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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신사참배거부 기념비 세워


1924년 강경교회 김복희 교사·초등생 57명 거부
‘신앙심과 애국심 결합된 최초 거부 사건’ 평가
교단차원 기념비 제막 … 한우리교회 재정 후원

강경교회 김복희 성도와 교회학교 어린이 57명이 주도한 최초의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강경교회 앞마당에 세워졌다.
강경공립보통학교에서 1924년 10월 11일에 일어난 최초의 신사참배 거부 사건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한국 역사상 최초의 신사참배 거부 사건으로 본 교단 강경교회 성도였던 김복희 교사와 어린이 57명이 단체로 신사참배를 거부한 사건이다.
이번 신사참배거부 조형물 건립은 강경성결교회 신영춘 목사의 제안과 교단 창립 100주년을 앞둔 본 교단 총회 임원회의 결단, 한우리교회(백장흠 목사)의 재정적 후원 등이 결합되어 진행됐다. 4m 높이의 조형물은 윗면에서 보면 ‘익투스(그리스도인을 상징하는 초대교회 문향)’를, 전면 조각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김복희 교사와 학생들의 항거의 모습을, 옆면에는 기념비 건립경과보고, 뒷면에는 최초로 이 사건이 보도된 1924년 12월 ‘활천’의 보도 내용이 새겨져 있다.
이번 제막식에는 본 교단 이정익 총회장과 총회 임원 등 교단 지도부와 충남지방회 교역자와 평신도 지도자, 기념비 건립을 후원한 한우리교회 백장흠 목사와 성도, 강경교회 성도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예배, 기념강연, 제막식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날 예배에서 이정익 목사는 “교단 100주년을 앞두고 성결교회가 신사참배 거부의 첫 장을 열었다는 것은 무척 의미가 있는 일이며 교단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강경지역의 자랑스런 역사로 아로새길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갈 것”을 당부했다.
이어진 강연에서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교수는 “1924년 강경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신사참배 반대투쟁은 (기록을 볼 때) 최초의 신사참배 거부항쟁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거부항쟁의 의미를 평가하고 “이번 사건은 민족운동을 펼쳐온 백신영 전도사(강경성결교회)의 민족교육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미션계 학교가 아닌 곳에서 집단적으로 일어난 최초의 사건, 어린이들에 의해 발생된 한국의 유일한 신사참배 거부 사건으로 신앙적 동기와 애국적 동기가 함께 결합한 것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본 교단지로 한국교회 중요 잡지였던 활천 1924년 12월호 보도에 따르면 1924년 10월 11일에 강경공립보통학교에서 발생한 신사참배 거부 사건은 교회 성도인 김복희 교사와 주일학생 57명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강경신사제일에 다른 일반교사와 학생들은 다 경배하였으나 이들은 신사참배를 거부하였으며 학교와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충청남도청 학무당국자 등이 협의하고 학부형회의에서 이를 다뤘으나 교사와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아 결국 교사는 면직을, 학생 7명은 퇴학을 당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강경성결교회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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