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에 대한 경례와 징계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필자는 해가 뉘엇 넘어 갈 때까지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국기하강식을 알리는 음악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오른손을 가슴에 올린 채 눈에 힘을 주고 깃대를 바라보며 국가에 충성을 다짐(?)했던 어린 시절 기억이 아련하다. 언제부터인가 당시 그 음악소리와 성우와 비슷한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에 손이 자연스럽게 올라가려는 나를 보고 놀란 적도 없지 않다. 당시 애국심에 충천해 있던 나는 어린마음에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고 바쁘게 지나치는 사람을 목격하면 ‘저런 매국노! 저런 사람들이 나와 같은 한국 사람이라니. 국가의 은혜도 모르고, 차라리 외국으로 떠나라’며 맘속으로 온갖 욕설을 퍼붓고 분개했던 기억도 난다. 동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추억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씁쓸한 자화상이며 이런 ‘국기에 대한 경례’는 지금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여전히 각종 행사나 일반 학교에서 다른 형태이지만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런데 이 ‘국기에 대한 경례’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어느 고등학교 교사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 ‘편향된 사상교육을 한다’는 이유를 들어 일부 학부모들이 경기도교육청에 민원을 접수했다. 그리고 그 교사는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의 의무와 제63조 품위유지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파면·해임·정직 등 중징계를 기다리고 있단다. 그 학교의 학부모들이 TV에 나와 격분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 내가 그토록 분노했던 모습과 정말 다르지 않아 실소를 금할 수 없었으며 한편으로는 또 다른 무서운 폭력으로 느껴졌다. 교사라는 직업은 우리 사회의 일반직업과 또 다른 사회적 요구를 받는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만큼 교육이 가지는 중요성을 모두가 공히 인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교육공무원으로서 품위와 성실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이고, 또 그 이유로 한 교사의 징계사유가 된다는 것은 21세기 현대 민주사회에서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국기’란 국가를 표현하는 상징물이며, ‘국기에 대한 경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격과 의무를 부과하는 절체절명의 형식도 아니다. 더구나 헌법과 국제인권법에서 보장된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교육현장에서 침해하려 한다면 그것도 썩 교육적인 방식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 이번 일(개인적으로 이번 일을 ‘사건’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함)과 징계 과정에서 또 다른 우리사회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슬프게 한다. 즉, 이번 일을 보수를 자처하는 특정언론은 보도를 통해 ‘전교조 교사의 편향교육’이라며 반공, 냉전이데올로기의 이념갈등으로 확대·왜곡하고, 그 학교 교장이나 일부 학부모들의 전교조 교사 대한 ‘개량한복을 입는다’ 등의 다소 엉뚱한 편견이 깊게 내재하여 있다는 것이다. 즉 이번 일의 본질과 무관한 사실들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국회에서 대한민국 국기법안을 발의해 다소 논란이 있지만 ‘국기에 대한 맹세’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몇 해 전 미국에서조차도 자신들의 ‘국기에 대한 맹세’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며 법원에서 위헌판결을 받은 사례를 보더라도 그동안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에 대해서도 꼭 이런 방식으로 애국심을 표현해야 하는지 등 우리 사회의 진지한 논의와 토론을 요구받고 있다. 왜냐하면 얼마 전까지 시끄러웠던 황우석 사태와 월드컵 시기에 보여준 사회적 현상과 함께 진정한(?) 애국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우리 사회에는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일은 이렇듯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없지 않으므로 굳이 경기도교육청이 징계라는 사안을 떠안고 고민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당연히 징계(절차)는 철회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 경기도교육청이 성급하게 합리적인 판단을 저버리고 징계라는 자충수를 두어 또다시 교육계가 웃음거리가 되는 해프닝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송원찬/경기복지시민연대 정책실장 / 2006.08.03 / 중부일보
70년대 국기에 대한 경례가 우상에 절하는 것인가 하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생명이 없는 것에는 절하지 않는다"가 결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