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집사 전도행전’은 한국 기독교를 이끄는 첨병이자 오랜 제자훈련으로 전도폭발운동을 주도해왔던 ‘사랑의교회’ 일곱 집사의 전도 체험기다. ‘옥경이’ ‘칠갑산’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등 대중가요를 만들던 작곡가에서 정치 폭력배를 전도한 조운파씨를 비롯해 독실한 불제자에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거듭난 정혜자씨, 지존파에게 복음을 전했던 이재명씨, KBS 전 아나운서 박희옥씨, 서울구치소 교도관 정형복씨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사랑의교회 옥한흠 담임목사는 추천글을 통해 “자욱한 안개 속을 걸어가는 것과 같은 불확실성의 세상 앞에서도 초대 교회와 같은 복음의 열정으로 제자도를 실천하며 아름다운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고 말했다.

조운파씨는 자신이 작곡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가 크게 히트하자 오히려 자신의 마음은 공허했다고 한다. 특히 모든 일에 당당하시던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슬픔보다는 인생에 대한 깊은 허무와 절망감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와 “사람은 왜 죽어야만 하는가”라는 인생의 근본적인 물음들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때 만난 것이 새벽에 일어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울면서 기도하는 장로 한 분이었다. 그 장로는 방황하는 조씨에게 “우리 몸이 더러워지면 씻으면 되고 옷이 더러워지면 빨면 되겠지만, 영혼이 병들고 더러워지면 어떻하겠나”라는 충격적인 질문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는 종교계로 귀의한 후 복음전파에 열중하고 있다.

무슬림을 살리는 30일 기도

크리스찬미디어 2015. 6. 26. 09:30 Posted by allinda

무슬림을 살리는 30일 기도

17억 무슬림이 기도하는 라마단 기간(6월18이~7월17일)에

죽어가는 무슬림을 위해 기도합니다.

http://www.prayformuslims.org/

교회를 처음 방문한 사람의 입장에서

듣는 10가지 충고

 

문화선교연구원 블로그에서 http://www.cricum.org

 

 

http://www.cricum.org/m/post/779

Falling Plates

크리스찬미디어 2014. 7. 25. 09:58 Posted by allinda

https://www.facebook.com/#!/photo.php?v=552312934825024

예수를 전하는 www.yesoonim.com

크리스찬미디어 2014. 4. 24. 22:35 Posted by allinda
예수를 전하는 방법 한가지 더. www.yesoonim.com
이 주소를 전해 주는 것

1927년 버트런드 러셀이 'Why I'm not a Christian?' 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해서 세상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습니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당대 석학의 연설은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전세계적으로 확산시켰습니다. 이후 C.S. 루이스와 존 스토트가 'Why I'm a Christian?' 이라는 제목으로 반론을 제기했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듯이 크리스천은 예나 지금이나 논란의 중심에 서곤 합니다. 25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조정민 목사는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40대까지 불교에 젖어 지냈습니다. 성공가도를 달리며 열심히 살았던 그는 어릴 때부터 진리에 대한 갈급함으로 여러 종교에 심취했었다고 합니다. 모태신앙인인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교회에 나가겠다고 동의했지만, 막상 결혼 후에는 교회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매일 새벽기도를 나가는 아내가 무엇 때문에 날마다 어김없이 교회를 가는지, 정말 교회에 가는 건 맞는지 의심이 들어, 어느 날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스스로 교회를 찾아가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다음날부터는 이 교회를 취재해 보기로 마음먹고 꼬박꼬박 교회에 나갔다고 합니다. 처음엔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아내를 교회에서 구출하겠다는 각오로 교회에 나갔던 것이 계기가 되어 예수를 알게 되고,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게 됩니다. 『왜 예수인가?』 조정민 목사는 그가 예수를 믿기 전에 고민했던, 예수를 믿고 나서도 고민했던 문제들을 열 두 개의 키워드로 정리했습니다. 크리스천이지만 제대로 알고 믿는 크리스천은 얼마나 될까요? 모든 크리스천과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믿음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반(半)신자와 비(非)신자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yes24 다락편지

국민일보사는 한국기독교문화예술총연합회(이사장 김삼환 목사, 회장 김소엽 권사)와 공동으로 ‘제6회 신춘문예 신앙시’ 공모를 합니다.

본보의 신앙시 공모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시에 담아 국민 정서를 순화시키고 하나님 사랑을 전할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심 확산과 국민 정서 함양에 기여하는 신춘문예 신앙시 공모에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참가 자격: 만 20세 이상이면 기성과 신인 구분 없이 누구나 응모 가능. 단 참가작은 신작시여야 하며 3∼5편을 제출해야 함(응모편수 과부족 시 심사에서 제외)

◇원고마감: 2014년 2월 20일(목)

◇수상자 발표: 2014년 3월 12일(수), 수상자는 전화로 개별통보

◇시상 내용: 대상 1편 상패와 상금 300만원, 최우수작 1편 상패와 상금 100만원, 우수작 2편 상패와 상금 각 50만원, 장려상 3∼5명 상패(대상과 최우수작은 등단 시인으로 예우하며 한국문인선교회가 발간하는 문예지 ‘예지’ 혹은 연간 발행 시집에 수록)

◇접수방법: 이메일(jesusmunin@hanmail.net) 한글 파일로만 접수

◇기타: 접수 시 성명과 주소, 전화번호, 간단한 본인소개(약력 경력사항 직업 등) 명기 요망. 접수된 원고는 반환되지 않음

◇문의: 02-786-3320, 다음 카페(http//cafe.daum.net/yejibooks), 예지북스 신춘문예 게시판

◇주최: 국민일보·한국기독교문화예술총연합회

◇주관: 한국문인선교회

◇후원: 명성교회(김삼환 목사), 신촌성결교회(이정익 목사), 이랜드(박성수 회장), 동구제약(이경옥 회장) 진흥카렌다(박경진 회장)

◇협찬: CTS TV CBS TV 극동방송 아름다운동행

여행중 예배를 위해 찾은 예배당 입구에서 만난 [울산기독신문]

2003년 창간해 10여 명의 운영위원들이 2만원씩 모아서 발행하는 월간 타블로이드신문이다.

2013년 12월 호에는 신천지가 울산 최대의 예배당을 짓고 있는데 교계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탄식하는 글이 실려 있다. 신문 배포를 위해 봉사자를 찾는 광고도 눈에 띈다. 월 1회 4시간 정도를 차로 7~80개 교회를 돌며 신문을 배포해주면 약간의 사례를 하겠다는 내용이다.

지역신문 중에서 기독인들을 위한 신문을 내는 귀한 손길을 만난 것이 무척 반가왔다.

 

 

 

 


안양서부교회 선교부가 소식지를 창간했다.
교회가 돕는 일본,우크라이나 등 선교지의 소식을 전하고 함께 사역을 권하는 목적에서다.

인터넷 다음에 카페가 있다.
http://cafe.daum.net/aysuboo.mission
하나님의 연주자/송솔나무 지음/규장

저자의 성은 노래를 연상시키는 ‘송’이며 이름 은 ‘솔나무’,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그는, 만 열 세 살에 세계 최고의 음악대학 중 한 곳인 줄 리아드 프리스쿨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천재 플루티스트(flutist)이다. 드라마 ‘허준’ ‘이산’ ‘동이’에서의 그의 연주에 우리 심금도 따라 울었고, 음악이란 멈출지라도 여운처럼 계속 들릴 수 있음을 알게 해준 세계적인 연주자이 자 작곡가이다.

어려서는 매우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 피신을 하다시피 도미(渡 美)하여 왕따를 당하고, 스위스 유학 시절에는 악기까지 도둑을 맞으며 음악을 접고 주님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과 십 자가 사랑으로 그를 되찾은 주님은 그를 결국 당신의 악기로 고치시고 ‘하나님의 연주자’가 되게 하셨다. 그는 플루티스트로서의 부와 명 예를 다 누릴 수 있을 만큼 인정받았지만, 하 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전 세계 80개국을 다 니며 연주했다. 현재는 국내외 집회와 공연에 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온누리교회 일본선 교집회 ‘러브소나타’에 열 차례나 참여하여, 일본인에게 위로와 복음을 전하는 음악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이 나를 연 주하시면 내 인생이 달라진다!” 책에는 왕따 에서 줄리아드 장학생으로,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빈민촌 거리로 나아가 오직 단 한 분의 청중만을 위해 연주하는 송솔나무의 믿음의 고백이 들어 있다. 그럼 과연 하나님의 연주자 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연주자는 ‘연주’라 하 지 않고 ‘찬양’이라 한다. ‘공연’이라 하지 않고 ‘예배’라고 한다. 연주를 통해 ‘감동’을 주는 자 가 아니라 찬양을 통해 ‘은혜’를 끼치는 자다. 자기가 주인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 인공으로 만드는 자다.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과 하나님의 사 랑을 음 하나하나, 호흡 하나하나, 몸짓 하나 하나에 실어 전하는 자다. 그는 이 일을 봉사 라 하지 않고 사명이라 한다.

어느 때 이상으로 어렵고 힘든 시절을 살아가 면서, 자신이 마치 부러진 싸구려 악기처럼 볼품없는 인생이라고 느끼는 이들에게, 송솔나 무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진정한 위로와 크고 놀라운 계획을 알게 해줄 책이다(02-578-0003).

국민일보 서평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내며 30년 기자를 지내고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회 사무국장으로 봉사한 김경래 장로의 구술회고록.

 

저자 : 김경래
저자 김경래(金景來)는 1928년 4월 3일 경상남도 통영 출생. 독실한 신앙을 지닌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교회와 연을 맺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부산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였고, 1957년 《사회악과 사교운동》 출간으로 한국 사회에 신흥 사이비 종교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1960년 「경향신문」에 입사하며 언론인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펼친다. ‘20세기 한국 언론이 보도한 10대 특종’으로 꼽히는 월남 파병 기사, 한국 경제를 뒤흔든 삼분三粉 폭리 사건과 사카린 밀수 사건 기사가 그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1971년 「경향신문」 편집국장에 취임한 그는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직당하기까지 정론직필正論直筆을 위해 숱한 유혹과 격랑의 시대에 맞섰다. 이후 1982년 한경직 목사의 부름을 받고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 사무국장에 취임하여, 당시 분열되고 느슨해 있던 교계 일들에 광폭적 시야와 속도를 더한다. 1984년 한국 기독교 100주년 선교대회를 맞아 4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참가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한국기독실업인회 활동, 기드온협회 운동,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 나라와 대통령을 위한 25기도모임 등을 총괄 기획하고 조정자 역할을 했다. 또한 한국기독교선교기념관,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건립 및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성지화 사업을 추진하는 등 한국 교회 연합의 기틀을 세우고 발전의 역량을 마련했다. 지은 책으로 《사회악과 사교운동》, 《사회부 기자 미국 루포》, 《애국가와 안익태》 등이 있다.

머리말 _김경래
1부 언론인의 길을 걸으며
기자의 매력에 빠지다미국 여행에서 만난 새로운 세계《사회부 기자 미국 루포》
<경향신문>에 둥지를 틀다월남 파병 특종 전말박정희 최고회의 의장과의 첫 만남
시대의 아픔을 드러내다삼분 폭리 사건과 사카린 밀수 사건특파원으로 세계를 누비며<경향신문> 31대 편집국장박 대통령의 제안을 거절하다한국 사회의 내일을 생각하다
박 대통령과 주고받은 편지새마을운동을 주창한 김용기 장로
한일회담의 주역 이동원 장관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선생파리 특파원 이어령
별명과 결혼식 주례에 얽힌 이야기꺾인 꿈, 강제로 마감된 언론인의 길
2부 행동하는 믿음으로
믿음의 그루터기믿음의 동반자, 아내 차은희 권사나의 자녀들믿음의 스승들
믿음의 동지들 1믿음의 동지들 2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함없는 교회를 꿈꾸며
집 판 돈에 얽힌 이야기사이비 기독교 비판“각하께서도 예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목포 공생원 윤학자 여사다니엘학교 이야기기독실업인회와 기드온협회
연예인교회와 매스컴선교회기업가의 꿈을 내려놓다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
한기총과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나라와 대통령을 위한 25기도모임
작곡가 박재훈 목사연변과기대?평양과기대 김진경 총장
3부 양화진 언덕에 서서
100주년협의회 탄생 과정한경직 목사의 뜻밖의 초대100주년 선교대회를 치르다
순교자기념관을 건립하다순교자기념관과 전두환 대통령
양화진의 위기와 전택부 장로양화진에 선교기념관을 세우다선교기념관과 유니온교회
한경직 목사 이후의 100주년협의회양화진 성지화 마스터플랜
100주년기념교회와 이재철 목사성지로 거듭난 양화진오해와 갈등
모 교단의 개입‘양화진 소송’의 전말양화진은 나의 ‘땅끝’
덧붙이는 말 _김원숙

월남 파병 기사가 나간 날 느지막이 출근하던 나는 세 명의 기관원들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갔다. 그곳은 내가 늘 출입하던 경복궁 옆 최고회의 건물 안에 있는 이후락 공보실장 방이었고, 곧이어 박정희 의장실로 안내되었다. 취재기자로서 취재원을 만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추궁당하기 위해 잡혀 온 신세였으므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1년 전부터 최고회의를 출입하며 수많은 기사를 써왔지만 박정희 의장을 코앞에서 일대일로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긴장감 속에서도 박정희 의장의 손을 보았다. 타들어가는 담배 외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박 의장이 말문을 열었다.---박정희 최고회의 의장과의 첫 만남

1982년 11월 어느 날 아침, 강남 말죽거리 인근에 살던 우리 집에 한경직 목사가 찾아왔다.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그가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나를 찾아온 것이다. 교단과 출석 교회가 달랐으므로 나는 한경직 목사와 함께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내가 매스컴선교회 회장으로 있던 1970년대 중반, 선교회 월례모임에 한두 차례 오셔서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을 뿐이었다. 나로서는 한경직 목사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가 나를 알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김 장로님, 저와 함께 일합시다. 한국 기독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일을 하려고 하는데, 함께해 주시지요.”
뜻밖의 제안이었다. 너무나 돌연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53세였고 대한아이소플라스트 사업뿐 아니라 국내 최초의 외식사업체인 던킨도너츠 국내 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성공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사업을 포기하고 교계 일에 동참해 달라는 한경직 목사의 제안은, 그래서 더욱 뜬금없는 것이었다.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71년 초 박정희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 제의 이후 다시 맞닥뜨린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었다.---한경직 목사의 뜻밖의 초대

선교대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동안 나는 거의 쉴 틈이 없었다. 여의도광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서울시를 설득하는 일, 선교대회 기금 확보를 위해 독지가와 교회를 찾아 모금하는 일, 선교대회 행사장에 각종 시설을 설치하는 일들이 나를 필요로 했다. 무엇보다 내가 신경 쓴 일은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어떠한 사고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과 이 행사로 개신교에 대한 이미지가 손상되지 않게 하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행사가 끝난 뒤 많은 언론들이 선교대회와 한국 기독교인들의 성숙한 질서의식을 높이 평가했다. 지금 돌아보아도 당시 성도들의 의식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했다. 선교대회가 한국 기독교 200주년을 준비할 일꾼들에게 좋은 선례가 된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평소 한경직 목사는 한국 기독교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이익과 안위를 버린 순교자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정신이 순교자기념관 건립의 주춧돌이 되었다.---100주년 선교대회를 치르다

법정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그동안 가슴에 맺혔던 말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전했다.
“판사님, 이 사람들은 한국에서 추방되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가 참 자존심도 없는 나라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사람들이 일본이나 독일이나 프랑스에 있었으면 당장 추방되었을 사람들이에요. 선교사 후손이란 이들이 선조들이 묻힌 선교지에 와서 선교 현지에 있는 교계 지도자와 어른들을 들어 고소를 한다는 것은, 이 자체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선교사는 피와 눈물과 땀을 흘리기 위해 선교지에 옵니다. 주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 땅 내놓으라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이 사람들은 선교사가 아닙니다.”
나는 피터 언더우드에게도 “당신 아버지 어머니를 내가 잘 안다. 참 훌륭하신 분들이다. 당신 부모님은 이런 재판, 생각도 못하실 분들이다. 양화진을 이렇게 만들어 줄 때 한국 교회에 얼마나 감사해하셨는지 모른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양화진 소송의 전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