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은 거듭나는 것임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남


‘거듭났다’는 것은 중생했다는 말씀인데,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씀입니다. 믿기 전에 영혼은 다 죽은 영혼이므로 중생하지 못하면 하늘나라 갈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죽었는데 어떻게 하늘나라를 가겠습니까? 그래서 니고데모에게 “너희가 거
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가 없느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중생하느냐 물어보니까 무엇으로 한다고 했습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요3:5).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했는데, 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5장 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하였고, 또 야고보서 1장 18절에,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으로 거듭납니다. 말씀으로 중생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았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썩지 아니할 씨가 뭐라고 했습니까? 말씀입니다. 거듭날 때 썩지 아니할 씨로 우리가 거듭나는데, 그 씨는 하나님
의 말씀입니다. 죽지 않는 항상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거듭나는 것이 분명합니다.


한번 중생한 자는 다시 죽지 않음


본문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았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항상 살아있는 씨로 거듭났기 때문에 이것은 죽지 않습니다. 한번 중생한 영혼은 절대 지옥에 가지 않고 절대 죽지 않습니다.
한 번 살아난 것은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가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됩니까? 중생한 영혼이 죽습니까? 죽지 않습니까?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지 않습니다. 죄를 지어서 지옥가게 되면 또 중생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중생을 해야 하는
데, 중생은 여러 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은 한 번만 하는 것입니다. 중생은 단회적으로 완성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죄를 지어도 중생한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구원은 받아 놓은 것입니다.


죄는 중생한 영이 짓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부패성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육신의 소욕, 육신의 부패성, 옛 사람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새사람은 중생한 영인데, 중생한 영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중생한 영은 언제나 의만 좋아하고 하나님만 즐거워하고 의만 이루어나가려고 합니다. 죄는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중생을 했는데 거기에 왜 죄가 있겠습니까? 말씀이 죄가 있습니까? 성령이 죄가 있습니까? 중생의 요소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인데 거기 어떻게 죄가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말씀 속에 어떻게 죄가 들어가고 성령 속에 어떻게 죄가 들어가겠습니까? 중생한 영혼은 죄가 없습니다. 죄는 육신의 부패성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육체의 욕심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의 욕심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욕심이 마음을 이용해서 나오는데 그것을 언제나 제해야겠습니다. 제하고 그 마음이 언제나 중생한 영혼에 이용당해야 됩니다. 그래야 선한 마음이 됩니다.


그 마음이 죄악성에게 이용을 당하면 악한 마음이 되고 중생한 영혼에 이용당하면 선한 마음이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선한 마음이 있고 악한 마음도 있습니다. 부패성에 이용되면 악한 마음, 중생한 영에 게 이용이 되면 선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악한 마음 선한 마음이 있는 것은, 마음이 하나인데 중생한 영에게 이용 될 때는 선한 마음이고 그것은 깨끗합니다. 죄악성에게 이용되고 욕심에게 이용이 될 때는 악한 마음인데 그것은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음은 하나인데 어디에 이용되느냐에 따라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생한 영은 말씀과 성령으로 되었기 때문에 항상 살아있습니다. 절대 죽지 않습니다. ‘항상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왜 죽겠습니까? 한번 중생한 영은 죽지 않습니다. 지옥 가지 않습니다. 타락되지 않습니다.


한 번 중생했어도 죄 지면 타락해서 지옥 간다는 설이 있는데, 천주교, 루터파, 알미니안파들이 한 번 중생한 사람도 죄지으면 지옥 간다고 합니다. 우리는 칼빈주의입니다. 칼빈주의는 한번 중생한 사람은 절대 지옥가지 않습니다. 이런 교리를 믿는 교회가 장로교입니다.
골로새서 1:13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하늘나라에 옮겨 놓았다고 했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영이며, 하나님 나라에 옮겨 놓은 것이고, 하늘나라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털 끝 만큼도 더러운 것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라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중생한 영혼이 이미 구원받았고 지옥가지 않는다고 했으니, “그러면 예수님 믿는 사람이 마음 푹 놓고 죄를 져도 되지 않느냐?”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옛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인데, 그렇다고 지옥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죄를 지으면 징계를 하십니다. 아들이 잘못하면 채찍으로 때려서라도 그 아들을 바로 세우려고 합니다. 아들이 더러운 것을 묻히고 들어오면 불구덩이에 집어넣는 아버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더러운 것들이 묻었으면 다 씻어서 고쳐주려고 하지 않
겠습니까? 예수님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시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더 큰 징계를 주십니다. 쫄딱 망하게 됩니다. 영혼만 구원 받고 세상에서 쫄딱 다 망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중생한 사람은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지 않으십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시지만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절대로 가만히 두시지 않으십니다.

시험이 들어올 때에 취하여야 할 태도


◉ 하나님께 바로 서라


그러면 여러 가지 시험은 하나님이 성도를 사랑하셔서 주시는데, 그 여러 가지 시험이 들어올 때에는 어떻게 하여야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께 바로 서야 합니다. 사르밧 과부는 바로 섰기 때문에, 통에 가루가 얼마 안 되었고 병에 기름이 얼마 안 되었지만, 3년 6개월 동안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기름이 다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시험이 올 때에 하나님께 바로만 하면 하나님이 다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바로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 하나님을 의지하라


둘째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나가므로 그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그러면 연단이 됩니다. 이기지 못할 것을 이기고, 참지 못할 것을 참고, 끊지 못할 것을 끊고, 사랑하지 못할 것을 사랑하고, 용서하지 못할 것을 용서하고 나아가야
됩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를 공궤하지 못할 형편이었으나 그래도 엘리야를 공궤하고 나가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모든 것을 승리적으로 통과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시험이 올 때에 잠간 근심함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라고 하였는데, 시험이 올 때에 시험은 크고 자신은 연약하여 자기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잠깐 근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 앞에 바로서서 순종해 나가면, 하나님이 만능으로 도와 주셔서 그 시험을 이기게 되며,
쓸만한 사람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역자도 많은 환난을 받으면서 나가면 쓸만한 교역자가 됩니다. 온실의 화초와 같이 아무런 환난을 당하지 않고 나가는 사람은 환난이 올 때에 그 환난을 이기고 나갈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이 들어올 때에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이겨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성도로 만들어집니다. 시험이 없으면 만들어지지 못합니다.


칭찬과 존귀와 상급을 받음


시험을 통해 연단을 받아 고상한 믿음으로 만들어진 성도는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상급을 받게 됩니다. 그 믿음은 금보다 더 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이 많이 올 때에 연단을 잘 받아야 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은 하나님이 좋은 선물을 주시려고 주시는 것입니다. 즉 연단을 시켜서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시려고 여러가지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승리적으로 통과하여야겠습니다. 시험을 승리적으로 통과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주시려는 것을 받지 못합니다. 즉 하나님이 주시려는 선물이 자기 것이 되지 못합니다. 또 자신이 만들어지지 못합니다. 도리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고, 마귀의 일만 해주게 됩니다. 방심부주의하면 시험에 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올 때에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하며 하나님께 바로 서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그 시험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시험을 이기라


하나님은 이기는 자에게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7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겨야 합니다. 서머나 교회에는 이기면 무엇을 주신다고 하였습니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계 2:10). 이기지 못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지 못합니다.
버가모 교회에는 이기면 감추었던 만나와 예수님의 새 이름을 기록한 흰 돌을 주신다고 하였고(계 2:17), 두라디라 교회에는 이기면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 별을 주신다고 했습니다(계 2:27-28). 그 다음에 사데 교회는 이기면 흰 옷을 입고, 생명책에서 이름이 흐리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계 3:5).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이기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계 3:12). 라오디게아 교회는 이기면 예수님 보좌에 함께 앉도록 하여 주신다고 했습니다(계 3:21). 전부이기는 자에게 주신다고 했지, 진 자에게 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기선 목사님도 이겨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도 이기기를 다 원하고 자기 아들이 씨름판에 나가서 씨름하면 자기도 허리를 꾸부리고 낑낑하며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영감님 왜 이러십니까?”하면 저기에서 씨름하는 사람이 “우리 아들이라”고 한답니다. 이기는 사람은 사랑이 충만합니다. 이기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잘 참습니다. 이기는 사람은 끊어 버릴 것을 끊어 버립니다. 이기는 사람은 희생, 봉사를 잘합니다. 이기는 사람은 가지 못할 곳을 갈 수 있습니다. 즉 소돔 고모라도 갈 수 있고, 아골 골짜기도 갈 수 있습니다. 이기는 사람은 어디든지 가서, 그곳에서도 이깁니다. 소돔 고모라에 가서 이기면 소돔 고모라가 소생합니다. 황무지에 가서 이기면 황무지가 소생합니다. 가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기려면 하나님께 회개하고 순종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흠이 있는 자는 흠이 없어지고, 부족한 것이 있던 자는 부족한 것이 없어집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 틀렸다고 하지 말고 자기부터 고치면 됩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먼저 대접하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대접하지 않는다”고 하지 말고, 대접을 받고자 하면 나부터 대접을 하면 대접이 돌아옵니다. 남을 대접했는데, 대접이 안돌아 오면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배로 받습니다. 사람에게 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받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하나님께 받는 것도 물론 좋지만, 현세에서 받지 못하면 그것은 하늘나라에 저금이 된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은 성도를 연단시키시는데 그것을 잘 이겨야 됩니다. 여러가지 시험은 경제적인 시험, 사회적인 시험, 친구간의 시험, 가정적인 시험, 교회적인 시험, 국가적인 시험 등 많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시험이 올 때에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큰 유익을 주시려고 시험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잘 이겨야 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올 때에 믿음을 지켜야만 이깁니다. 시험이 올 때에 이기지 못하면 자기가 만들어지지 못합니다. 욕심은 욕심대로 계속 부리면서 나갑니다. 욕심이 우상이 되어서 나가면 믿음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시험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 가라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즉 사랑이 충만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사랑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자비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불쌍히 여기는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참고 견디는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 만큼 예수님을 닮아간 것으로 주님이 나타나실 때에 나타납니다. 또 만들어진 것을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고 마실까?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 마귀의 시험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올 때에 염려하지 말고 거기서 연단을 잘 받아 만들어져야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으며, 시험을 승리적으로 통과합니다. 또 금보다 귀한 불로 연단 된 믿
음이 만들어지고, 그 믿음은 영원한 영광과 존귀와 칭찬과 상급을 받습니다. 참 좋습니다.

큰 은혜와 복을 받는 방법


겸손할 것


본문 6절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
느니라”고 했습니다.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
다. 의지할 것이 없어서 하나님 앞에 굴복해야 합니다. 싸우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싸우고 다투지 말고 그 나라와 의만 구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순복할 것


본문 7-8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
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
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라고 하셨는데, 하나님 뜻이면 무조건 순복해야 합
니다. 성경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어디든지 하나님이 가라 하시는
데에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지 말라 하시면 죽어도 굶어도 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 뜻이면 무
조건 순복하는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할 것


마귀를 대적하라고 했는데, 마귀를 대적하는 것은 마귀 일을 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 시험에 들지 않고, 마귀의 충동에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의 인도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는 대적해야 이
기지 피하면 더 따라옵니다.


심을철 목사님이, 마귀는 개와 같아서 도망가면 더 따라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엎드리면, 달려들던 개가 도망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돌을 집어 들려고 엎드리는 것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돌로 자기를 칠까봐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를 피하면 계속
따라와 결국 물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찬가지로 마귀를 이기려면 피하지 말고 대적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귀의 일을 많이 해주는데, 거짓이나 교만으로 마귀의 일을
합니다. 마귀의 특징은 거짓입니다. 그런 마귀 일을 해주지 말고, 대적
하여 ‘사탄아 물러가라’하면서 이겨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마귀가 들어
가서 예수님께 십자가를 멀리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
만 생각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마귀에게 속아 마귀의 일을 해주면 안 됩니다.


김현봉 목사님이 “마귀 일 하루 세 번만 해도 괜찮겠다”고 하셨는
데, 불안한 마음이나 걱정하는 것, 분을 품는 마음이나, 혈기부리는 마
음, 말다툼하는 것이나 언쟁 등이 다 마귀의 일입니다. 근심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귀가 와서 ‘근심해라. 근심해라’합니다. 마귀와 단
짝이 되어서 근심하고 걱정하면 근심걱정에 빠집니다. 근심할 일이 생
길 때에는 주께 맡기고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또 근심이 들
어옵니다. 그러면 또 맡겨야 합니다. 그렇게 맡기고 나가면 더 이상
근심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어떻게 해 보려고 걱정을
하면 마귀에게 걸려든 것입니다. 근심을 대적해야 합니다. 근심걱정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다 한가지인데, 결국 ‘죽을까봐’입니다. 그러니
까 생명 내놓고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라고 하면서 나
가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
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
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빌
1:20)”라고 했습니다. 이생에서의 하루가 짧아지면 내생의 하루가 길어지는 것인데, 자녀들의 생명도 자신의 생명도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뱀이 하와를 속일 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
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
시더냐(창 3:1)”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참으로’라고 한 말이 틀린 것
입니다. 이 때에 하와가 사탄이 들어온 것을 알고 ‘사탄아 물러가라’
했다면 마귀를 이겼을 뻔 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온 것도 모르고 마
귀와 대화를 하는 중에, 결국 속고 말았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
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
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4-5)”고 했습니다. 선의 반대는 악인데, 하나님은 ‘절대 선’이시기에
하나님의 뜻에 맞으면 선이고,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악이라고
판단하십니다. 뱀은 ‘너도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맞는 것
은 선, 자기에게 맞지 않는 것은 악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환영하는 것은 선, 자기를 반대하는 것은 악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
께 맞는 것은 선이고 하나님께 맞지 않는 것은 악인데, 자기가 기준이
되는 것을 보니 이것이 하나님과 같이 된 것입니다. 그 정도 되면 말 다한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마귀가 역사하여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하면, “사탄아 물러가라. 십자가가 필요하다”라고 하고,
교만하라고 충동할 때에 “사탄아 물러가라. 난 겸손해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에,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
라(마 4:10)”고 답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가지 시험을 다 이기셨
습니다. 절하는 것은 신앙을 양보하는 것인데 예수님은 절하지 않으시
고 다 이기셨습니다. 항상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데(벧전 5:8), 그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것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기도
를 많이 해야 합니다. 하루 2시간 이상 기도하고, 성경을 하루 10장
이상 읽으라고 신학생들에게 시키는데, 직장인들도 아무리 바빠도 성
경을 하루 3장 이상은 읽어야 합니다. 밥은 세끼 먹으면서 성경은 왜
하루 3장 못 읽습니까? 성경을 하루 3장 안 읽는 사람은 밥 세끼도
먹지 마십시오. 엎드리는 시간, 사모하는 시간, 은밀한 시간, 바위 틈
낭떠러지에서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점점 가까워져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자기를 통해 나타나게 해야 합니다. 세상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
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약 4:8-9)”라고 했습니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에
서 ‘손’은 행동을 가르칩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했는데 손을 깨끗이 하라는 것은 행동을 깨끗이 하라는 것입
니다. 또한 ‘두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
음인 두 마음인데, 세상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사랑하면 안 됩니다. 세상이 우리를 따라와야지,
우리가 세상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면, 세
상 것은 뒤로 따라옵니다. 세상 것은 뒤돌아서서 잡을 것이 아닙니다.
돌아서서 세상 것을 잡으려고 하면, 세상 것이 달아납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따라가면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에게 이루어집니다. 세상이 나를 보고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따라오게 됩니다.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다 좋아합니다. 그런데 돌아서서 세상을 잡으려고 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지기 때문에, 세상이 나로부터 달아나게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세상은 손을 뒤로 내밀
어 세상을 잡으면 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순복하면 이렇게 세상
것이 다 따라 오고, 우리는 “재미 좋습니다”라고 할 수 있게 되는 것
입니다. 마귀는 날마다 우리에게 와서 마귀 일을 하도록 유혹하면서,
‘네가 제일이다’라며 거짓말합니다. 거기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하나
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믿는 일을 바로 하고 주 앞에서 낮출 것


본문 9절에,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고 했습니다. 세상 것을 가지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애통할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세상과 짝하면
서 믿는 일 제대로 안 하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고, 마귀를 대적하
지 않고 세상 것으로 웃는 사람들은 얼마 안 가서 애통과 비참한 일
이 오는데, 이것을 알고 믿는 일을 잘 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우리는 믿는 일에 부요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는 일에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오락이나 운동구경하는 것에 집중하면 안
됩니다. 세상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잘 쓰면서 하나님을 위해서는
쓰지 않습니다. 믿는 일 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고 애통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6:24-26절에,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
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고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믿
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안하고 세상과 짝하고 나가며 하나님을
본 남편으로 삼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세상 나라를 의지하
고 살았습니다. 호세아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가는 이스라엘
을 세상과 짝하지 못하게 가시로 막았습니다. 그래도 안 되니까 개유
(開諭)하여 들로 내몰아 연단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것은 굉장해 보이나 막상 이루고 나면 고난이 더 많습니다. 무언가 이루고 나서 이제 되었다고 생각했다가 더 죽을 고생이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문 10절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
라”고 했습니다.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내 것은 다 주의 것입니다”라
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주의 것이 다 내 것이 됩니다. 우리의
것을 다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으면, 하나님의 것이 다 내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법


1)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고 돌이킬 것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의 첫째는 자기를 부인
하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아무리 알려고 해도 모릅니다. 자기중심이고 죄 가운데 있고 욕심으로 나가고 세상에 속해 있는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알려줘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항상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사역을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중심, 돈 중심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사역을 중심으로 살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잘 될까? 어떻게 하면 나의 구원을 이루어나가고 다른 사람의 구원도 잘될까?’를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2) 성경말씀과 섭리적인 역사를 따라갈 것 


그리고 성경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말씀과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가 합해져야 합니다. 성경말씀과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를 따라 가야만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를 무시하고 성경대로 하려고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또 성경을 떠나서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만 따라가도 안 됩니다. 성경말씀과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를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면 찾아집니다.


3) 신앙 양심을 쓸 것 


그 다음에는 신앙양심을 써야 합니다. 양심을 쓰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양심을 쓰지 않는 사람은 암만 성경을 배워도 성경을 모릅니다. 성경을 배워도 언제나 흑암 속에 있기 때문에 그 성경말씀이 자기에게 빛이 되지 못합니다.


4) 기도함으로 성령의 감동을 따라 갈 것 


그 다음에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말씀의 감동을 받아서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아,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구나.’ 깨닫게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사역을 중심으로 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를 순종해야 하며, 신앙양심을 써야 되고, 성령의 감동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2.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가 나타남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엘리야의 경우 엘리야가 갈멜산에 올라가서 850명을 거짓선지자를 숙청을 하고 이세벨이 추격하는 바람에 도망쳐서 광야 브엘세바에 가서 로뎀나무 아래서 쓰러지지 않았습니까? 거기서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죽
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엘리야가 방황하여, 오리무중에 빠져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무슨 기도를 해야 할 지도 모르고, 갈팡질팡하면서 ‘살아야 하느냐? 죽어야 하느냐?’ 살 길이 막연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엘리야가 자기를 부인했습니다. 자기가 하겠다는 것, 큰 일하겠다는 생각, 자기가 하면 될 줄 알던 것들을 다 부인했습니다. 자기는 이제 죽은 자와 같이 된 것입니다. 엘리야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자기를 부인한 것입니다. 죽여달라고 하는 것은 벌써 자기를 부인한 것 아닙니까?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을 깨닫는데 까지는 여러 가지 순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 즉 천사를 보내서 떡과 물을 먹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섭리적인 역사입니다. 또 잠이 드니까 다시 보내서 떡과 물을 먹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섭리적인 역사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산, 여호와의 산인 호렙산을 향하여 가라고 했지요? 거기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깨닫고 갔을 때 나중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신앙양심을 쓰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중심으로 하여 이제는 자기 생명을 내어 놓고 걸어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했습니다. 세미한 음성이 들려온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 후에는 순종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세 가지를 하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하라고 했습니까? 첫째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서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둘째는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서 너 대신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세 가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깨달은 후에는 그대로 실천을 했습니다. 실행을 했습니다. 순종을 했습니다. 순종을 한 후에는 하나님께 서 다 해주셨습니다. 떡과 물을 먹으라 하실 때 순종해서 먹으니까 호렙산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호렙산으로 가니까 굴 밖으로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굴 밖으로 나가니까 바람과 불과 지진이 지나갔습니다.
그 다음에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세미한 음성이 들려오고 그 음성대로 순종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대로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 찾아집니다. 찾으려고 하지 않으면 못 찾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찾는 것을 힘써야 합니다. 첫째는 알고, 그대로 될 줄 믿고,
그 다음에는 순종을 하면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오리무중에 빠져서 흑암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 됩니다. 찾으면 찾아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말씀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순종만하면 됩니다.


빌립집사가 전도 할 때, 어디로 가라고 했습니까? 광야로 가라고 했습니다. 전도하러 다니는데 광야에 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도시, 성중에 들어가든지 동네에 가든지 해야 전도를 하겠는데 “광야로 가라!”고 했습니다. 빌립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광야로 갔습니다. 광야로 가니까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 역사가 무엇입니까? 에디오피아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갔다가 수레를 타고 오는 것을 만났습니다. 빌립이 바짝 수레 옆으로 가니까 성경을 읽고 가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가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 다음에 빌립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읽는 성경을 깨닫나요?” 하고 물어보니까 그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깨닫겠습니까?” 하며 수레에 올라와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빌립이 올라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여 구속의 도리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을 마음이 생겼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렇게 역사합니다.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모르면 섭리를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섭리를 순종하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제일 첫 번에 준비할 것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사역을 중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으로 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살아서도 안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사역을 중심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나가면 하나님께서 다 일해주십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에게 이삭을 위하여 이삭의 아내 될 사람을 택해서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늙은 종은 어디를 가서 누구를 데려올 지 막연한 것입니다. 이삭의 아내될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또 데려
오면 그저 따라 오겠습니까? 모르는 사람을 왜 그저 따라가겠습니까?
그래도 명령을 순종해서 갔습니다. 가니까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났습니다. 어떤 처녀가 물을 기르러 나왔습니다. 기도하기를 물 좀 달라고 할 때 물을 주는 여자, 또 나귀에게도 물을 먹여주는 여자는 하나님이 이삭의 아내로 택한 줄로 믿겠다고 기도했고, 한 여자가 오자 물 좀 달라고 했습니다. 여자는 물을 길러다 먹였습니다. 또 나귀에게도 물을 먹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하다 하여 패물도 주고 말도 해보고 그 집에 들어가서 다 하니까 하나님께서 일을 다 해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의 아내를 데리고 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는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며 욕심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사역을 중심으로 해야 하며 십자가를 각오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납니다. 성경말씀대로 하려고 애를 쓰면 하나님의 섭리가 보여집니다. 섭리가 보여지면 그대로 하면 됩니다. 신앙양심을 쓰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대로 하면 하나님의 뜻이 나타납니다. 또 그대로 하면 만능입니다. 만능으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바라는 것들이 다 실상이 됩니다. 처음에 바라기만 하고 했는데 해보니까 실상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루어졌단 말입니다. 이루어지니까 또 그 증거가 생겼습니다. 믿는 사람은 많은 것을 얻게 되고 많은 것을 산출하게 되고 많은 것이 창조되고 많은 것이 실상이 되고 많은 것이 증거가 됩니다. 증거가 많습니다. 그래서 찬송가에도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라고 했습니다.


3.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짐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라고했는데, 세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다 나왔습니다. 산, 땅도 다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서 천지가 다 나왔습니다. 또 사람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짐승과 새는 하나님이 있으라 하신 말씀에서 나왔는데 사람도 있으라 해서 나왔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창조했지만 창조 전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하신 것이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사람을 창조했습니다. 창조했는데 영혼과 육신을 다 창조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으며 육신도 영혼에게 맞도록 흙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영혼 창조가 먼저입니다. 영혼 창조가 먼저고 그 다음에 육신 창조입니다.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그랬는데 생기가 영혼이 아닙니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남여로 창조하셨는데 그것이 먼저 육신과 영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흙으로 사람을 창조한 것을 2장에 다시 말한 것은 재론한 것입니다. 영혼은 벌써 창조된 것입니다. 영혼이 먼저 창조가 되고 그 다음에 육신을 창조한 것입니다. 영혼이 주인이니까 먼저 창조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창조한다고 했으니까 영혼이 먼저 된 것으로 봐야 됩니다. 그 다음에 육신은 흙으로 창조했습니다. 코에 생기를 불어놓은 것은 진리와 영감으로 하나님과 연결시켜 놓은 것입니다. 코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이 영혼이 아닙니다. 생기를 불어넣은 것이 영혼이라고 하면 영혼이 창조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속에서 유출된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지 하나님의 속에서 유출된 것이 아닙니다. ‘생령이 된지라’에서 생령이라는 말은 생물이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생령이 된지라’ 하는 말은 생물과 같은 말입니다. 생령이라는 말은 창세기 1장24절, 28절에 있는 “생물”과 같은 것입니다.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의 생물이 생령과 같은 뜻입니다. 생물은 살았다는 말입니다.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니까 살았다. 하나님과 연결되니까 산 영혼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연결되면 산 영혼이 되고 연결이 되지 않으면 죽은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만물이 말씀에서 나왔는데 말씀을 순종만 하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 나갑니다. 따라서 무엇 때문에 큰일이다. 무엇 때문에 걱정이다 할 것이 없습니다. 걱정이 생기면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버려라’ 하는 말씀을 첫째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다 권고해줍니다. 베드로후서 5장 7절의 말씀의 “너희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버려라. 이는 주가 권고하심이니라”했으니까 하나님이 반드시 권고해주실 것을 믿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면 됩니다. 그 다음에는 성경말씀대로 순종만 하면 됩니다. 염려를 다 주께 맡기고 순종만 하면 일은 다 하나님께서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모든 것을 다 해주십니다. 변화시킬 것은 변화시켜주시고, 만날 사람은 만나게 하시고, 좋은 사람 만나게도 해주십니다.


순종해서 모세를 갈 상자 안에 넣어 내다 놓으니까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났습니다. 섭리가 무엇입니까? 공주가 목욕을 하러 나왔습니다. 그 아이를 보고 잘 생겼으니까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또 순종을 해야 합니다. 미리암이 순종을 했습니다. ‘내가 이 아이를 위하여 유모를 불어오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을 하지 않았으면 안 됩니다. 순종을 하니까 그 공주가 ‘불어와라’고 했습니다. 순종을 하라고 하니까 누구를 불러왔습니까? 자기 어머니를 불러왔습니다. 이 아주머니가 젖이 잘 나온다고 말입니다. 한 달에 월급 얼마 받았을까요? 월급 뭐 주는 대로 받겠다고 했겠지만 공주가 넉넉히 주겠지 주지 않겠습니까? 월급을 받으면서 자기 아이를 기른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섭리하셔서 죽을 것 같지만 살려주시고, 길이 없는 것 같지만 길을 열어주시고,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일을 되게 하시고,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실상이 되게 하시고, 증거가 되게 하십니다. 


땅덩어리를 볼 때 무슨 생각을 해야 하냐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 땅이 나왔다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 땅 덩어리가 나왔는데 다른 것이 무엇이 안 되겠습니까? 말씀대로 하면 안 될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의 일월성신도 말씀에서 나왔는데 말씀대로 하면 안 
될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 속에는 4가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 삼위일체 하나님, 하나님의 만능, 하나님의 성취하심과 역사가 있습니다. 이것들이 있어서 다 됩니다. 다 있어서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은 이루어주시고, 사자의 입을 막아주시고, 만나게 될 사람은 만나게 하고, 갈 길을 알지 못할 때 길을 열어주시고, 에디오피아 내시도 만나게 하시고, 성경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도 열어주시고, 그 사람이 예수를 믿게 하시고, 세례도 받게 하십니다. 순종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 주십니다. 만날 사람 만나고, 막을 것은 막아주시고, 문을 열어주어야 하는 것을 열어주시고, 목마를 때는 샘물도 나게 하시고, 먹을 것도 하나님께서 주시고 모든 것을 다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을 바로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그대로 믿는 것이 중요하고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심하면 되다가도 다 틀어집니다.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이루어주시고 섭리하실 줄 믿어야 합니다. 이루어주실 믿습니다 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순종해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다 이루어 주십니다. 모든 것이 다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보이는 현상세계는 보이지 않는 말씀에서 다 나왔습니다.


이병규목사설교 히브리서 11.1-3

사도행전 14.1-14 고난을통해일하시는하나님 전승환목사 안양서부교회 171126


충청도 어느 면에 1951년 교회가 생기며 온 마을이 예수믿다. 어느농부아내가 남편반대불구교회가다. 아내를찾으러온농부가기도시간에 아내를끌고나와두들겨패다. 니중보니아내아닌면장부인. 용서조건 교회나와예수믿어라. 

면장부인이 이유없이 맞으므로 하여 농부가 구원얻다


마귀같은 이들

1.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

엡2.2 불순종 아들들중에 역사하는 영

2.이방인 선동

3.악감을 품게


그럼에도 두 사도가

1.오래있어 끝까지 버티다

2.주를 힘입어

3.담대히 말했다. 자기 일을 하다


주께서 일하시기 시작하시는 기사가 일어나다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하나님과 마귀의 일하는 방법은 같다

1.사람을 통해. 순종하는자와 불순종하는자

4절 복음의심판성 복음을 듣는순간 사람은 나뉜다

2.루스드라와더베로 도망하여 

거기서 헬 늘 똑같이

복음전해다


하나님항상함께하시며기적을행하심

이동하는이유는핍박때문에 도망하는것

도망해간 곳에서 기적을 행하다

앉은뱅이를 일으키다

루스드라이고니온에서 이방인을 선동해

돌에 맞아 성밖에 버려지다

고전 삼층천에 가보다

갈6.17 내몸에예수의흔적을가졌다 돌맞은상처

다시 루스드라더베를 찾은 바울 디모데를 만나다

딤전 목회요령

딤후 바울유언


낮고습한밤빌리아버가에서 병이나서 고치기위해 높고건조한 루스드라안디옥으로옮겨가다

병으로 사역지를 옮기게


초대교회에서 안디옥교회로

스데반죽음 수안디옥교회세우다 바나바 초청 바나바 사울초청 바울의 부임. 그리스도인소릴듣다.  3차전도여행으로 유럽에 도가 전해지다.

고난으로 일하신다.

요셉고난 없었으면 이스라엘구원이 없었다.

히나님나를 먼저보내사


천로역정 존 번연 축축한 감옥12년 수감

종교개혁 루터 라틴어성경 독일어번역 발트부르그성

역전명수 하나님

시119.71고난당한것이내게유익이라

병들고실패해야 하나님만나고사명을찾게되는때가있다

카프만 부인 광야의샘 고치를뚫고나오려버둥걸릴때영양분이날개로가고 날아갈힘을기른다.도와주려 뜷어주면날지못한다


롬8.18 생각건데현재고난은장래영광과비교할수없다

롬8.28 모든것이합력하여선을이룬다


사이클선수 역풍에는몸을낮추고패달에힘을더해야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 법
어떤 침례교 선교사 한 분을 만났습니다. 한국에 와서 25년을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한국에서 살라고 한답니다. 저도 그렇게 권유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교사 말이, “하나님의 뜻대로 있는 곳이 제일 좋은 곳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말이 

딱 맞는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가 있는 곳이 제일 좋은 곳이니까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그것이 문제인데, 하여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고 제일 복 받는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고, 축복이 되는 것이고 하늘나라 가서도 칭찬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만 범사에 행해야 합니다.


1) 욕심을 버릴 것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으려면 제일 먼저 제거시켜야 할 것이 욕심입니다. 욕심을 가지고 찾으려 하면 잘못된 길로 가기 때문에 가다가 그만 파선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모든 욕심을 버리고, 아주 무(無)요 공(空)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 즉, 동으로 가라하면 동으로 가고, 서로 가라하면 서로 가고, 일하라 하면 일하고, 그만둬라 하면 그만두고, 앉으라하면 앉고, 서라 하면 서야 합니다.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찾기 전에, 자기가 먼저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발람의 기도가 됩니다. 발람의 기도는 자기의 욕심에 따라, ‘가면 좋겠다’는 주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한 기도입니다. 그러기에 가지 않아야 할 곳인데도,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욕심을 가지고 기도를 하는 것은, 나침판에 쇠붙이가 들어가서 나침판 침이 방향을 바로 가리키지 못함 같아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뜻인 것으로 생각하고 그 길로 알고 갑니다. 결국 망하고 맙니다. 발람의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감동이 왔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성경 위반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에 위반되는 일을 하려고 해서, 제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권면하니까 그 사람이 “목사님 저도 기도하고 하려는 겁니다. 기도하고 감동이 있으니까 하려는 것이지 감동이 없으면 왜 하겠습니까?”라며 아예 자기더러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인지에 아닌지에 대한 말만 하고 다른 말은 할 필요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자기가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지시 받은 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감동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발람의 기도를 통한 감동입니다. 먼저 자기 욕심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기도했기 때문에 잘못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기도 내용은, 자기 아내를 내쫓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내를 내쫓지 말라
고 했기 때문에 안 된다고 말해도, 그 사람은 그 말 하지 말라면서 다른 말은 다 순종해도 그 말은 순종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말은 할 거 없다. 그 말만 하겠다. 내쫓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경대로 해야 하는데 성경이 아닌 것을 욕심과 자기 생각을 두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감동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뭐라고 했는지를 언제든지 봐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기를 힘을 써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 자라나야 합니다.


2. 하나님께 합당히 행함
합당히 행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심


본문 10절에,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고 했
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왜 찾아야 합니까? 주께 합당히 행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주께 합당히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합당히 행한 결과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됩
니다. 합당히 행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노하시고 하나님께서 심판하
십니다. 범사에 하나님 앞에 합당히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
로 찾고 늘 하나님 앞에 합당하도록 힘을 써야겠습니다. 합당한지 아
닌지 찾고, 합당하지 않다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합당한 일은 비록 
그 일이 어렵고 손해가 나더라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하고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이기주의가 표준이 아닙니다. 자기는 다 내버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합당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표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주셔야 함
자기는 손해가 나고 원치 않는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면 됩니다. 자기가 당장 손해가 나고, 고통이 되고, 부담이 생기고, 짐이 무거워지고, 십자가가 오고 슬픔이 오는데 왜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면 된단 말입니까? 


요한복음 13장 32절,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
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그 사람에게 영광을 주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손해 
보는 것 같고, 죽을 것 같고, 잘 안 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대로
만 해 놓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
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해주시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존귀케 해주시고, 앞길을 열어주시고,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게 해주시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그 사람에게 다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이 해주셔야 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으로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으면 
살고, 하나님이 없으면 못삽니다. 말씀이 있으면 살고, 말씀이 없으면 
못삽니다. 물질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돈 많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살고, 그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이 되게 해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해도 안 되고 불행이 옵니다. 그곳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나야 함
본문 10절에,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고 바
울이 기도했는데, 이런 기도가 나와야 합니다.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나야 합니다. 점점 더 하나님을 아는 것
에 자라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나는 것이 영혼이 자라
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자라나야 하나님을 점점 더 알게 되고, 점점 
더 알아야 영혼이 자라납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안다고 해도 다 알지 
못합니다. 지극히 작은 부분밖에는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고 해도 몇 억만 분의 일도 모릅니다. 하나님
의 사랑이 지구덩어리 만치 크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모
래 알갱이 만큼밖에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다 알려면 얼마나 많
이 알아야 하는지 생각을 해보십시오. 무궁무진한 것입니다. 우리가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도 그 사랑을 그저 모래알갱
이 하나만큼만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점점 자라
나야만 영혼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지혜가 자라나는 것이 영혼이 자라
나는 것이고, 지식이 자라나는 것이 영혼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예수님께서 몸이 자라고 키가 자랐다고 했는데, 그것이 
영혼이 자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52절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
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하였는데 
지혜가 자랐다는 것은 영이 자랐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에 자
라나야 합니다. 점점 더 하나님을 알면 걱정이 다 없어집니다. 하나님
을 몰라서 걱정을 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알면 걱정이 다 없어집니다. 
자기 아버지가 미국 대통령이라 하면 걱정이 있겠습니까?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어딜 가도 걱정이 없고, 돈이 없어도 걱정이 없고, 어
디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다 영접할 것입니다. 대통령의 영향 때문에, 
그 아들에게 다들 잘 대접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
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잘 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의 힘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그 힘을 받게 됨


본문 11절에,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그 영광의 힘’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힘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의 힘은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전 인격에서 나오는 힘을 말합니다. 
그 힘을 좇아서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능하게 해주시기를 바울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의 능력을 받아서 능력 있는 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능력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능력 있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
의 영광의 힘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를 붙드시고 늘 역사하십니다.

그 영광의 힘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뜻에 바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 
분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뜻에 바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 
사람에게 와서 임합니다. 그 사람은 만능이 됩니다. 만능의 능력이 우
리에게 와서 역사해야 하는데 그 능력을 우리에게 입혀주려고 하나님
께서는 늘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걷
게 하시려고, 말씀에 순종시키시려고 늘 애를 쓰십니다. 


우리가 순종만 하면 그 능력이 와서 머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되지 않을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순종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될 것 같은 것만 하지 말고, 
될 것 같지 않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뜻이면 그대로 순종을 해서 하십
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의 힘이 그 사람에게 와서 능력이 있게 하고, 영광이 있게 됩니다. 


친히 영광을 받으시고 영광이 되게 하시는 힘
하나님이 주신 능력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힘이 됩니다. 하나
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힘도 되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하는 힘도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인
도하십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내신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였습니다. 바로 왕을 강퍅하게 만들고 바로 왕을 심판하
심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홍해바다를 가른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영광이 되게 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힘인데, 그 힘을 받은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만 하지 말고 그 영광의 힘을 받아서 그 힘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뜻을 이루어나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위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이제는 그 뜻을 알
아서 그 일을 할 만한 능력을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 다음에는 그 뜻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사실 그 능력이 와 있습니다. 와 있는데도 쓰지를 않아서 못 받습니다. 능력을 쓰라는 것입니다. 능력을 쓰는 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갑니다!”하고 가는 것이 능력을 쓰는 법입니다. “어
디든지 갑니다!”하고 가고, “무엇이든 합니다!”하고 하는 것입니다. 못
한다는 소리는 관두어야 합니다. 불가능이란 말을 집어치우고 ‘하나님
의 뜻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고 가야 합니다. 빌립보서 4
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
니라”고 했습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다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
서 4장 12절에는 바울이 뭐하고 합니까?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
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
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라고 합니다. 어떠한 형편이든지 능히 
그것을 다 믿음으로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고 말합니다. 어디든지 갈 수 있고, 하나님이 힘을 주시면 태산이라도 
올라갈 수 있고, 또 옮길 수도 있고, 뽕나무 뿌리를 뽑아서 바다에 던
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4. 선한 싸움을 잘 싸우는 자가 자라남
적극적으로 견디며 나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도우심


본문 11절에,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에게는 뭐든지 다 주십니다. 필
요하면 다 주십니다. 제대로 일하면 왜 안 도와주시겠습니까? 제대로 
일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나가는 전쟁을 우리는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견뎌
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지만 견뎌야합니다. 또 참아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고 오래 참으면서 오랫동안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나가면서 견디고 거기에 대해서 어려움이 올 때는 오랫동안 참고, 계속해서 참고 견디면서 일을 잘 싸우면서 나가면, 마침내는 당신의 영광
을 위하여 영광의 힘으로 그 사람을 붙들어서 능력이 있게 만들고, 능
력을 줘서 다 이기게 하십니다. 큰 능력이 생깁니다. 그렇게 해서 자
라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영권이 자란만큼 빛의 세계가 커짐
본문 12절에,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이라 했는데, 합당하게 해 나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기
초적인 것은 어느 정도 합당하게 했고, 이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선한 일을 바로 
해 나가면, 하나님의 기업을 받기에 점점 합당해 집니다. 점점 더 자
격이 되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그 기업을 많이 사용
할 수 있는 사용권이 주어집니다. 사용할 능력이 생기고, 사용할 지혜
가 있게 되고, 하나님께서 사용할 권리를 주십니다. 이렇게 선한 싸움
을 싸워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말
씀대로 선한 일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서 그 빛 가운
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점점 만들
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라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영적 세계에서 점점 영이 자
라나고, 영의 권세가 있게 되고, 점점 영권이 세지고, 점점 마귀의 세
력을 넓게 정복해 나가는 그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많이 싸워서 
이긴 사람에게 영권이 있습니다. 자라나야 영권이 생깁니다. 자라나지 아니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아니하고 영권만 있기를 원한다고 하면 영권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자라난 것만큼 영권이 생기고, 영권이 생긴 만큼 하늘나라 기업을 받게 되기 때문에, 자라나지 못하면 안 됩니다. 많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많이 자라난 사람이 강단에 서면 영권이 
있습니다. 나가서 전도해도 권세가 있습니다. 영권이 있게 됩니다. 자
라나지 못하면 그 만큼 영권이 없습니다. 말은 잘할지 몰라도, 영을 
움직이는 영권이라는 것은 거짓말 할 수 없고 속일 수 없습니다. 
사람 나이는 속일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나이는 속일 수 없습니
다. 나이 들었으면 나이 든 것이 다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60세 된 
사람은 60세 된 것이 나타나고, 70세 된 사람은 70세 된 것이 나타나
고, 80세 된 사람은 80세 된 것이 나타납니다. 못 속입니다.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영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의 세
계도 선한 싸움을 잘 싸워서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써서 그 능력을 
이룬 사람, 자라난 사람은 그 만큼 영권이 있습니다. 제대로 믿는 일
하려면 세월이 많이 걸려야 합니다.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연륜이 없
으면 안 됩니다. 영의 세계는 갑자기 자라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믿는 일 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선한 싸움을 제대로 싸우며,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선한 열매를 맺혀 나가면 그 만큼 그 사람의 영혼이 자라납니다. 


그러면 그 만큼 하늘나라의 것을 이다음에 얻을 수 있고, 성도의 기
업의 부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빛의 세계가 그만큼 커졌기 때문입니
다. 커졌고 그만큼 능력이 있어졌고, 그만큼 자라났기 때문에, 하늘나
라의 기업을 그만큼 받기에 합당하게끔 되는 것입니다.


5. 은혜에 감사하며 나아가는 신앙
바울의 골로새를 향한 기도 모본


‘아버지 하나님 감사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결과
는 무엇입니까?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기업을 받기에 합당하게 
되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자기가 한 것이 하나도 없고 전부 하나
님께서 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 감격하게 됩니다. 물론 자기가 
힘써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한 것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
입니다.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거저 준 것이지 그것이 공로가 
된 것은 아닙니다. 순종한 사람에게 거저 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기도를 해준 것을 보면 얼마나 바르게 해줬습니까? 

바울이 골로새교회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 주었습니까? 

첫째는,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되니까,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 다음은 둘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그대로 행하
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뜻을 안 다음에는 행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
대로 행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주께 합당하고 선
한 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그대로 행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둘째입니다.


셋째는 무엇입니까? 행한 사람은 무엇을 달라고 했습니까? 능력입
니다. 행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선 이제 능력이 있어야 되겠으니
까, 그대로 행할만한 영광의 힘을 좇아서 그대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능력이 중요합니다. 능력이 있어야만 됩니다.


넷째는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능력으로 행할 때에 참고 견디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참고 견디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어려
운 일이 오고 낙망할만한 일이 오고 십자가가 와도, 일이 완성되려면 
참고 견디면서 끝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다섯째 무슨 기도 했습니까? 성도의 기업을 얻기에 합당한 자격이 
점점 만들어 지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해달라는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 했습니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 성장을 위한 기도
우리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이
렇게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무조건 “잘 믿게 해달라”, “축복해 주시
옵소서”, “복 받게 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하지 말고, “무엇을 구하느
냐?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하고 예수님께서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그러니까 소경이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주
여! 눈을 뜨게 해 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물으실 때에,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시옵소
서. 진리를 바로 알게 해 주시옵소서. 바른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옵
소서. 옳은 것을 알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에는 그대로 행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능력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선한 하나님의 기업에 합당한 자격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감사하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를 해야 합니다. 참으로 우리 기도의 
모본입니다. 우리도 이런 신앙을 달라고 기도해야 되겠고, 다른 사람
을 위해서도 이렇게 기도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를 위해서도 이
렇게 기도해야 되겠고, 또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되겠습니
다. 그리고 기도하고는 나가야 되겠습니다. “선한 싸움을 하러 나간
다”, “하나님의 영권에 힘, 능력에 힘입어서 나간다”, “복음을 들고 나간다”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말씀을 순종해서 나가는 신앙, 정복하는 신앙, 이기는 신앙, 마귀의 세계를 하나님의 세계로 만드는 신앙, 이런 적극성을 띄고 나가는 그 신앙의 길을 걸어 나가야겠습니다. 기도하면 서 나가면서, 능력을 갖추면서 자라나면서, 자격을 만들면서 나아가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골로새서 1:9-1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능력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이병규목사설교집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방법


1) 죄를 회개 하여야 함 

그러면 왜 성령의 역사가 우리에게 약한가? 같은 성령을 단번에 다 받았는데 성령의 역사가 약한 사람도 있고, 강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런가? 그것은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거룩한 성령이므로 죄와 같이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나가면 강한 성령이 오시긴 오셨으나 성령의 역사는 나타나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2) 자기가 죽어져야 함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됩니다. 자기가 죽어야 됩니다. 자기가 살았는데 어떻게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죽어야 됩니다. 자기 고집, 자기 주장, 자기 뜻, 자기 욕

심 등을 회개하고 자기가 죽은 만큼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하면 마귀가 옵니다. 죄가 가득한데 어떻게 성령이 오시겠습니까? 사람의 욕심을 채워주시러 오시겠습니까? 사람의 욕심을 채워 주는 것은 마귀 밖에 없으므로 마귀가 옵니

다. 그러므로 성령 받으려고 하다가 마귀 받는 게 다 그래서 받는 겁니다.


본문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입니다. 육체도 못 박고 정과 욕심도 못박았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죽어져야 합니다. 산 것은 못씁니다. 제단에 산 짐승 갖다 놓을 수 없습니다. 소나 양을 잡아서 각을 떠서 제단에 놓는 것이지, 살아있는 소나 양을 제단에 갖다 올려 놓고 제사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죽어져야 됩니다.


자기가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나는 죽은 자다, 나는 산 자가 아니다” 하여야 합니다. 자기는 죽은 사람으로 전적 무능하고 전적 무익한 자로, 전적으로 자기를 부인하여야 합니다. ‘자기’라는 것이 있으면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나를

없애야 됩니다. 처음에 “나, 나” 하다가 그 다음에는 “나, 예수”로 “나” 다음에 “예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 나”입니다. 예수를 앞세우고 다음에 “나”인데, 이것도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 예수”로 무엇만 남아야 합니까? 예수만 남아야 합니다. 나와 세상은 간 곳이 없고 예수님만 남아야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3) 순종하여야 함 

그 다음에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순종하여야 됩니다. 성령이 오른쪽으로 가자고 하는데 나는 왼쪽으로 가니까 성령하고 반대 아닙니까? 성령과 반대인데 어떻게 성령의 감동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욕심을 버리고,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기를 사모해야 됩니다. 즉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죄를 회개하고, 자기는 죽어져야 하며, 말씀을 순종해야 됩니다.


4) 사모하여야 하고 기도를 많이 하여야 함 

또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여야 합니다.


5) 힘을 써야 함 

또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고 힘을 써야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성령의 힘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갈라디아서 5:16-26 성령을 좇아 행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사도행전 13.44-50 내마음에가득한것 전승환목사 안양서부교회 171119

비시가아안디옥 10만 거주

다음주일에도 설교해잘라 청하고

바울설교감동 들으려 몰려듬

시기질투하는유대인에게 발목의티끌을 떨어버리고

남동쪽 180km 이고니온


시기가 가득한 유대인들과 성령충만한 제자들


유대교에입교한경건한이들과매안식일마다성경을 봉독하고 강론하던 유대인들


유력자들을선동하여

Rivar 라이벌 River 같은강의물을마시는사람들

시기 같은분야사람들

시기는혼자만의감정에그치지않고 반박비방선동박해로 이어진다

헬 박해. 디오구모스 몸에위해를가한다


기독교 7대 죄

교만.질투.분노.탐심.게으름.정욕

최초살인가인 아벨을시기하여

형제들 시기로 팔려간 요셉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다 몰락한 사울

마28.17 시기로 말미암아 예수죽이려던 바리새인들

성숙한 크리스천의 

질투 내가받아야할것을 빼앗길때 느끼는감정 다자적 감정

시기 일대일 상대파괴에까지

비방 중상모략,훼방

잠14.30 뼈를썩게한다

약3.16 공동체를 혼란케

고전3.3 시기분쟁에있으니 아직육체에속한자

약5.16 분쟁시기 하나님나라를유업으로 받지 못할자


바구니속의 게 다른게를 잡아내려 뚜껑을 닫을필요없다

교회는 게바구니


기쁨과성령으로가득찬제자들

내속에 가득한것이 내인격 내영성

요1.16 하나님의형상으로 은혜와진리가충만

요3.29 친구가 기뻐한다 나는이런기쁨으로충안한다

요15.11  내기쁨이충만하다

요17.15 내기쁨을그들안에충만히가지게하려


행6.3 성령.지혜충만해 칭찬듣는이들

롬15.13 믿음과소망이 충만

엡518 오직성렁충만받으라

기쁨과성령충만은세상에서얻지못한다

하나님이부어주셔야가득친다

로5.5 하나님사랑이우리에게부은바


비속에서우산받쳐들고서있는것처럼

마음닫고있으면 은혜충만불가


성도삶은환경.조건이아닌 무엇으로가득차있는가에 좌우된다

계신총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고린도전서 8:1-13 우상의 제물


추도 예배 하지 말라
추도예배는 제사 양식만 고쳐놓은 겁니다. 오늘날 추도예배 드리는 교회가 많이 있는데 그것은 방식만 고쳐놓은 것이지 제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청주에 있는 상당산 기도원 원장이 한목사인데, 그 목사님이 기도원에 계셨을 때에 제가 갔었는데, 자기는 보수 평양 신학
교를 졸업 했다는 것입니다. 평양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교회 일을 한 12여 년 간 보시다가 연세가 많아서 그 교회를 사면했는데, 후임으로 기독교 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후임 목사가 다 뒤집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후임 목사가 와서 추도예배를 하는데 연합추도예배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당에 쭉 상을 차려놓고, 여러 교인들이 조상들 이름을 다 써 붙이고 촛불을 켜놓고 다 절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바로 가르쳤는데 후임이 와서 다 뒤집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소속이 중요합니다. 또 홍은동에 성결교 교회가 하나가 있었는데, 그 목사님은 우리한테 여러 해 동안 와서 배웠는데, 우리에게서 배운 대로 교회를 하였고, 사경회도 우리 교단 목사를 데려다가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그 목사님이 병이 나서 그 교회를 사면했습니다. 그리고 후임이 성결교에서 왔는데, 추도예배를 자기아버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조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등 일년에 제사가 많지 않습니까? 제사식으로 추도예배를 합니다.


제사하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추도예배도 방식만 다르지 제사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도예배 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는 추도예배가 없습니다. 아브람이 죽은 다음에 이삭이 추도예배 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죽은 다음에 야곱의 열 두 아들들도 추도예배 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윗이 죽은 다음에 추도예배 하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당한 다음에 추도예배 했습니까? 베드로가 순교당한 다음에 제자들이 추도예배 했습니까? 죽은 사람을 기념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은 예수 믿었으면 천당 갔고, 안 믿었으면 지옥 갔는데 추도예배 한다고 해서 오겠습니까? 죽은 사람 기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신명기 26:14에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 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라고 하였고, 시편 31:12에 “내가 잊어버린바 됨이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파기(破器)와 같으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죽은 자를 위해 성물을 쓰지 말고,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추도예배도 방식만 다르지 정신은 제사와 같은 것입니다. 천당 갔는데 뭐가 슬퍼서 제사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 사상이 죽은 자를 기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단 천당과 지옥에 갔으면 끝입니다. 죽은 자를 기념하는 것은 성경에 어긋난 것입니다. 믿음을 잘 지킨 사람들은 추도예배 하지 않았습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제 4회 총회록에 보면 추도예배 하지 말라는 게 있습
니다. 부모의 죽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음식을 차리거나 손님을 초대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추도예배를 하면 치리한다고 하였습니다. 한국총회가 처음에 이렇게 했습니다. 이북에서도 이기선 목사님이 추도예배 하는 것을 못 보았습니다. 김현봉 목사님이추도예배 했습니까? 바로 믿으려는 성도는 추도예배 안합니다. 추도예배하는 교회는 옳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대개 추도예배를 합니다. 한번은 전화가 왔습니다. 유명한 목사님인데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어 추도예배를 해야겠는데 나보고 와서 좀 축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난 안한다”고 하였습니다. 고려측 석원태 목사님도 추도예배 안 한다고 합니다. 바로 
믿으려는 생각이 있으면 추도예배 안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다른 사람의 양심을 망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므로 먹으면 안 되고, 추도예배도 죽은 사람을 기념하지 말라고 하였으므로 하면 안 됩니다. 성경은 죽은 사람을 기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고 추도예배 하지 말고 바로 나가야 합니다. 


다른 교회에서 온 교인이 추도예배를 해달라고 하면 안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을 붙잡으려고 교역자가 추도예배를 해주면 신앙 양심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추도예배가 잘못되었음을 가르쳐서 안 하게 해야지, 목사가 따라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그 교회가 
몽땅 다 흑암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진리를 바로 세워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교회에서 합동으로 추도 예배하기 위해 예배당 안에 상을 차려놓고, 죽은 조상들 이름을 써 붙이고, 촛불을 켜놓고, 흰 옷을 입고 와서 거기다 절했답니다. 예배당이 우상 섬기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가증합니까? 추도예배 할 때에 “십자가를 붙여 놓고 하면 된다, 추도예배 안 하는 것은 불효다, 추도예배 하는 것이 효도다”라고 하고, 또 십자가를 붙여놓고 “예수님께만 기도하면 된다”고 하는데 이것도 다 우상화 된 것입니다. 
전에 내가 목포에 있는 일로교회에 사경회 하러 가서 추도예배 하지 말라고 사경회 때 말하니까 그 교회 나이가 좀 든 장로님 한 분이, 목사님께서 추도예배 하지 말라는 게 옳다는 겁니다. 그 장로님이 이북에서 나오셨는데 이북에서 배운 신앙이 그것이라는 겁니다. 목포에
서는 그 장로 말씀이, 부모가 떠난 다음에 일 년 있다가 떡을 해가지고 온 동네에 다 돌린답니다. 그것은 형식만 바꿨지 제사하는 것과 똑 같은 것입니다. 추도예배도 죽기 전날 합니다. 초하룻날 죽었다고 하면 그 전 날, 그믐날 하는 겁니다. 제사와 똑같습니다. 안 믿는 사람하고 똑같이 하는 겁니다. 제사하는 방식으로 상 차려놓고 절하는 데도 있고, 촛불 켜놓고 절하는 데도 있습니다. 또 상을 차려놓고 예배 보는 데도 있습니다. 상은 왜 차려놓습니까? 천당 간 사람이 와서 먹습니까? 또 지옥 간 사람이 와서 먹습니까? 자기 부모가 믿었으면 천당 갔을텐데, 상은 뭐하러 차려놓습니까? 또 안 믿었으면 지옥 갔을텐데 상은 왜 차려놓습니까?


이것은 다 귀신 섬기는 것입니다. 제사하는 정신이 있어서 그 제사하는 방식만 고친 겁니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예수 믿으려면 추도예배 안 해야 됩니다. 성경에 어디 추도예배가 있습니까? 죽은 사람 기념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안하는 게 원리 원칙입니다. 그런데 요새 많은 교회들이 추도예배 하고 있습니다. 핍박 안받기 위해서입니다. 또 명목은 좋게 갖다 붙입니다. 즉 자손들에게 부모의 교훈을 가르치려고 한다는 명분을 내세웁니다. 추도예배 하면서 “너의 할아버지가 무슨 교훈 했다, 또 아버지가 무슨 교훈 했다, 증조 할아버지가 무슨 교훈 했다”고 하면 성경에 맞습니까? 또 목사는 일 년 내내 추도예배만 하다가 그만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목사가 기도하고, 성경 연구하고, 하나님께 바로 해야지 죽은 사람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느라고 돌아다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산 사람을 위해서 해야지, 왜 죽은 사람을 위해 일을 하느냐는 겁니다. 그러므로 추도예배는 안 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믿어야 합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믿자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믿으려면 추도예배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하였으므로 이런 것들을 금해야겠습니다. 목매어 죽인 것 먹지 말라고 하였는데, 개는 대게 목매어 죽입니다. 요새는 모르지만 전에는 거의 다 목매 죽여서, 믿는 사람들이 개고기를 안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믿음이 약한 사람이 개고기를 먹으면 “개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아무튼 네 가지를 성경에서 금했으므로 안 해야 됩니다. 
우상의 제물을 모르고 먹다가도 우상의 제물이라는 것을 알면 즉시 먹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 지키는 것, 추도예배 하지 않는 것, 십일조 드리는 것, 이것이 요긴한 것입니다. 주일은 철저히 지켜야 되고,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반드시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안 바
치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한 것입니다. 믿음을 근본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바른 신앙은 주일 지키는 것, 십일조 드리는 것, 우상의 제물 먹지 않는 것, 여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추도예배 하는 것은 제사하는 방식만 바꿔놓은 것이지 제사와 똑 같습니다. 우리가 바른 진리를 받았습니다. 이 바른 진리를 세워 나가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13:42 그들이 나갈 때에 사람들이 다음 안식일에도 자신들에게 이 말씀을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13:43 회중이 흩어진 후에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자들 중에서 많은 이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과 함께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고 권하였다. 

힘의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은혜의논리로 산다
하나님이나를붙드신다
은혜의 울타리를거두시는순간몰락한 욥

비시기아안디옥에서 17년 만의 설교하는 바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엡2.5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내가 산것은 은혜

엡2.8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설교자 마틴 로이드존스 은혜란단어보더더놀란운건없다 받을자격없는자에게주어진선물

은혜는나를바꾼다
생각.말.사는방식이 달라진다

은혜와평강이너희에게있을지어다
바울이 서신마다 붙이는 기원

나를칮은자가은혜를발견한다
하나님의 은혜는십자가를 통해내려온다
성령의지 않으면 은혜모른다

교회는 은혜공동체

도스토예프스키 마지막 5분
최로죽었다가 예수은혜로다시산 우리

1.받은은혜를 잊지말라
고후6.1은혜를헛되이받지말라
장자권소홀히한 에서
슈바이처 아침햇살을 당연히 받아들이는것은 죄악

2.계속은혜를받아라
고후6.2 지금은은혜받을만한때
하난 헬라어  위에서흐르는것 겸손한자가 받는다
헤세드 헬사랑으로 꾸짖는다
카리스 헬 값없이주시는선물

3.은혜의통로를 더럽히지말라
눈.귀.입을 거룩하게 쓰라

4.은혜는 품지말고 흘려보내라
본 회퍼 윤리학 값싼은혜 자기만의
섬기는 도구로

갈릴리와 사해
나누기를거부하고죽은바다

고전15.10 나의나된것이 하나님 은혜
빌1.29 고난도 받게하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려면, 

첫째는 종의 위치에 있어야 됩니다. 종은 하나님의 시키시는 대로만 하는 사람입니다. 가라하면 가
고, 오라하면 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다윗과 같이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됩니다.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다 지켜야 됩니다.
셋째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아야 합니다.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을 좇는 일이 중요합니다. 

넷째는 정직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 다윗이 정직한 일을 행했습니다.


사도행전 13:13-52 안디옥에서의 전도와 핍박중에 복음전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사도행전13.36~41 하나님이기억하시는인생 전승환목사 안양서부교회 171105 추수감사주일

13:36 그런데 다윗은 자신의 세대 동안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다가 잠들었고, 그의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나, 

13:37 하나님께서 살리신 분은 썩음을 당하지 않으셨으니, 

13: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알아라. 이분을 통해 죄 용서가 너희에게 선포되고, 

13:39 너희가 모세의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분 안에서 모든 믿는 자가 의롭다 함을 받는다. 

13:40 그러므로 너희는 선지자들에 의하여 말씀한 것이 임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말씀하기를 

13:41 '보아라, 너희 멸시하는 자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여라. 내가 너희 생전에 한 가지 일을 행하겠으나, 누가 너희에게 이야기하더라도 너희가 도무지 그 일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바울 비시기아안디옥 인생 첫설교 주어 '하나님이'
1.택하시고
2.높이시고
3.채우시고
4.참으시고
5.필요를 채우시고
때로는 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마음에합한자 다윗
사람과맞추려말라
하나님기쁘시게하랴사람기쁘시게하랴 사람기쁘시게하면 하나님종이아니니라

22절 폐하사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내 뜻을 다 이루리라

내가만나는그로인해 하나님이 일하신다
사람을통해 일하시는하나님
그 중심에 예수가계시다
인생중심예수 구원자 천국으로 이끄시는 자

하나님이 기억하는사람
1.감사하는 사람
깨닫는 자가 감사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복되게하는 감사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불평원망 할때가 진노하시고 관계가 깨진때
인간관계에서도 감사 더 깊은 관계형성
감사 축복의메아리
스스로를 행복케 한다

평생 행복은 감사에 있다
롬7.24 바울탄식 중에도 그리스도로 인해 감사
오호라나는곤고한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몸에서건져내랴
25절 우리주예수그리스도로말미암아감사하리로다
감사는 하나님의뜻
이는그리스도예수안에서너희를향하신하나님의뜻이로다

2.하나님 뜻을 따라 사는 사람
36 그는 하나님 뜻을 이루며 살다가 죽었다
 내 뜻을 다 이루리라
25 세례요한
달려갈 길을 마치다 헬라어 여정길 마치다 가득히 채우다
예수그리스도를 예비하는자로 살았다

예수 위해 산 시간만 기억된다
행13장 광야 40가나안450년 솔로몬성전건축까지3년 573년
왕상1.6 하나님 계산 480년 애굽에서 나와 건축까지
하나님기억하지않는시간 93년 이방을 섬긴 시간
사사기3.8 3.14 18년 4.2 20년 6.1 7년 13.1 40년
합  93년

3.예수그리스도를 힘입어 사는 사람
38 이 사람을 힘입어

얄바트로스 별명 바보새 신천옹 하늘을믿는 노인
바람이 거세게 불면 절벽 끝에서서 뛰어내려 바람을 타고 6일 5천 킬로미터 두달만에 지구를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