 연결이 되지 않으면 죽은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만물이 말씀에서 나왔는데 말씀을 순종만 하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 나갑니다. 따라서 무엇 때문에 큰일이다. 무엇 때문에 걱정이다 할 것이 없습니다. 걱정이 생기면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버려라’ 하는 말씀을 첫째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다 권고해줍니다. 베드로후서 5장 7절의 말씀의 “너희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버려라. 이는 주가 권고하심이니라”했으니까 하나님이 반드시 권고해주실 것을 믿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면 됩니다. 그 다음에는 성경말씀대로 순종만 하면 됩니다. 염려를 다 주께 맡기고 순종만 하면 일은 다 하나님께서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모든 것을 다 해주십니다. 변화시킬 것은 변화시켜주시고, 만날 사람은 만나게 하시고, 좋은 사람 만나게도 해주십니다.


순종해서 모세를 갈 상자 안에 넣어 내다 놓으니까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났습니다. 섭리가 무엇입니까? 공주가 목욕을 하러 나왔습니다. 그 아이를 보고 잘 생겼으니까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또 순종을 해야 합니다. 미리암이 순종을 했습니다. ‘내가 이 아이를 위하여 유모를 불어오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을 하지 않았으면 안 됩니다. 순종을 하니까 그 공주가 ‘불어와라’고 했습니다. 순종을 하라고 하니까 누구를 불러왔습니까? 자기 어머니를 불러왔습니다. 이 아주머니가 젖이 잘 나온다고 말입니다. 한 달에 월급 얼마 받았을까요? 월급 뭐 주는 대로 받겠다고 했겠지만 공주가 넉넉히 주겠지 주지 않겠습니까? 월급을 받으면서 자기 아이를 기른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섭리하셔서 죽을 것 같지만 살려주시고, 길이 없는 것 같지만 길을 열어주시고,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일을 되게 하시고,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실상이 되게 하시고, 증거가 되게 하십니다. 


땅덩어리를 볼 때 무슨 생각을 해야 하냐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 땅이 나왔다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 땅 덩어리가 나왔는데 다른 것이 무엇이 안 되겠습니까? 말씀대로 하면 안 될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의 일월성신도 말씀에서 나왔는데 말씀대로 하면 안 
될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 속에는 4가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 삼위일체 하나님, 하나님의 만능, 하나님의 성취하심과 역사가 있습니다. 이것들이 있어서 다 됩니다. 다 있어서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은 이루어주시고, 사자의 입을 막아주시고, 만나게 될 사람은 만나게 하고, 갈 길을 알지 못할 때 길을 열어주시고, 에디오피아 내시도 만나게 하시고, 성경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도 열어주시고, 그 사람이 예수를 믿게 하시고, 세례도 받게 하십니다. 순종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 주십니다. 만날 사람 만나고, 막을 것은 막아주시고, 문을 열어주어야 하는 것을 열어주시고, 목마를 때는 샘물도 나게 하시고, 먹을 것도 하나님께서 주시고 모든 것을 다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을 바로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그대로 믿는 것이 중요하고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심하면 되다가도 다 틀어집니다.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이루어주시고 섭리하실 줄 믿어야 합니다. 이루어주실 믿습니다 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순종해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다 이루어 주십니다. 모든 것이 다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보이는 현상세계는 보이지 않는 말씀에서 다 나왔습니다.


이병규목사설교 히브리서 11.1-3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 법
어떤 침례교 선교사 한 분을 만났습니다. 한국에 와서 25년을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한국에서 살라고 한답니다. 저도 그렇게 권유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교사 말이, “하나님의 뜻대로 있는 곳이 제일 좋은 곳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말이 

딱 맞는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가 있는 곳이 제일 좋은 곳이니까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그것이 문제인데, 하여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고 제일 복 받는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고, 축복이 되는 것이고 하늘나라 가서도 칭찬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만 범사에 행해야 합니다.


1) 욕심을 버릴 것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으려면 제일 먼저 제거시켜야 할 것이 욕심입니다. 욕심을 가지고 찾으려 하면 잘못된 길로 가기 때문에 가다가 그만 파선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모든 욕심을 버리고, 아주 무(無)요 공(空)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 즉, 동으로 가라하면 동으로 가고, 서로 가라하면 서로 가고, 일하라 하면 일하고, 그만둬라 하면 그만두고, 앉으라하면 앉고, 서라 하면 서야 합니다.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찾기 전에, 자기가 먼저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발람의 기도가 됩니다. 발람의 기도는 자기의 욕심에 따라, ‘가면 좋겠다’는 주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한 기도입니다. 그러기에 가지 않아야 할 곳인데도,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욕심을 가지고 기도를 하는 것은, 나침판에 쇠붙이가 들어가서 나침판 침이 방향을 바로 가리키지 못함 같아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뜻인 것으로 생각하고 그 길로 알고 갑니다. 결국 망하고 맙니다. 발람의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감동이 왔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성경 위반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에 위반되는 일을 하려고 해서, 제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권면하니까 그 사람이 “목사님 저도 기도하고 하려는 겁니다. 기도하고 감동이 있으니까 하려는 것이지 감동이 없으면 왜 하겠습니까?”라며 아예 자기더러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인지에 아닌지에 대한 말만 하고 다른 말은 할 필요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자기가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지시 받은 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감동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발람의 기도를 통한 감동입니다. 먼저 자기 욕심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기도했기 때문에 잘못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기도 내용은, 자기 아내를 내쫓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내를 내쫓지 말라
고 했기 때문에 안 된다고 말해도, 그 사람은 그 말 하지 말라면서 다른 말은 다 순종해도 그 말은 순종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말은 할 거 없다. 그 말만 하겠다. 내쫓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경대로 해야 하는데 성경이 아닌 것을 욕심과 자기 생각을 두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감동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뭐라고 했는지를 언제든지 봐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기를 힘을 써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 자라나야 합니다.


2. 하나님께 합당히 행함
합당히 행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심


본문 10절에,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고 했
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왜 찾아야 합니까? 주께 합당히 행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주께 합당히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합당히 행한 결과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됩
니다. 합당히 행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노하시고 하나님께서 심판하
십니다. 범사에 하나님 앞에 합당히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
로 찾고 늘 하나님 앞에 합당하도록 힘을 써야겠습니다. 합당한지 아
닌지 찾고, 합당하지 않다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합당한 일은 비록 
그 일이 어렵고 손해가 나더라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하고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이기주의가 표준이 아닙니다. 자기는 다 내버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합당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표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주셔야 함
자기는 손해가 나고 원치 않는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면 됩니다. 자기가 당장 손해가 나고, 고통이 되고, 부담이 생기고, 짐이 무거워지고, 십자가가 오고 슬픔이 오는데 왜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면 된단 말입니까? 


요한복음 13장 32절,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
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그 사람에게 영광을 주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손해 
보는 것 같고, 죽을 것 같고, 잘 안 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대로
만 해 놓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
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해주시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존귀케 해주시고, 앞길을 열어주시고,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게 해주시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그 사람에게 다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이 해주셔야 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으로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으면 
살고, 하나님이 없으면 못삽니다. 말씀이 있으면 살고, 말씀이 없으면 
못삽니다. 물질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돈 많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살고, 그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이 되게 해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해도 안 되고 불행이 옵니다. 그곳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나야 함
본문 10절에,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고 바
울이 기도했는데, 이런 기도가 나와야 합니다.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나야 합니다. 점점 더 하나님을 아는 것
에 자라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나는 것이 영혼이 자라
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자라나야 하나님을 점점 더 알게 되고, 점점 
더 알아야 영혼이 자라납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안다고 해도 다 알지 
못합니다. 지극히 작은 부분밖에는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고 해도 몇 억만 분의 일도 모릅니다. 하나님
의 사랑이 지구덩어리 만치 크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모
래 알갱이 만큼밖에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다 알려면 얼마나 많
이 알아야 하는지 생각을 해보십시오. 무궁무진한 것입니다. 우리가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도 그 사랑을 그저 모래알갱
이 하나만큼만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점점 자라
나야만 영혼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지혜가 자라나는 것이 영혼이 자라
나는 것이고, 지식이 자라나는 것이 영혼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예수님께서 몸이 자라고 키가 자랐다고 했는데, 그것이 
영혼이 자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52절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
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하였는데 
지혜가 자랐다는 것은 영이 자랐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에 자
라나야 합니다. 점점 더 하나님을 알면 걱정이 다 없어집니다. 하나님
을 몰라서 걱정을 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알면 걱정이 다 없어집니다. 
자기 아버지가 미국 대통령이라 하면 걱정이 있겠습니까?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어딜 가도 걱정이 없고, 돈이 없어도 걱정이 없고, 어
디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다 영접할 것입니다. 대통령의 영향 때문에, 
그 아들에게 다들 잘 대접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
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잘 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의 힘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그 힘을 받게 됨


본문 11절에,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그 영광의 힘’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힘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의 힘은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전 인격에서 나오는 힘을 말합니다. 
그 힘을 좇아서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능하게 해주시기를 바울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의 능력을 받아서 능력 있는 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능력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능력 있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
의 영광의 힘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를 붙드시고 늘 역사하십니다.

그 영광의 힘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뜻에 바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 
분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뜻에 바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 
사람에게 와서 임합니다. 그 사람은 만능이 됩니다. 만능의 능력이 우
리에게 와서 역사해야 하는데 그 능력을 우리에게 입혀주려고 하나님
께서는 늘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걷
게 하시려고, 말씀에 순종시키시려고 늘 애를 쓰십니다. 


우리가 순종만 하면 그 능력이 와서 머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되지 않을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순종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될 것 같은 것만 하지 말고, 
될 것 같지 않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뜻이면 그대로 순종을 해서 하십
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의 힘이 그 사람에게 와서 능력이 있게 하고, 영광이 있게 됩니다. 


친히 영광을 받으시고 영광이 되게 하시는 힘
하나님이 주신 능력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힘이 됩니다. 하나
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힘도 되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하는 힘도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인
도하십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내신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였습니다. 바로 왕을 강퍅하게 만들고 바로 왕을 심판하
심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홍해바다를 가른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영광이 되게 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힘인데, 그 힘을 받은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만 하지 말고 그 영광의 힘을 받아서 그 힘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뜻을 이루어나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위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이제는 그 뜻을 알
아서 그 일을 할 만한 능력을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 다음에는 그 뜻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사실 그 능력이 와 있습니다. 와 있는데도 쓰지를 않아서 못 받습니다. 능력을 쓰라는 것입니다. 능력을 쓰는 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갑니다!”하고 가는 것이 능력을 쓰는 법입니다. “어
디든지 갑니다!”하고 가고, “무엇이든 합니다!”하고 하는 것입니다. 못
한다는 소리는 관두어야 합니다. 불가능이란 말을 집어치우고 ‘하나님
의 뜻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고 가야 합니다. 빌립보서 4
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
니라”고 했습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다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
서 4장 12절에는 바울이 뭐하고 합니까?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
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
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라고 합니다. 어떠한 형편이든지 능히 
그것을 다 믿음으로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고 말합니다. 어디든지 갈 수 있고, 하나님이 힘을 주시면 태산이라도 
올라갈 수 있고, 또 옮길 수도 있고, 뽕나무 뿌리를 뽑아서 바다에 던
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4. 선한 싸움을 잘 싸우는 자가 자라남
적극적으로 견디며 나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도우심


본문 11절에,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에게는 뭐든지 다 주십니다. 필
요하면 다 주십니다. 제대로 일하면 왜 안 도와주시겠습니까? 제대로 
일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나가는 전쟁을 우리는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견뎌
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지만 견뎌야합니다. 또 참아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고 오래 참으면서 오랫동안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나가면서 견디고 거기에 대해서 어려움이 올 때는 오랫동안 참고, 계속해서 참고 견디면서 일을 잘 싸우면서 나가면, 마침내는 당신의 영광
을 위하여 영광의 힘으로 그 사람을 붙들어서 능력이 있게 만들고, 능
력을 줘서 다 이기게 하십니다. 큰 능력이 생깁니다. 그렇게 해서 자
라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영권이 자란만큼 빛의 세계가 커짐
본문 12절에,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이라 했는데, 합당하게 해 나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기
초적인 것은 어느 정도 합당하게 했고, 이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선한 일을 바로 
해 나가면, 하나님의 기업을 받기에 점점 합당해 집니다. 점점 더 자
격이 되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그 기업을 많이 사용
할 수 있는 사용권이 주어집니다. 사용할 능력이 생기고, 사용할 지혜
가 있게 되고, 하나님께서 사용할 권리를 주십니다. 이렇게 선한 싸움
을 싸워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말
씀대로 선한 일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서 그 빛 가운
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점점 만들
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라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영적 세계에서 점점 영이 자
라나고, 영의 권세가 있게 되고, 점점 영권이 세지고, 점점 마귀의 세
력을 넓게 정복해 나가는 그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많이 싸워서 
이긴 사람에게 영권이 있습니다. 자라나야 영권이 생깁니다. 자라나지 아니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아니하고 영권만 있기를 원한다고 하면 영권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자라난 것만큼 영권이 생기고, 영권이 생긴 만큼 하늘나라 기업을 받게 되기 때문에, 자라나지 못하면 안 됩니다. 많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많이 자라난 사람이 강단에 서면 영권이 
있습니다. 나가서 전도해도 권세가 있습니다. 영권이 있게 됩니다. 자
라나지 못하면 그 만큼 영권이 없습니다. 말은 잘할지 몰라도, 영을 
움직이는 영권이라는 것은 거짓말 할 수 없고 속일 수 없습니다. 
사람 나이는 속일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나이는 속일 수 없습니
다. 나이 들었으면 나이 든 것이 다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60세 된 
사람은 60세 된 것이 나타나고, 70세 된 사람은 70세 된 것이 나타나
고, 80세 된 사람은 80세 된 것이 나타납니다. 못 속입니다.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영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의 세
계도 선한 싸움을 잘 싸워서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써서 그 능력을 
이룬 사람, 자라난 사람은 그 만큼 영권이 있습니다. 제대로 믿는 일
하려면 세월이 많이 걸려야 합니다.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연륜이 없
으면 안 됩니다. 영의 세계는 갑자기 자라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믿는 일 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선한 싸움을 제대로 싸우며,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선한 열매를 맺혀 나가면 그 만큼 그 사람의 영혼이 자라납니다. 


그러면 그 만큼 하늘나라의 것을 이다음에 얻을 수 있고, 성도의 기
업의 부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빛의 세계가 그만큼 커졌기 때문입니
다. 커졌고 그만큼 능력이 있어졌고, 그만큼 자라났기 때문에, 하늘나
라의 기업을 그만큼 받기에 합당하게끔 되는 것입니다.


5. 은혜에 감사하며 나아가는 신앙
바울의 골로새를 향한 기도 모본


‘아버지 하나님 감사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결과
는 무엇입니까?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기업을 받기에 합당하게 
되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자기가 한 것이 하나도 없고 전부 하나
님께서 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 감격하게 됩니다. 물론 자기가 
힘써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한 것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
입니다.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거저 준 것이지 그것이 공로가 
된 것은 아닙니다. 순종한 사람에게 거저 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기도를 해준 것을 보면 얼마나 바르게 해줬습니까? 

바울이 골로새교회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 주었습니까? 

첫째는,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되니까,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 다음은 둘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그대로 행하
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뜻을 안 다음에는 행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
대로 행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주께 합당하고 선
한 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그대로 행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둘째입니다.


셋째는 무엇입니까? 행한 사람은 무엇을 달라고 했습니까? 능력입
니다. 행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선 이제 능력이 있어야 되겠으니
까, 그대로 행할만한 영광의 힘을 좇아서 그대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능력이 중요합니다. 능력이 있어야만 됩니다.


넷째는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능력으로 행할 때에 참고 견디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참고 견디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어려
운 일이 오고 낙망할만한 일이 오고 십자가가 와도, 일이 완성되려면 
참고 견디면서 끝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다섯째 무슨 기도 했습니까? 성도의 기업을 얻기에 합당한 자격이 
점점 만들어 지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해달라는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 했습니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 성장을 위한 기도
우리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이
렇게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무조건 “잘 믿게 해달라”, “축복해 주시
옵소서”, “복 받게 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하지 말고, “무엇을 구하느
냐?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하고 예수님께서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그러니까 소경이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주
여! 눈을 뜨게 해 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물으실 때에,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시옵소
서. 진리를 바로 알게 해 주시옵소서. 바른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옵
소서. 옳은 것을 알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에는 그대로 행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능력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선한 하나님의 기업에 합당한 자격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감사하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를 해야 합니다. 참으로 우리 기도의 
모본입니다. 우리도 이런 신앙을 달라고 기도해야 되겠고, 다른 사람
을 위해서도 이렇게 기도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를 위해서도 이
렇게 기도해야 되겠고, 또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되겠습니
다. 그리고 기도하고는 나가야 되겠습니다. “선한 싸움을 하러 나간
다”, “하나님의 영권에 힘, 능력에 힘입어서 나간다”, “복음을 들고 나간다”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말씀을 순종해서 나가는 신앙, 정복하는 신앙, 이기는 신앙, 마귀의 세계를 하나님의 세계로 만드는 신앙, 이런 적극성을 띄고 나가는 그 신앙의 길을 걸어 나가야겠습니다. 기도하면 서 나가면서, 능력을 갖추면서 자라나면서, 자격을 만들면서 나아가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골로새서 1:9-1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능력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이병규목사설교집에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려면, 

첫째는 종의 위치에 있어야 됩니다. 종은 하나님의 시키시는 대로만 하는 사람입니다. 가라하면 가
고, 오라하면 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다윗과 같이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됩니다.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다 지켜야 됩니다.
셋째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아야 합니다.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을 좇는 일이 중요합니다. 

넷째는 정직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 다윗이 정직한 일을 행했습니다.


사도행전 13:13-52 안디옥에서의 전도와 핍박중에 복음전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결혼은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정하신 사람과 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어야 함

창세기 6장 1-2절에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불신자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아내를 삼지 않고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아내를 삼아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아름다움은 아무 볼 것도 없고 위신도 안 서는 것입니다. 

어떤 이가 아들의 결혼에 기도를 부탁하여 어떤 여자인가 물으니 안 믿는 여자라고 하였습니다. 계속 반대해도 끝까지 결혼을 하겠다고 하여 그냥 아들이 좋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뒀다는데, 그것이 바로 이 창세기 6장에 있는 대로 한 것입니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도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대로 나가다가 120년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예언을 받았습니다. 요새 사람들은 어떻게 결혼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혹시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결혼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결혼하는 것은 심판을 받는 일입니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안목의 정욕대로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대로 아내를 맞았습니다. 자기가 낮아지고 멸시를 받아도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지면 만족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하려 하는 것, 이것이 참된 성도의 생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할 때 미인과 하려고 한답니다. 세상에는 다 죄인 뿐인데 미인이 어디 있습니까? TV에 나오는 미인, 미스코리아 같은 사람들은 변변치 않습니다. 미인은 없는 줄로 알면 됩니다. 또 미인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마음이 아름다운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3-4절에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온유하고 고요하며 안정된 심령으로 기도를 많이 하면 영적 생활을 하게 되고 그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편인 하나님께서 들어오시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같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것이지, 미인 한 명 얻어놓고 그 사람만 쳐다보면서 사는 것이 좋습니까? 또 그 사람만 쳐다보면 뭐하겠습니까? 결혼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사람과 해야 합니다. 또 이미 결혼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 살라는 것이 뜻인 줄 알고 아무리 마음에 맞지 않아도 창세때 예정해주신 사람이므로 기도하며 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 사랑하고 위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사랑하고 위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의 가정 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 넓은 의미에서는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