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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기독교연합회, 연합 부흥성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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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퍼스트신문 작성일 18-08-22 21:24 댓글 0 건

가평퍼스트신문  / 나눔/단체/기관/동호회

가평기독교연합회에서 연합부흥성회를 99일저녁 730분부터 11일저녁7시 30분까지(5회집회개최하기로 했다.
본성회는 말씀기도 거룩한 삶이란제목으로 오륜교회 김은호 담임목사님을 초청하여 가평장로교회 예배당에서 첫째날 9일저녁730분 송흥섭목사(가기연회장)의인도 필그림찬양단(가평장로교회)의 경배와찬양 이두복목사(청평감리교회대표기도 김성옥목사(가기연총무)광고 시온찬양대(가평장로교회)의 찬양 오륜교회성도님의 특송 강사소개(인도자하나님의 일하심의 방식을 알자라는 제목으로 김은호목사(오륜교회)가 설교후 원종문목사(열린교회)축도 둘째날 10일오전1030분 이주형목사(가기연부회장)의인도로 박주영목사(사랑의교회)의대표기도 김성옥목사(가기연총무)의 광고 성경애사모(제일침례교회)의특송 영적전쟁이란 제목으로 김은호목사 의설교와축도 둘째날10일 저녁730분 민현기목사(예수사랑교회)의 인도 필그림찬양단의 경배와찬양 조재호목사(우리교회)의 대표기도 김성옥목사(가기연총무)의 광고 징검다리찬양단의 특송 김은호목사(오륜교회)의 생명의 물에 잠기라는 제목으로 설교와축도 셋째날11일오전 1030분 박선준목사(가평기쁨교회)의 인도로 길병구목사(마장교회)의 대표기도 김성옥목사(가기연총무광고 영적전쟁이란제목으로 김은호목사(오륜교회)의설교와축도 셋째날 11일저녁정성기목사(가평장로교회)의 인도로 필그림찬양단(가평장로교회)의 경배와찬양 장익봉목사(청평장로교회)의 대표기도 청평장로교회 찬양대의특송 이것이 바로 영적전쟁이다라는제목으로 김은호목사(오륜교회)의 설교후 오륜교회성도의 봉헌송 김은호 목사(오륜교회)축도로 마무리된다



서해 지키는 복음의 섬… ‘바이블랜드’ 짓는다
한때 인구 90%가 기독교인 백령도 복음화의 비결
국민일보 입력 2018-08-24 18:18

http://m.kmib.co.kr/view.asp?arcid=0923996873&code=23111111&sid1=chr



남한 최초 자생교회이자 백령도의 모교회인 중화동교회 전경. 백령도=강민석 선임기자

백령도 교계와 인천 옹진군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바이블랜드’ 조감도.

김주성 백령한사랑교회 목사가 지난 21일 새벽기도회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백령도=강민석 선임기자


용기원산 끝섬전망대에서 바라본 백령도 전경. 백령도=강민석 선임기자

최근 백령도의 선교역사를 재조명하는 사업이 추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천 옹진군과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명 ‘바이블랜드’ 사업이다. 지난해 주민 및 교계 설명회를 거친 이 사업은 300억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다. 29만㎡ 부지에 근현대사 문화공원과 선교역사관, 백령전시관, 카페 등이 들어선다. 백령도 선교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제작할 예정이다.

지난 22일 백령도 백령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난 김주성(백령한사랑교회) 목사는 “공식적으로는 한국의 개신교가 1894년 9월 20일 알렌의 입국으로 시작되지만 하나님께선 이미 반세기 전부터 한국선교를 위해 섬세하게 준비하고 계셨다. 그 중심에는 서해안,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복음화율이 높은 지역 중 하나인 백령도가 자리 잡고 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바이블랜드 완성을 위해 발로 뛰고 있다.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첫발을 디딘 곳이 바로 백령도라는 말을 주민들에게 여러 번 들었습니다. 조사해 보니 한국교회 역사에서 백령도의 선구적인 역할은 평범한 것이 아니더군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했습니다.”

그는 옹진군 관계자를 만나 백령도를 찾는 이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펴 왔다. 목회자들에게도 협조를 구했다. 백령도가 하나님의 선택받은 땅이었음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게 김 목사를 비롯한 현지 교계의 한목소리다.

백령도엔 왜 기독교인이 많을까

백령도 교계에 따르면 백령도는 원래 인구의 약 90%가 기독교인일 정도로 복음화율이 높았다. 하지만 믿지 않는 외지인들이 들어오면서 복음화율이 감소해 현재 60% 정도가 교인이다. 주일에 주민 대부분이 교회에 있어 외지인들이 문을 여는 식당을 찾기 힘들 정도다.

물고기가 많이 잡히기를 기원하는 의식인 풍어제나 마을의 풍요를 비는 당산제가 사라진 지는 오래됐다. 주민들은 거의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백령도엔 현재 군인교회 2곳을 포함해 12개 교회가 사역을 펼치고 있다. 그중 4개 교회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백령도의 복음화율이 높은 이유는 먼저 지정학적 위치를 꼽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 서구의 선교사들이 중국의 육로를 통한 사역의 길이 막히자 자연스레 뱃길을 이용해 백령도에 상륙했다. 백령도는 당시 해상교통의 요충지였다. 때문에 백령도는 초기 한국 기독교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1816년 영국 해군 H J 클리포드와 바실 홀이 백령도에 상륙했다. 서해안 일대의 해로(海路) 작성과 탐사를 하기 위함이다. 이들은 백령도 주민들에게 한문성경을 나눠줬다. 한국교회 최초의 성경 반입이었다. 1832년 귀츨라프 선교사는 백령도 주민에게 한문성경을 전하고 복음을 전했다. 이어 충남 고대도와 전북 군산, 금강 입구 등지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백령도 중화동교회에서 만난 조정현 목사는 “당시 성경이 구문으로만 전해져 안타깝다”며 “백령도에 처음 교회가 설립된 것이 1898년이고 당시 성경보존의 효용가치가 없었던 데다 국법에도 위배돼 보존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1896년 설립된 중화동교회는 남한 최초의 자생교회이자 백령도의 모교회다. 1894∼95년 갑오경장이 일어나고 자연스레 신문물인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백령도 참사 벼슬을 지냈던 허득과 유배를 온 김성진, 황학성, 장지영 등이 이듬해 서당에 중화동교회를 설립했다. 당시 이 교회 당회장은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한 호레이스 언더우드 선교사였다. 교회 앞 기념비에는 1900년 11월 언더우드 선교사가 교인 7명에게 세례를 베푼 기록이 남아있다.

백령도에 온 피란민 대다수가 기독교인이라는 점도 복음화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다. 지정학적으로도 연관이 있다. 조 목사는 “북한을 코앞에 두고 최북단인 접경지역에서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주민에게 적극적인 구원관과 하나님 유일신 사상의 체계를 갖춘 기독교가 잘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천안함 사건 상처 딛고 예전 모습 되찾아

6·25전쟁을 전후해 좌우 대립이 거의 없었다는 일화는 백령도 주민들의 민심과 신앙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백령도 교인들은 북한 인민군 치하 3개월간 아무 탈 없이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인민군이 ‘북한헌법에 따라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말을 믿고 피란을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인민군은 국군이 들어오기 직전 북한에 돌아갈 수 있도록 협력해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교인들은 배 한 척을 마련해 인민군들을 무사히 돌려보냈다.

조 목사는 “당시 좌우 대립으로 희생된 사람이 많았다. 백령도의 상황은 정말 특별한 거였다. 아마도 기독교의 영향과 백령도 주민의 단결이 그런 사랑의 결실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전했다.

백령도 교회들은 복음전파에 열심이다. 매년 8월 15일 민·관·군 연합예배를 드린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매월 셋째 주 금요일 저녁엔 각 교회를 돌며 연합기도회를 연다. 11월 마지막 주일엔 부흥강사를 초청해 영적 성장을 도모한다.

2010년 3월 백령도 인근에서 천안함이 침몰했다. 온 국민에게 큰 상처였다. 백령도를 찾는 관람객의 발길은 오랫동안 끊어졌다. 지금은 남북 긴장이 완화되는 가운데 점차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다.

조기연 아세아연합신학대 북한연구원장은 “백령도를 통해 복음이 남과 북으로 확산돼 나간 것처럼, 이제 백령도를 통해 남북이 하나 되는 역사가 이뤄지길 바란다”며 “새롭게 떠오르는 서해안 시대에 발맞춰 한국교회사에 백령도가 새롭게 재조명되는 것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백령도=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안양시기독교연합 동성애조장 차별금지법 NAP시행 반대나서

안양시 기독교연합회 소속교회들이 NAP(동성애조장 차별금지법)시행 결사 반대에 나섰다.

안양시 기독교연합회 소속교회들은 8월 19일 예배당 앞에 현수막을 걸고 교인들에게 설명했다.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중 두 가지 독소조항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양성평등에서 성평등으로 바꾸지 말라. 

독일 여성화장실에 깔대기 비치. 동성애때문 한국에이즈확산1위.
군대내 항문성교 위법규정 삭제를 정의당 입법 추진. 소아성애자의 성소수자 인정 요구. 미국제과점 동성애자 결혼축하케이크 제작거부후 고발로 인해 폐업과 벌금 부과 대법에서야 무죄판결

2.국민인권을 사람으로 바꾸지 말라.

사람은 난민 무슬림 여호와의증인 모두 포함된다. 무슬림 결혼4회까지인정. 여호와증인 대체복무 허가는 양심적병역거부를 인정하는것
마가복음 8장22-26 무엇이보이느냐 전승환목사 안양서부교회 180819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소경 하나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우러러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가라사대 마을에도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8:22‭-‬26 KRV

https://bible.com/bible/88/mrk.8.22-26.KRV


담주요절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역대상 4:10 KRV

https://bible.com/bible/88/1ch.4.10.KRV


두 번으로 나누어 치료


무엇이 보이느냐 나무같은것들이왔다갔다하나이다

거시기하다

믿는사람이라고할수있나

목사가 장례식장에서 할말이없는사람


산앙의확신


나으려거든

1.주의손을잡아라

이제껏사람손을잡고왔어도 이제부터는

사람손을놓아라

주님여이손을꼭잡고가소서


2.마을밖 주와 단둘이


3.침을 뱉으셔야

눈먼그를망가뜨린그것에대한대적


안수하시고


눈앞에서계셨을 예수보다 먼데있는사람들을먼저보다

개역성경 우러러보며

사람,환경,문제를 먼저보다


다시 안수하시니 주목해보다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마가복음 8:18 KRV

https://bible.com/bible/88/mrk.8.18.KRV


불기둥구름기둥영향권안에있어야

2018년 8월 사경회를 아래와 같이 개최합니다.

 


일시 : 2018년 8월 13일(월)  ~ 16일(목)
         월요일 저녁 7시
         화요일 새벽 4시 40분 / 오전 11시 / 오후 2시 30분
         수요일 새벽 4시 40분 / 오전 11시 / 오후 2시 30분
         목요일 새벽 4시 40분 / 오전 11시


장소 : 광주 제일기도원

강사 : 김창훈 목사

본문 : 갈라디아서



요한복음9.1-6  어떻게 하나님이하시는일을경험할까? 전승환목사 안양서부교회 180812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요한복음 9:1‭-‬7 KRV

https://bible.com/bible/88/jhn.9.1-7.KRV


강일수 (안목)

성공하는사람들은눈이다르다

나중에보는것이아니라시작할때본다

문제는보는것이아니라기회를보며

현실만보는것이아니라

그너머에있는미래를본다

 

권사 아들얻으려 제사 예수믿고 제사폐하고 아들얻다 목사가 되다 기도이룬후 다시 귀신에제사지내려 재산정리하던 권사 새벽기도다녀오다교통사고사망 아들목사 이는전사다 확실하신하나님이죄짓기전에 데려가셨다


고난당하는이를 측은하게 여기기보다 정죄가 앞서다

잔인한 언어놀이 정죄하는 이들


희망을주는말 

죄때문이아니다 그에게서하나님뜻이나타나게하려함이다

영적반전


고난의 시간에 기억할것

1.지나간시간에 잡히지마라

2.서로를 탓하지마라

3.사람의말에 귀기울이지마라


1.하나님이하시는일을나타내려함이라

2.나를보내신이의일을우리가해야한다

3.밤이오리니그때는아무일도못한다

4.나는세상빛이다

5.실로암가서씻으라


불쌍히 여기사 

기적을행하실때 주님마음


진흙이겨 민간요법

창조하실때 진흙으로 인간을 만드시던손길


보냄받은자의삶이라야 고난중 하나님뜻을 나타내는기적을 경험한다


실로암으로가라

오 리를 가야한다

실로암 보냄을 받았다


이제까지의길과 실로암 가는길이 같아보여도 결과가 다르다


운명으로살지말고 사명으로산다


나를보내신이의일을 (우리가) 해야한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창세기 45:5 KRV

https://bible.com/bible/88/gen.45.5.KRV


광야사십년지난후에야부르신하나님

지금당하는 고난중에있는 하나님뜻을찾으라


실로암을 향해가는 맹인을보고 서계셨을 주님


밤이오리니 일할수없으리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은 1955년 “한국 기독교 문화 창달” 이라는 목적을 갖고 설립된 기독교문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초교파적 문서 선교 기관으로 설립된 기독교문사는 1985년 한국 기독교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편찬한 “기독교대백과사전” 전16권을 비롯하여 다양한 기독교 양서들을 출판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한국 교회의 신앙ㆍ역사ㆍ문화와 관련된 10만여 점의 귀중 자료를 수집하게 되었다.

여기에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의 설립자인 향산 한영제 장로는 이 자료들이 학계와 교계에 연구 자료로 사용될 수 있도록 “향산기독교문화연구원”을 설립했으며, 2001년 11월 11일, 일반인에게도 그 기회의 폭을 넓히기 위하여 경기도 이천에 본 박물관을 설립하였다.

2007년 평양 대부흥운동 100주년을 맞아 현 부지 내에 “평양장대현교회”를 축소 복원하여 관람객들이 초대교회 신앙 회복과 문화를 체험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http://www.kchmuseum.org/

신순철님 페북에서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2144570285615331&set=a.362778000461244.82728.100001871400316&type=3&theater



마태복음14.13-21  그것을내게가져오라 전승환목사 안양서부교회 180805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마태복음 14:13‭-‬21 KRV

https://bible.com/bible/88/mat.14.13-21.KRV 


4복음서 동일하게 기록한 기적 오병이어


기적을믿지않는시대


기적을베푸시는주님의마음

기적을기대하는오늘

기적을베푸실때주께서하신말씀

기적은 믿는자에게 나타난다


좋은생각8월 존리틀우드 기적 백만분지일70억1개월1회


요한의죽음소식 들으시고

요한복음6장 유월절 예루살렘으로 모이는 시기 남자25,000명 운집 가능


너희가 주어라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줄수있음을 알아야


나는아무것도할수없음을고백하는것이신앙 나를통해그리스도께서일하시게하는것이 기적


책임지고인생을살려라


물고기 익서스

옵사리온 어부들이버리면 서민들이주어다먹는작은물고기

소년의도시락처럼보잘것없는 인생에 그리스도의손길이더해질때 기적이 일어난다
"목회, 설교보다 성숙한 인격이 더 중요하더라"
[종교개혁 500주년, 원로에게 듣다] 향상교회 정주채 은퇴목사
  • 이용필 기자 (feel2@newsnjoy.or.kr)
  • 승인 2017.07.23 19:45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교계 행보를 보고 있노라면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연합 기구 통합 움직임을 시작으로 각종 세미나와 포럼이 열립니다. 겉으로는 그럴싸하지만, 실속은 없어 보입니다.

누구나 한국교회 위기를 말합니다. 교세는 갈수록 줄고 있는데다 개신교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도 곱지 않습니다. 연합 기구를 통합해 한목소리를 내고 '나부터 회개 운동'을 한다고 해서 쉽게 해결될 문제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진짜 한국교회 위기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멀리 가거나 바깥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개혁실천연대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간 한국교회의 가장 큰 분쟁 원인은 '목회자의 전횡'입니다. 독단적 운영과 목회자의 성폭력 역시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씁쓸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목회자가 바로 선다면 한국교회가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목회자가 바로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계의 어른'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세상도 교회도 커지려 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가 커지자 담임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목사·장로 임기제를 도입하고, 정년보다 5년 일찍 은퇴했습니다. 경기도 용인 향상교회 정주채 은퇴목사 이야기입니다. - 기자 주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교계 어른'으로 불리는 정주채 은퇴목사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초대형 교회 두 곳을 2주에 걸쳐 취재했다. 예배 스타일과 분위기는 차이가 있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수만 명의 교인은 예배 말미 '교회 부흥'을 위해 목 놓아 기도했다. 단상에 선 목사가 "교회 부흥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고 말하자, 교인들은 "아멘"을 외쳤다.

'얼마나 더 커져야 만족할까.' 물론 큰 교회만 부흥을 좇는 건 아닐 것이다. 작은 교회는 중형 교회를, 중형 교회는 대형 교회를 추구하는 게 한국교회 현실이다.

정주채 목사(향상교회 은퇴)는 이러한 '관습'을 깨뜨렸다. 출석 교인이 1,500명을 넘어서자 분립했다. 보통 부목사를 파송하는데, 정 목사는 자기가 직접 나갔다. 2000년 10월 서울에서 벗어나 용인에 향상교회를 세웠다. 240여 명의 교인이 함께했는데, 9년 만에 2,000명으로 늘었다. 교인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향상교회는 2011년 교회를 분립, 개척했다.

교회 분립이 전부가 아니다. 정 목사는 2013년 11월, 담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의 나이 65세였다. 교회에서 공을 인정받아 원로로 추대될 법도 했지만, 그는 사양하고 '은퇴목사'로 남았다. 그는 원로로 남을 경우 자칫 후임 목사와 갈등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건강이나 다른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깨끗이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목사가 교회를 분립, 개척하고 조기 은퇴한 게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안위와 사리사욕을 채울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결단은 쉽게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시대의 어른'을 찾기 힘든 요즘, 정 목사가 교계의 어른으로 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나 교회 개혁을 이야기하는 시기. 어떤 이는 이제 더 이상 목회자 그룹에 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하며, 일반 신자가 깨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설득력 있는 말이다. 하지만 목회자 한 사람이 바뀌었을 때 교회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여전하다.

목회자가 욕심을 비우고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면, 한국교회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목회자의 가치관이 기존과 다르게 바뀌면 교인도 교회도 변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정주채 목사와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7월 21일 향상교회에서 진행됐다.

정 목사는 교인이 늘어나자 용인에 향상교회를 분립, 개척했다. '높은 곳을 향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를 보면 왠지 들뜬 분위기다. 회개 운동과 각종 기념 세미나가 열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행사도 많이 하고, 세미나도 열심히 한다. 그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 행사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일례로 2007년 평양 대부흥 운동 100주년 행사를 들 수 있다. 평양 대부흥 운동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으로 한국의 오순절이라고 불렸다. 그 정신을 회복하자는 취지로 '회개 운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달라진 게 없다. 열심히 했으면 열매가 있어야 하는데, 열매가 없어서 그게 좀 답답했다. 개인적으로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기대해 본다.

회개와 개혁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일이 정말 쉽지 않다. 지금까지 자신의 삶과 지위, 명성을 버리고 돌아서야 한다. 사실상 다 내려놓아야 가능하다. 약간의 양심적 가책과 지적인 반성으로만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인 수가 불교인 수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일부 목사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평가하며 자축하더라.

나는 통계 자체에 의문을 가진다. 교세 통계는 믿기 힘든 부분이 있다. 옛날 이야기지만, 개신교, 불교, 천주교 인구를 합했더니 대한민국 인구보다 많이 나왔다는 설도 있다.(웃음) 숫자 자체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진지하게 자기를 돌아보고 근신, 반성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 많은 사람이 한국교회 위기를 말한다.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각종 조사에서 드러나듯이 '목회자의 전횡'(성 문제, 재정 문제 등)이 가장 크지 않나 생각한다. 높은 윤리 의식을 보여야 할 목회자가 오히려 일탈하고 있으니, 교회를 다니든 안 다니든 실족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단순히 목회자 전횡만이 문제가 아니다. 참 말하기 어렵지만, 목회자들 수준이 문제다. 자질도 모자라고. 세속적 가치관에 휩쓸린 나머지, 목회 성공의 기준을 교인 수와 재정으로 판단한다.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니까, 너 나 할 것 없이 대형 교회를 만들려 한다. 또 대형 교회는 보통 담임목사의 말씀과 카리스마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런 은혜(?) 속에서 부흥한 교회의 교인들은 그 목사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담임목사가 절대권을 가지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전횡을 하게 되는 거다.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과 존경을 목사가 자신도 모르게 가로채고 누리는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냐고? 글쎄…전체적으로 교회의 영적·윤리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기독교가 사회를 이끌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반대가 됐다.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기 급급하다. 이 흐름을 역전시켜야 하는데, 막연하고 안타깝다.

- 원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목회자 양성 구조 문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목사님은 2013년 한 인터뷰에서 "신학교 졸업생들에게는 정말 할 말이 없다. 꼭 말하라면 칼뱅이 말한 대로, 할 수만 있다면 목사 되는 일을 피해 보라. 개척교회도 피해 보라. 생명에 대한 외경,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조언했다. 이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도 많은 신학생과 목회자가 쏟아져 나온다. 소수 정예만 배출하면 좋겠지만,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나는 신학 교육이 갱신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갈 데까지 갈 거라고 본다. 지금도 목사가 엄청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전보다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지원하는 사람이 많다. 가만 보면, 은혜 받았다며 감정적인 사명감으로 목사가 되거나, 생계 수단으로 목회를 하거나, 대우받기 위해 목사가 되기도 하더라. 심히 우려된다.

신학교도 확 줄여야 한다. 비인가 신학교까지 더하면 우리나라에 신학교가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교단이 하나 새로 생기면, 신학교도 하나 늘어난다고 보면 된다. 나는 무분별한 신학교 설립과 신학생 배출 문제를 30년 전부터 제기해 왔다. 신학교 정원을 줄이고, 사관학교처럼 정예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입학생은 교단이 100% 지원하고, 치열한 교육과 훈련을 시켜야 한다. 그렇게 10년만 하면 한국교회는 새로운 영적 리더십을 갖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말을 할 때마다 어른들에게 욕먹었다.(웃음)

교회 갱신과 개혁을 생각하다 보면 결국 신학교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기존의 목회자를 변화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새싹들을 잘 길러 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신학교 교수들이 분발해야 한다. 비인가 신학교는 그렇다 치더라도, 정식 인가 신학교 교수들이라도 제정신을 차리면 뭔가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밥그릇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하는 교수가 많다. 특히 보수 교단은 신앙의 보수만 생각할 게 아니라 교회의 생명을 위해서라도 신학교 갱신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안타깝게도 보수 신학교일수록 이런 감각이 없다. 오히려 소위 진보적인 신학교 교수들 중에 '신학 교육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안타까워하는 사람을 가끔 보았다.

신학교 교육 갱신이 일어나야 한다. 내가 속한 예장 고신이나 보수적인 신학교 교수들을 만나 보면 개혁이란 말은 많이 하면서도 개혁 정신이랄까 야성이 별로 없다. 신학교 교수는 칼뱅의 직분 분류로 말하면 교회의 교사다. 미안하지만, 신학 교육 개혁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교수들 중 많은 사람이 교단 정치에 짓눌려 말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한. 신학 교육 갱신을 위해 어느 때보다 자기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

너무 비판적으로 이야기해서 좀 그렇지만, 한두 마디 성경 번역이나 해석상의 차이 혹은 여성 안수 문제 등에 열을 올릴 게 아니다. 그게 뭐가 그리 중대한가. 그런 것들은 교회를 개혁하는 데 중요한 이슈들이 아니다. 이런 거 토론하는 것보다 신학교 갱신을 위해 머리를 맞댔으면 좋겠다. 그리고 교회는 신학생들이 재정에 쪼들리지 않고, 영성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공부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정 목사는 목회자를 배출하는 시스템을 지적했다. 한국교회가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신학교부터 손을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한국교회의 배타성과 사회문제에 대한 공감대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사회와의 공감이라고 할까, 사실 이 부분은 나도 약하다. 나는 모태신앙이다. 오직 교회 안에서 생활해 왔고, 신학 공부를 하고 목회만 해 왔다. 세상을 보는 눈이 별로 없는 거다. 칼 바르트는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두라고 하지 않았나. 우리 같은 보수 신학을 가지고 있는 교회들은 오히려 '하나님나라'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나라를 이해하게 되면, 자연히 이 세상 전체를 바라보게 되고 안목도 달라질 수 있다.

- '하나님나라'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예전에 신학 교육받을 때만 해도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해가 천당의 개념을 크게 넘지 못했다. '이미 실현됐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정도'의 개념이었다.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떤 국가의 정체성은 그 국가가 가진 통치 이념에 의해 드러난다. 하나님나라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나라의 통치 이념은 사랑과 공의 또는 정의다. 교회가 사랑만 외칠 게 아니라, 사회정의를 위해서 올바른 잣대와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에 본을 보여야 한다. 이게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사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식하는데, 공의 곧 사회정의에 대한 인식은 약하다. 성경에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 끊임없이 나온다. 그런데 보수적인 교회들은 사회적 평등이나 공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약하다. 이게 바로 나와 같은 사람의 약점이기도 하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나라 관점은 소위 사회정의, 사회 평등 이런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하나님나라의 이념인 사랑과 공의가 실현되어 사람들이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 이게 하나님나라 운동이 아닐까 싶다. 교회에서는 십자가 사랑을 강조하지만, 사회정의나 공의에 대해서는 별 인식이 없다. 사랑과 공의는 별개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같은 말이다. 이 둘은 함께 어우러져 가야 한다.

- 목사가 사회정의와 평등을 강조하면 아직도 '좌파' 또는 '빨갱이' 목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많은 목사가 '문화적 보수'와 '신학적 보수'를 구별하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는 문화적 요소인데 그걸 신학적으로 생각한다. 그런 관점을 유지하다보니 현실 문화와 교감을 못하고, 사회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하는 것이다. 이념적으로 좌우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걸 나무라거나 반대할 수는 없다. 신앙인들 중 좌파나 우파를 보면 신앙보다 정치 신념을 더 앞세울 때가 많다. 정치적 신념이 신앙에 우선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면 신앙보다 정치적 신념이 앞설 수 없다.

- 많은 목회자가 '교회 부흥 = 하나님의 축복(영광)'으로 생각한다. 작은 교회는 중형 교회를, 중형 교회는 대형 교회를 꿈꾼다. 엄밀히 따지면 성장 욕심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목사님은 교회를 두 번 분립, 개척했다. 교회를 더 키울 수도 있었을 텐데.

교회가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건 하나님의 축복이자 영광이다. 그러나 소위 성장주의와 물량주의에 빠진 성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 교인 한 명이라도 늘리고, 교회당을 크고 아름답게 지으려 하는 성장주의와 물량주의에 빠지면 물불을 가리지 못한다. 그야말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기에 함몰된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오늘날 개척교회부터 대형 교회까지 열망은 하나다. 대(大) 교회가 되는 것이다.

목회자가 늘 생각하고 목표로 삼아야 할 건 '영혼 구원'과 '영적 복지'의 향상이어야 한다. 이게 확장되면 사회복지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점을 타깃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관심이 없고, 교회를 키우고 재정적 안정과 목회적 성과만 추구하니까,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많은 목회자가 아주 비본질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은퇴하기 전 주일예배 성인 출석 교인이 2,000명 정도였다. 대형 교회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경험해 보니 교회는 커지면 커질수록 여러 문제가 일어난다. 제일 큰 문제점을 지적하라면 '세습'을 들 수 있다. 교회가 커지면 세습 안 할 수가 없다. 교인이 5,000명~1만 명으로 늘게 되면 목사는 절대적 위치에 앉게 된다. 담임목사 한마디에 교회가 굴러간다. 때론 누가 교회의 머리(주)인지 헷갈린다. 그런데 이런 절대적인 리더십(대형 교회 담임)이 물러날 경우 그 공백은 누가 채울 것인가. 방법이 없다. 혼란이 일어난다. 그래서 교회를 세습하는 것이다.

나는 대형 교회를 반대한다. 목사 리더십이 비성경적으로 강력해지면 치명적인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 목사가 100년을 살 건가, 200년을 살 건가. 가능하면 교회 사이즈를 안 키워야 한다. 교회를 안 키우고, 건강한 중·소 교회를 많이 세워야 한국교회가 건전하게 나아갈 수 있다.

정 목사는 이 시대 젊은 목회자들에게 '성품 개발'을 주문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교인 수가 1,000명 단위로 넘어갈 경우 실질적인 목회가 가능한가. 자료를 찾다 보니 "3,000명 이상은 힘들다"는 말도 있던데.

3,000명이라는 말은 어디서 들었는가.(웃음) 해 보니까, 1,000명까지는 목회다운 목회를 할 수 있겠더라. 그때는 내가 교구 목사들보다 교인들을 더 잘 알았다. 부목사는 3~5년 정도 있다 나가는데, 담임은 계속하니까.(웃음) 교인 형편뿐만 아니라 영적 문제를 파악해야 하는데, 1,000명이 넘어가니까 잘 안 되더라. 안 그래도 나는 사람을 기억하는 게 약한데… 저분이 교인인지 동네 주민인지 헷갈리더라. 내 경험상 제일 이상적인 교인 숫자는 400~700명이다.

향상교회로 분립·개척하기 전 잠실중앙교회 담임 당시 교인들과 논의를 통해 1,500명이 넘으면 분립하기로 했다. 이 숫자에 어떤 신학적인 의미는 없다. 공간적으로 도저히 교인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교회에서 '장'을 맡고 있는 교인들과 기도원에 들어가서, 교회 10년을 내다보고 미래상을 그리는 컨센서스(consensus)를 했다. 그때 우리는 건강한 중·소 교회를 지향하자고 마음을 모았다. 교회가 커지면 확장해서 짓지 말고, 분립하자고 한 것이다.

- 보통 분립 개척하면 부목사를 파송하는데, 본인이 직접 나왔다.

교회 장소를 찾다보니, 용인까지 왔다. 모교회로부터 이렇게 멀리 떨어진 지역에 와서 땅을 사고 예배 처소도 준비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빚을 져야 했다. 담임(목사)이 안 가면 누가 따라오겠나 싶었다. 그때 내가 거룩한 희생정신을 발휘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형편이 그러했다. 200명 정도 따라왔는데, 9년 만에 출석 교인 2,000명에 등록 교인 4,500명으로 늘었다.

- 교회가 이렇게 빨리 커질 줄 예상했나.

전혀 안 했다. 우리는 중·소 교회를 지향하기 위해 나왔으니까. 많아야 500~600명 생각했다. 사실 갑자기 교인이 불어난 건 나와 교인 때문이 아니라 언론과 관련이 있다. 기독교 언론은 물론이고, 주요 방송사와 일간지까지 우리 교회의 분립을 대서특필했다.

사람들이 몰려드니까 처음에는 당황했다. 안 되겠다 싶었다. 지역에 개척교회도 많고 해서, 용인에 사는 기존 세례 교인은 안 받는다고 계속 광고했다. 그런데도 찾아오더라. 일일이 면담을 했는데, "좋은 교회인 것 같아서 왔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일단 목장으로 보내고, 구역장이 추천하면 받아 줬다.

세례 받은 교인들이 등록하려면 보통 석 달 정도 걸렸는데, 귀찮으니까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예 등록은 안 하고, 십일조도 하고 감사 헌금을 내며 다니는 분도 있었다. 나는 그들을 자원봉사자들이라고 칭한다.(웃음)

- 세례도 아무한테나 주지 않았다고 들었다.

교회를 갱신·개혁하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게 세례다. 세례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을 가져야 한다. 예배당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건 다른 문제다. 세례 절차를 강화했다. 무조건 성경을 1독하게 하고, 12주 동안 내가 직접 교육했다. 중급, 고급반 과정은 부목사들에게 맡겼다. 교인이 분명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들어오면, 가만 놓아두어도 일취월장한다.

이런 절차 없이 세례를 남발하면,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몰라도 가면 갈수록 교인과 일반인은 구별되지 않는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타락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는 소위 거룩한 공동체다. 문자 그대로 '거룩'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부름을 받은 구별된 공동체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별됨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가장 무서운 타락이라고 생각한다.

- 생각지도 못한 교회 부흥을 경험했을 때, 원칙을 깨고 '좀 더 키워 볼까'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나.

사실 여기에 달관할 수 없었다. 부흥에 대한 유혹은 끊이지 않았다. 은연중 내 마음 바닥에 깔려 있는 걸 많이 느꼈다. 대접받고 싶고, 알아주길 바라는 게 인간의 본능이 아니겠는가. 그 누구라도 예외는 없을 것이다. 자신과의 싸움이 컸다. 또 다행이랄지 나에게 대형 교회를 세울 만한 능력도 없었다.

- 만 65세가 되던 2013년에 조기 은퇴했다. 교단법에 따르면 5년 더 할 수 있었다.

잠실중앙교회 부임 이후 첫 당회를 열었을 때, 나는 목사·장로의 정년을 65세로 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리고 원로목사, 원로장로, 공로목사 명칭도 쓰지 말자고 했다. 예수님이 피로 세운 교회라고 고백하면서 명예직을 얻는 게 마땅치 않다고 느꼈다. 하나님 앞에서 죄송한 일은 하지 말자고 했다.

나중에는 생각을 좀 더 정립했다. 원로목사가 된다는 건 다른 동역자들을 생각해 봤을 때 이는 공평치 않다고 생각했다. 하나님나라는 공평한 나라인데, 한 교회에서 20년 시무했다고 그 목사에게는 생활을 보장해 주고, 대우해 주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20년간 생활 보장을 받을 정도로 목회한 것만도 감지덕지 아닌가. 미자립 교회나 농어촌 교회, 선교사들은 자립한 교회의 목회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희생과 헌신을 하지 않았나. 그래서 원로목사가 되는 것을 사양했다.

한편 이런 말을 한다는 게 미안한데, 사실 나는 교회에서 재정적으로는 원로목사로서의 대우를 받고 있다. 일찍이 교회가 국민연금도 들어 줘서 매달 80만 원을 받고 있다. 여기다 생활비도 지원받고 있다. 원로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어서 다른 은퇴목사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 그럼에도 65세 은퇴는 이른 감이 있어 보인다.

나는 결코 조기 은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절한 나이라고 본다. 사람이 60세가 넘기 시작하면 생각이 고정되고, 열린 사고를 잘 못한다. 그게 사람의 한계다. 그리고 리더십도 아주 딱딱해진다. 그때부터 내리막길을 걷는다. 실제로 친구들이나 선배들을 보면,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목회를 잘하다가 65~70세 사이에 (좋은 평판을) 다 까먹어 버리더라. 지금도 65세 은퇴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 목사 임기제뿐만 아니라 장로 임기제(9년)도 실시하고, 성장이 아닌 분립, 개척을 계속해 왔다. 이런저런 이유로 반대하는 장로도 많았을 것 같은데.

반대하는 장로는 어딜 가나 있다.(웃음) 나는 그분들을 '목사 지킴이', '파수꾼'이라고 말한다. 목사가 엉뚱한 길로 못 나가도록 시비 거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생각도, 기도도 더 하게 된다. 그러나 그분들과 대적하거나 싸우면 안 된다.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설득이 된다. 어떨 때는 양해를 구하고 다수결로 결의하기도 한다.

- 목사님과 달리 초대형 목회자 중에는 미련을 못 버리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은퇴한 지 한참 됐는데도, 원로목사나 동사목사로 남아 설교 등을 하며 영향력을 계속 미친다.

개인적 욕심도 있겠지만, 후임자의 교회 안정적 정착을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지도 않을까 싶다. 하지만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은퇴'라고 볼 수 없다. 은퇴를 했으면 진짜로 은퇴를 해야지. 후임 목사를 사랑하고 돕고 싶다면 교회를 떠나는 것도 좋지 않나 싶다.

원로의 개입은 여러 폐단을 낳는다. 가령, 지금 우리 교단의 '원로장로' 제도가 그렇다. 원로 신분인데 당회에 참석할 수 있고, 발언권까지 허용된다. 그러다 보니 교회를 좌우지한다. 선배 장로가 뭐라고 하는데, 후배 장로가 거절하거나 반대할 수 없다. 목사들은 더 그렇지 않겠는가. 목사들이 은퇴한 뒤에도 계속 개입하면 교회에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 한편으로는 자기가 세우고 수십 년 목회해 온 교회를 미련 없이 떠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최근 1년간 향상교회에 출석한 게 10번도 안 된다. 대부분 다른 교회에 부름을 받거나 방문하여 예배했다. 은퇴 이후 약 3년간 강대상에 서지 않았다. 내 입맛에 길들여진 교인이 새로운 목사에게 안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3년간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이다.

- 몇몇 교회를 보면, 은퇴한 목사가 일부 교인 부탁을 받고 교회 문제에 개입한 경우도 있다.

나는 치명적인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은퇴한 목사가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향상교회는 아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모르겠다.(웃음)

교회에서 일찍 물러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교인을 변화시킨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사역 여정을 들여다보면, 철저히 사사로운 욕심은 배제한 듯하다. 목회하면서 절대로 양보하지 않은 가치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신학교에 다닐 때, 목사를 유혹하는 대표적인 것이 3가지가 있는데 바로 돈, 이성, 명예라고 배웠다. 당시 그 이야기를 듣고 돈과 이성에는 절대 휘둘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돈 문제에 깨끗하려고 노력하니 교인들이 굉장히 신뢰하더라. 돈 문제 앞에서는 처연하게 행동하려 노력했고, 그 결과 교인들로부터 다른 면들에서까지 매우 큰 신뢰를 받았다. 교인 중에는 "우리 목사님은 돈 안 좋아한다"고 말하는 분도 있더라. 하…세상에 돈 안 좋아하는 사람 있나.(웃음)

교회가 어려울 땐 담임목사 사례금은 동결해 달라는 부탁을 자주 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 부목사님을 청빙했는데, 우리가 책정한 사례금이 전에 시무하던 교회에서보다 크게 적어서 놀란 적도 있다. 대개 부목사의 사례금은 담임목사와 비교 책정하다 보니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언젠가 어느 부목사님 한 분이 다른 교회 담임으로 가면서 뼈 있는 말을 한마디하더라. "목사님이 성자가 되시면 우린 거지가 됩니다." 그 후로는 사양을 자제했다.

- 개척하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라고 한다. 교회 부흥은 안 되고, 생계는 이어 가야 하니 이중직을 하는 목사가 많다. 목회자 이중직 어떻게 생각하나.

이중직을 하는 목회자들에게 굉장히 미안한 이야기인데, 나는 몇 년 전만 해도 목사의 이중직 반대를 주장했다. 일을 병행할 거면 목사를 사임하라고 했다. 왜 그런 이야기를 했냐 하면, 목회는 결코 녹록한 사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심을 기울여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 목회는 다른 일 하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대 흐름을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이중직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 많더라. 갑자기 교회에 변수가 생겼다든가, 가족이 중병을 앓게 됐다든가, 이런 일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돈을 벌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분들은 교단에서 은급 제도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으면 한다.

목회자 이중직… 뭐라 말하기가 참 쉽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중직 목회자들에게 기도를 권하고 싶다. 목사를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목회를 중단하고 생계를 위해서 일에 전념할 것인지 기도 많이 하고 결정을 내리라 하고 싶다. 동기 목사 중 한 명은 자기 가족들을 온갖 고생 다 시키고 교인까지도 힘들게 했다. 이 친구에게 능력이 없는 게 아니다. 목사 아닌 다른 직업을 선택했으면 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한번 목사로 임직을 받으면 절대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는 관념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소명도 자가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소명감이라는 게 과연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자가 발전한 것인지 깊이 따져 봐야 한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목회의 열매가 없으면 은사도 없다고 봐야 한다. 이럴 때는 빨리 일반 생활 전선으로 뛰어드는 게 좋다. 죄를 짓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오히려 섬겨야 할 대상을 통해서 생계와 신분 유지에 도움을 받는 것이 죄짓는 일일 수 있다. 부르심이 어디에 있는지, 내게 주어진 은사가 뭔지 기도해 보는 게 필요하다.

-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목회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과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후임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느낀 게 한 가지 있다. 교인들이 목사님을 모실 때 능력도 보지만, 인격과 성품을 더 중하게 여긴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인격이 성숙돼야 한다는 이야기를 늘 하고 싶다.

인생 자체가 그렇지만, 목회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에 품성과 인격이 중요하다. 설교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목회를 전체적으로 봤을 때 설교보다 성숙한 인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젊은 목회자들이 성품과 인격 개발을 위해 기도했으면 한다. 이 점에 있어서 성령의 9가지 열매가 필요하다고 본다. 절제, 온유, 성실, 양선(친절), 자비, 오래 참음, 화평, 기쁨, 사랑을 표준으로 삼을 수 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참아야 할 일이 많다. 인내하고 포용해야 할 게 많다. 목회자의 인격이 성숙되면 내적인 화평을 느끼고, 다른 사람과의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성품 개발에 신경을 썼으면 한다. 사실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싶다.(웃음) 단지 원칙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오늘 인터뷰에서 좋은 말만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서 양심에 찔린다.

- 지나온 목회 여정을 돌아봤을 때, 아쉬움은 없는가.

목회를 나름대로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말 솔직하게 반성해 봤을 때, 하나님의 안목으로 본다고 했을 때 '열매가 얼마나 있었나' 하는 자책감이 든다. 단적으로 말하면 사람은 참 안 변하는 것 같다. 뭔가 달라졌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자기 본성대로 돌아가더라. 10~20년간 내 설교를 들은 사람도 근본 가치관은 변하지 않더라. 이런 경우를 보면 약간 허탈해지기도 한다. 교회 직분에 연연해하지 말라 했는데, 여전히 권사와 장로 되는 것에 목매는 교인도 있고, 가치관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정말 하나님, 성령과 함께한 목회였다면 사람이 변화돼야 하는데… 뭐 한두 사람이야 있겠지. 전체적으로 봤을 때, 교회 분위기나 사람들 생각을 보면 변함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사람을 참으로 거듭나게 하는 게 성령님인데, 나의 인간적인 지식과 노력으로 하다 보니 변함이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진다.


의왕기독교연합회 광복절연합예배 8.12 14시30 계원예대
누가복음7장11-17 울지말라 전승환목사 안양서부교회 180729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쌔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누가복음 7:11‭-‬17 KRV

https://bible.com/bible/88/luk.7.11-17.KRV


예수따르는무리

장례치르는무리


경주 변방교회 건축반대 500미터 문중 고발장 2km 선산 귀신 오다가 교회 십자가보고 달아난다 승소 건축


울지마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요한복음 20:15 KRV

https://bible.com/bible/88/jhn.20.15.KRV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 오년을 더하고

이사야 38:5 KRV

https://bible.com/bible/88/isa.38.5.KRV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시편 84:6 KRV

https://bible.com/bible/88/psa.84.6.KRV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4 KRV

https://bible.com/bible/88/rev.21.4.KRV


울고있는과부를보시고


불쌍히여기사 


가까이 가서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에스겔 48:35 KRV

https://bible.com/bible/88/ezk.48.35.KRV

거기까지 함께 하시다


멘자들이서다 죽음행렬서다


다하라 요네코 "산다는것은황홀하다"

철길투신 사지절단 선교사병문안동행 통역 다하라아끼도 성경 고후5.17 예수안에있으면새로운피조물이라 보라새것이되었도다 남은손가락세개를볼때마다감사하게되다 딸둘 세계순회간증


손대사

일어나라

그를어머니에게주시니 회복의주
초량교회, 한국기독교 역사 사적지 선정…이바구길 명소 입소문

한강 이남 설립된 최초의 교회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 2018.01.26 19:46

- 독립운동·신사참배 반대 등
- 순교한 주기철 목사 첫 시무지
- 6·25전쟁 땐 피란민 수용소로
- 교인들 합심해 구국기도운동도

-교회 내 역사관에 관련자료 전시
- 연간 2000여 명 방문 인기 

한강 이남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부산 동구 초량교회가 최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역사위원회가 지정하는 ‘한국기독교 역사 사적지’에 선정됐다. 

지난 23일 부산 동구 초량교회 역사관에서 김인준 행정목사가 견학 온 송도제일교회 중등부 교인들에게 초량교회 126년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부산 동구 초량교회는 지난 24일 오후 교회당에서 ‘한국기독교 역사 사적지’ 제3호 지정 감사예배를 열었다고 밝혔다. 한국기독교 역사 사적지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역사위원회가 지정하며 제1호로 서울 승동교회, 2호로 김제 금산교회가 선정됐다. 이날 행사는 초량교회 담임 김대훈 목사 사회로 1부 예배가 진행됐고, 2부는 총회 역사위원장 김정훈 목사 사회로 ‘한국기독교 역사 사적지’ 지정식으로 이어져 지정증서가 전달됐다. 3부는 총회 역사위원회 부위원장 함성익 목사 사회로 ‘현판 제막식’이 열렸다. 

현재 부지에 1922년 건립된 옛 초량교회 건물. 초량교회 제공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역사위원회는 2015년 9월 제100회 총회에서 상설위원회로 조직됐다. 역사위원회는 6·25 전쟁 때 77명이 순교한 염산교회의 옛 예배당을 복원하고, 주기철 목사의 일제강점기 의성경찰서 수난 기념사업을 벌이며 한국기독교 역사 사적지를 발굴·보존·연구·지정하는 일을 펼치고 있다. 

초량교회는 1892년 11월 7일 미국북장로교 선교부 소속 윌리엄 베어드(William M. Baird, 1862~1931) 선교사가 현 중구 코모도호텔 부근인 ‘영서현’에 사택을 건축하고 사랑방을 예배처소로 개방해 선교함으로써 설립됐다. 초량교회의 전신인 이곳 ‘영서현교회’는 한강 이남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라고 총회 역사위원회는 설명한다. 베어드 선교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마산 진주 김해 상주 안동 경주 대구 목포 전주 등지로 광범위한 순회 전도여행을 다녔다. 

영서현교회의 교인이 늘어나면서 1912년 영주동 봉래초등학교 앞에 있던 동사무소를 매입해 교회당으로 사용했다. 이때 명칭이 ‘영주동교회’다. ‘영주동교회’는 1922년 호주 선교부로부터 현 위치의 대지를 구입해 새 건물을 짓고 이전했다. 이후 ‘초량 3·1교회’로 불리다 최종적으로 ‘초량교회’로 개명됐다.

일제강점기 초량교회의 목사와 교인들은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등 항일 구국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순교한 주기철(1897~1944) 목사의 첫 시무지로 이름이 높다. 주기철 목사는 목사 안수를 받은 직후인 1926년 1월 10일부터 1931년 7월 5일까지 초량교회 제3대 위임목사를 역임했다. 1926년 신사참배 반대 안을 경남노회에 제출했고, 노회는 신사참배가 우상숭배라고 결론짓고 가결했다. 그는 마산 문창교회로 이임 후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연행돼 투옥됐고 고문받은 끝에 1944년 옥중 순교했다.

초량교회 인근에 있던 백산무역회사(백산상회)에서 활동한 애국지사 중에도 초량교회 신도가 다수 있었다. 백산상회는 백산 안희제 등이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1914년 세운 회사로 상해임시정부 및 광복군을 지원하는 군자금 모금에 큰 역할을 했다. 초량교회 윤현태, 윤현진 형제 집사의 활약은 아직도 회자된다. 윤현진 집사는 백산상회가 후원한 독립자금 30만 원을 상해 임시정부에 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임시정부 재무 차장이 돼 재정을 총괄하기도 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초량교회는 전국 교역자와 교인들이 몰려 피란민 수용소로 기능했다. 교회 유치원은 휴원했고 뜰과 마당은 온통 천막으로 덮였다. 교인은 합심해 피란민 구호에 전력을 기울였다. 1950년 여름 초량교회에서 전국의 목회자와 성도가 국난 극복을 위한 금식 구국기도 운동을 전개했고, 기도가 끝난 9월 15일 기적처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다. 휴전 후 고향으로 돌아간 목회자들은 “인천상륙작전 성공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은 하나님의 은혜”라 간증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