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꿈을 기도하라

컬럼,설교 2009. 2. 19. 12:39 Posted by allinda

기독실업인회 회원인 어느 기업인은 시골교회 목사였던 부친이 기도하실때마다 "우리나라가 부흥해서 한 손에는 원조물자를 들고 다른 손에는 복음을 들고 세계로 나가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실때면 그렇게 싫더라고 했다. 당시 자신은 월사금을 못내서 학교에서 야단맞고 쫒겨올 형편이었는데 가딩치도 않은 아버지의 기도가 그렇게 싫더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 아버지의 기도가 다 이루어지고 있더라며 아버지를 회상했다.

주일학교 다닐 때 어른들을 따라 삼각산을 올라가면 골짜기마다 울부짖는 기도소리가 들리곤 했다. 할머니들이 "이 나라를 지켜 주시고, 부흥하게 해 주시고, 북한의 동포들을 김일성의 억압에서 풀어 주시고, 다시금 북녁땅에서 찬송과 기도소리가 들리게 해주소서...."라는 소리를 흔히 들을수 있었다. 깊은 밤 산골짝을 울리는 부엉이 소리와 기도소리 그리고 처연한 달빛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그 눈물의 기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체감하며 산다. 그런데 나는 오늘 이렇게 황당하지만 위대한 꿈을 기도하고 있는가 돌아보면 부끄럽다.

네? 길을 물으신다고요?

죄송합니다.

제가 이 동네 사람이 아니라서

모르겠네요.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셔서 이런 고난을 겪게 하시니....." 새벽 기도를 마치고 따로 부르셔서 목사님께서 기도해주셨다. 고등하교 다니던 시절이었다. 왜 그렇게 힘들고 서러운 일들이 많았는지.....

돌아보면 두 차례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다. 간판다는 일을 하다가 몇 차례건물에서 떨어질 뻔 한 적도 있었다. 생존율이 20%도 안된다는 심장마비를 겪고도 살아났다. 그런 가운데 온갖 일을 다 경험한 셈이 되었다.

일을 당할 때마다 고등학교 시절 목사님께서 해 주시던 기도가 생각난다. 특별히 사랑하셔서 고난을 주시니 그 고난을 지나면 측복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견뎌내게 해 주셨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문한다. 근데 그 고난이 하나님 일을 하다가 받은 고난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쭐할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특별히 사랑하셔서 고난을 겪게 하셨지만 나는 그 고난을 통해서 얻는것이 없는 이유를 알았다. 주를 위해 달게 받은 고난이 아니라면 놀랄일도 기대할 일도 없다는 것이다.

교계로부터 이단이라 규정받은 종교단체들이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언론활동을 하고 있다. 거기에 비하면 교계가 언론과 인터넷 활동에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이고 있다.

과천의 신천지교회는 주일마다 교인들이 도로변에 나와서 쓰레기줍기등을 하는 봉사활동을 경인일보등에 보도자료를 제공, 기사화 되었다. 안상홍증인이라 평가되는 하나님의교회는 분당 예배당에차려진 박물관을 소개한 기사가 인천일보에 게재됐다.

안양시기독교연합회는 안양광역신문 8면을 단체구매해서 상단에는 연합회의 소식을 넣고 하단에는 20여개의 교회 안내를 돌아가면서 거재하고 있다.안양불교연합회가 연2회 안양지역불자 사업인들로부터 후원을 받아 2만여부의 안양불교신문을 발행하여 일간지에 삽지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개독교~]해가며 교회을 비난하는 네티즌의 글을 자주 볼수 있다. [논쟁하지 말라]는 말씀대로 댓글을 달아가며 싸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당한 선교활동의 일환으로라도 인터넷에 대한 홍보활동이나 언론을 상대로한 보다 적극적인 대응활동이 필요하다.

“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

유대문화 미드라쉬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다윗왕이 궁중의 보석세공인을 불러 “나를 위해 반지 하나를 만들고 거기에 내가 너무 큰 승리의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에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글귀를 써 넣어라. 그리고 동시에 내가 절망에 빠졌을 때에는 그 글귀가 나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하느니라”고 명령했습니다.

보석세공인은 그 명령대로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적당한 글귀가 생각나지 않아 고심하다가 솔로몬 왕자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솔로몬이 대답했습니다. “이런 말을 써 넣으세요. ‘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 왕이 승리의 순간에 그것을 보면 곧 자만심을 가라앉히게 될 것이고 낙심 중에는 이내 표정이 밝아질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순간이요, 곧 지나가 버리는 것임을 알 때, 우리는 성공이나 승리의 순간에도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교만해지지 않을 수 있고, 실패나 패배의 순간에도 지나치게 절망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070826 오산제자감리교회 주보 컬럼에서




컬럼/부지중에이단을돕지않으려면많이알아야실수를줄인다.

[이백성이지식이없으므로망하는도다.]“대학원나오고박사받은교인들이수두룩한데목회자가공부를게을리하면안된다.”어느신학교교장의말이다.어느목사가전철역에서혼전순결서약운동을하길래좋은일이라생각되서서명해주었다고자랑하길래통일교에서하는것이라고말해주었더니얼굴색이변하더라.안양의어느교회에서는주일학교축구단이창단되었노라고광고하고는아이들을단상에세웠다.그런데아뿔사.아이들은붉은색바탕에독일맥주회사칼스버그의로고가가슴에가득새겨진유니폼을입고올라왔다.무식이죄로다.그것이술만드는회사로고인줄알았더라면공짜로주는것이라고덥썩받아입히지는않았을것이다.

지식이없다고하나님이일을하는데부족한것이아니다.오히려섯부른지식이하나님의은총을가리는경우가더많다.하지만세상일에대해서도꾸준히상식을넓히고교양을쌓아야부지중에죄를짓지않는다.“우리가알고지은죄와모르고지은죄를용서하소서”

예수 믿는 티를 내는 사람들

컬럼,설교 2007. 8. 5. 14:51 Posted by allinda

예수믿는티를내는사람들

이어령교수가세례를받은일이조선일보,중앙일보에전면톱으로실렸다.과연유명한사람이라그의회심자체가하나님의영광을나타내는일이되었다.

최경주,송아리선수가대회에서우승소감을말할때“하나님께영광을돌립니다”하는말이어느전도자의말보다힘있게들린다.

카피라이터이만재교수가회심한이후쓴수필[갓쪄낸찐빵],[꼬리에꼬리를무는영어]로유명한한호림교수가쓴[꼬리에꼬리를무는은혜]같은책이유명한사람들이쓴책이어서인지재미있게보았다,

유명하다는것이분명부담스러운것이리라.하지만그만큼하나님영광을드러내는데유익이되리라.사탄의전략에말려허물을지어‘믿는다는사람이’라고하나님영광을가리게될지도모르지만그래서더조심하게되리라.

예수믿는다고티내고살기로작정하시라.당신이유명하다면그만큼더영광이되리라.



컬럼/교회는화려한건물만지으려한다?

강원도주문진항에는절벽위에예쁜교회가있습니다.산비탈을계단을걸어올라가서호화롭게치장된건물을보면서“이렇게지을돈이면어려운이웃을돌아보는일에쓸수있을텐데..”싶었습니다.마침성찬이있었는데얼굴이새까맣게그을린어부들이딴에는주일이라고정장을했는데어찌나안어울리던지우스꽝스러웠습니다.

예배를마치고나오는데남자들이문앞에서서인사를했습니다.“다니러오셨나보지요?평안하십시오”하고손을내미는데그손이어찌나거칠던지.....악수를하면서나는깨달았습니다.이절벽위에예쁘게지은예배당은이유가있었습니다.

늦은밤고기잡으러나간어부가새벽이되어돌아올때,안개가짙어져사방을분간하지못할때.등대가유일한소망이겠지요.그럴때주문진항절벽에자기교회예배당십자가가보일때.그어부마음에얼마나위안이될까요?그생각을한이후나는예배당건물짓는것을두고말하지않기로했습니다.

건물지을돈을선교와구제에쓰고학교강당을빌려서예배를드리는교회도있습니다.높게걸린종탑을보면서어릴적주일학교다니던생각이나서교회로돌아왔다는사람도있습니다.

젊은나이에청상이되어과일행상으로다섯아이를기르던우리외할머니는사는게너무힘들어죽어버리고싶으셨답니다.어느날해질무렵마음은허전한데예배당에서종소리가나길래당신도모르게그소리를따라예배당에들어서셨고외할머니따라서스무명이넘는증손자들까지모두예배당에나갑니다.


이어령교수회심을크게실은중앙일보7월26일자

어릴때어머니께서하신말.“밖에서길을잃어미아가되면파출소를찾아가라.만약에못찾으면커서유명한사람이되라.유명해지면방송에나가서엄마를찾아라”나도우리아이들어릴때같은말을했다.070726중앙일보에이어령교수가세례를받았다는기사가크게났다.이성과지성으로만산사람이영성의세계에들어섰다는것이뉴스거리가됐다.유명한사람이되면하나님께영광이되는구나.

광고계에서알아주는카피라이터였던이만재씨가술고래에서크리스천이된이후쓴수필[갓쪄낸찐빵]이베스트셀러가됐다.맛깔스런글솜씨로유명한그가그를인도한윤형주목사에대한존경심을실은글이많은넌크리스천에게도회자되어하나님께영광이되었다.

유명해진다는건분명근사한일이다.반면조심스런일이다.범인들은아무렇지않게넘어갈일도‘예수믿는다는사람이’하고한층더높은도덕적기준을요구한다.그렇지만삼가조심하는유명인의행위가하나님이영광을드러내는도구로쓰일수있다면그만한예물도없으리라.꼬리가되지않고머리가되어들어쓰시기에합당한재목이되는가가우선해야할일이겠다.

컬럼 / 안믿는 사람들을 부하로 둔 크리스천 상사들에게

크리스천이 직장에서 점점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남을 부리는 위치에 오르면서 아랫사람들이 돌아서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어떤 프로젝트를 끝내고 고생한 부원들에게 한턱 낸다고 식당으로 데려간다. 자기가 술을 먹지 않으니 아예 시킬 생각도 않는다. 맨숭맨숭 밥만 먹고 일어나잔다. 뭔가 좀 부족하다 싶은 표정을 읽고는 아래 과장이 “자 내가 술한잔 살게. 가자” 하고 일행을 추리자 그제서야 눈치를 채고 살며시 불러서 지갑을 열어 대신 부탁한다며 군자금을 지원한다. 그러나 여기서 푸짐하게 쓰지 못하면 돈쓰고도 욕먹는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세상에 내보내실 때 걱정된다시며 “비둘기 같이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로우라”고 당부하셨다. 안믿는 사람들을 부리는 위치에 서게 될 때 조금만 더 세심하게 배려하라. 제발 예수 욕먹이지 말아라.

인맥넓히기와 사람의 의지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

성공학 관련 서적이 서점에서 가장 잘팔리는 책이랍니다. 그중에서도 인맥넓히기, 네트워크 구성하고 유지하기가 꾸준히 팔리는 걸 보면 사람관계가 중요한 일이라는데 공감이 갑니다. 그러나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연을 더하면 그만큼 세상이 넓어지겠지요. 그러나 오지랖이 넒은 만큼 바람이 불면 가지가 많아서 걸리적 거리는 일도 많습니다. 제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새롭게 관가에 인사가 일면 “새로 온 아무개는 내 고향 후배고, 이번에 새로 부임한 누구누구는 내 친구의 친구고....”그리고는 축하 화환을 보내는 일부터 시작해서 인맥관리에 들어갑니다. 사업을 연결해주고 청탁을 받으면 힘이 닫는 데 까지 도우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니 주변에 사람이 항상 북적댑니다. 그와 20분 이상을 이야기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전화벨이 울려대니까요. 식사고 공연이고 한 자리에서 즐기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면 “왜 저러고 사나”싶습니다. 청탁받고 청탁하는 일이 일반사가 되다보니 선의로 받은 청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무리수를 두기도 쉽고 자기가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의 곁에 쌓이는 명성과 재물을 보면서 위태롭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이 약하다 보니 주변을 사람의 장막으로 에워싸서 보호막으로 삼으려는 모습이 측은하기까지합디다. 그렇게 뒤를 봐준 사람들이 은공을 아는 것도 아니데....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는 하나님이 떠오릅니다.(060104)

국기에 대한 경례와 징계

컬럼,설교 2007. 3. 26. 01:26 Posted by allinda

국기에 대한 경례와 징계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필자는 해가 뉘엇 넘어 갈 때까지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국기하강식을 알리는 음악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오른손을 가슴에 올린 채 눈에 힘을 주고 깃대를 바라보며 국가에 충성을 다짐(?)했던 어린 시절 기억이 아련하다. 언제부터인가 당시 그 음악소리와 성우와 비슷한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에 손이 자연스럽게 올라가려는 나를 보고 놀란 적도 없지 않다.
당시 애국심에 충천해 있던 나는 어린마음에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고 바쁘게 지나치는 사람을 목격하면 ‘저런 매국노! 저런 사람들이 나와 같은 한국 사람이라니. 국가의 은혜도 모르고, 차라리 외국으로 떠나라’며 맘속으로 온갖 욕설을 퍼붓고 분개했던 기억도 난다. 동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추억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씁쓸한 자화상이며 이런 ‘국기에 대한 경례’는 지금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여전히 각종 행사나 일반 학교에서 다른 형태이지만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런데 이 ‘국기에 대한 경례’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어느 고등학교 교사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 ‘편향된 사상교육을 한다’는 이유를 들어 일부 학부모들이 경기도교육청에 민원을 접수했다. 그리고 그 교사는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의 의무와 제63조 품위유지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파면·해임·정직 등 중징계를 기다리고 있단다. 그 학교의 학부모들이 TV에 나와 격분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 내가 그토록 분노했던 모습과 정말 다르지 않아 실소를 금할 수 없었으며 한편으로는 또 다른 무서운 폭력으로 느껴졌다.
교사라는 직업은 우리 사회의 일반직업과 또 다른 사회적 요구를 받는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만큼 교육이 가지는 중요성을 모두가 공히 인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교육공무원으로서 품위와 성실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이고, 또 그 이유로 한 교사의 징계사유가 된다는 것은 21세기 현대 민주사회에서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국기’란 국가를 표현하는 상징물이며, ‘국기에 대한 경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격과 의무를 부과하는 절체절명의 형식도 아니다. 더구나 헌법과 국제인권법에서 보장된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교육현장에서 침해하려 한다면 그것도 썩 교육적인 방식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 이번 일(개인적으로 이번 일을 ‘사건’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함)과 징계 과정에서 또 다른 우리사회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슬프게 한다. 즉, 이번 일을 보수를 자처하는 특정언론은 보도를 통해 ‘전교조 교사의 편향교육’이라며 반공, 냉전이데올로기의 이념갈등으로 확대·왜곡하고, 그 학교 교장이나 일부 학부모들의 전교조 교사 대한 ‘개량한복을 입는다’ 등의 다소 엉뚱한 편견이 깊게 내재하여 있다는 것이다. 즉 이번 일의 본질과 무관한 사실들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국회에서 대한민국 국기법안을 발의해 다소 논란이 있지만 ‘국기에 대한 맹세’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몇 해 전 미국에서조차도 자신들의 ‘국기에 대한 맹세’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며 법원에서 위헌판결을 받은 사례를 보더라도 그동안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에 대해서도 꼭 이런 방식으로 애국심을 표현해야 하는지 등 우리 사회의 진지한 논의와 토론을 요구받고 있다. 왜냐하면 얼마 전까지 시끄러웠던 황우석 사태와 월드컵 시기에 보여준 사회적 현상과 함께 진정한(?) 애국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우리 사회에는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일은 이렇듯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없지 않으므로 굳이 경기도교육청이 징계라는 사안을 떠안고 고민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당연히 징계(절차)는 철회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 경기도교육청이 성급하게 합리적인 판단을 저버리고 징계라는 자충수를 두어 또다시 교육계가 웃음거리가 되는 해프닝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송원찬/경기복지시민연대 정책실장 / 2006.08.03 / 중부일보

70년대 국기에 대한 경례가 우상에 절하는 것인가 하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생명이 없는 것에는 절하지 않는다"가 결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