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나를 완전히 무장해제하는 것” [중앙일보]

13일 백수(白壽·99세) 맞는 방지일 영등포교회 원로 목사

“닳아 없어질지언정 녹슬지는 않으리라.”

“믿음이 뭐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방지일 목사는 “믿음은 내 죄를 시인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인한 죄를 대신해 주님이 죽은 것이다”라고 답했다. [신인섭 기자]
지난달 25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서 방지일(99·영등포교회 원로) 목사를 만났다. 그는 한국 개신교계 최고령 목사다. 오는 13일은 방 목사의 아흔아홉 번째 생일. ‘100세 잔치’보다 더 의미가 크다는 ‘백수(白壽·100에서 1을 뺀 나이)’다. 그런데도 그는 “올해는 내년이라 그러고, 내년에는 작년이었다고 하자”며 어물쩍 넘어가자고 한다.

방 목사의 삶은 ‘한국 개신교 100년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1933년 평양숭실대를 나왔고, 장대현 교회(평양대부흥의 현장)에서 전도사로 일했다. 목사 안수를 받은 지는 72년째다. 명실공히 개신교계의 ‘최고 어른’으로 꼽힌다. 젊었을 적 방 목사의 집에서 성경공부를 했던 김삼환(명성교회 담임) 목사는 지금도 방 목사를 “나의 스승”이라고 부른다.

방 목사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직접 e-메일을 체크한다. “예전에는 시차도 있고, 국제전화 요금도 많이 나왔는데 이건 공짜나 다름없다”며 선교사나 해외 목회자들에게 하루 30통 이상의 e-메일을 보낸다. 혼자서 고속버스 타고, 비행기도 타며 쉴 틈 없이 지방 강연도 다닌다. 지금도 성경공부팀 두 곳을 지도하고 있다. 방 목사는 “녹스는 게 두려울 뿐, 닳아 없어지는 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그에게 ‘예수’를 물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뭔가.

“죄사함이다. 하나님 나라에는 죄가 없다. 그래서 죄를 안고선 그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니 죄로 얼룩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사함을 받는 것이다.”

이 말끝에 방 목사는 ‘무덤 일화’를 예로 들었다. 한국전쟁 때 어떤 사람이 너무도 정성스레 무덤을 돌보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다. “부인의 무덤이오? 아니면 자식의 무덤이오?” 엉뚱한 답이 돌아왔다. “이건 내 무덤이오.” 행인이 의아해서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나는 외아들인데 내 대신 전쟁터에 나가서 죽은 사람의 무덤이오. 그러니 내 무덤이오.” 방 목사는 “예수의 무덤, 예수의 죽음도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어떡해야 죄사함을 받을 수 있나.

“신앙은 투항이다. 내가 들고 있는 총과 칼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투항하는 거다.”

-‘내가 가진 총과 칼’이 뭔가.

“나의 의견, 나의 주관, 나의 관점이다. 그걸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투항한 뒤에도 무장을 한다. 내 안에 권총을 숨기고, 내 안에 칼을 숨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나의 주관으로 주를 믿는다. 투항은 그런 게 아니다. 투항은 자신을 몽땅 바치는 거다.”

-예수의 유언도 그랬다. “아버지 손에 내 영혼 바치나이다.”

“그게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 다 바칩니다’란 뜻이다. 내 주장, 내 의견이 없는 거다. 그럴 때 성령이 와서 나를 지배하는 거다. 목회자의 설교도 그래야 한다.”

-그런 설교라면.

“내가 책을 많이 보고, 내 창고에 책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걸로 설교를 하고 ‘잘했다’고 하면 맞나? 아니다. 그건 나의 말이고, 나의 강의다. 목회자가 강단에 설 때는 내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며 얻은 하나님 말을 하는 거다.”

-그래도 설교를 듣고서 “오늘 은혜를 받았다”고 하지 않나.

“나도 종종 그런 말을 듣는다. 듣기는 좋다. 그러나 은혜를 받고 안 받고는 나와 관계가 없다. 그건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받는 거다. 교회에서 사람들은 종종 ‘아멘!’하고 반응한다. ‘할렐루야’라고 외친다.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아멘’인가. 그렇게 말한다고 자신의 신앙이 더 깊은 건가. ‘아멘’은 그런 뜻이 아니다.”

-‘아멘’은 무슨 뜻인가.

“그건 ‘사인’이다. ‘아멘’은 마음으로 하는 사인이다. ‘그렇습니다. 나도 그래요’하고 사인하는 거다. 그래서 진실로 하는 말이 ‘아멘’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했다. 그게 ‘아멘’이란 뜻이다.“

-어떡해야 마음으로 사인을 하게 되나.

"회개를 통해서다. 회개가 뭔가. 자기가 죽는 거다. 완전히 투항하고, 무장도 벗고, 나는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젠 다 맡아주세요’ 하는 거다. 교회에서 하는 간증도 마찬가지다.”

-간증이라면.

“간증하면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내가 이걸 하고, 내가 저걸 했다고 한다. 그건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는 거다. 참다운 간증에선 나는 없고, 주님만 나타나는 거다.”

방 목사는 평양 숭실대에서 보냈던 대학 시절을 말했다. “그때 강의실 의자가 나사로 바닥에 박혀 있었지. 그 의자를 몇 개나 부쉈는지 몰라. 빈 강의실에 앉아 기도하면서 내 죄가 정말로 많다는 걸 알았거든. 의자를 잡고, 마구 흔들고, 통곡하면서 회개했지. 그래도 다음날 또 죄가 보여. 회개를 할수록 마음을 들여다보는 현미경 배율도 더 높아지는 법이거든.”

-그럼 언제까지 회개를 하는 건가.

“주님이 오실 때까지다. 사람들은 예수를 배반한 유다를 나쁜 놈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알아야 한다. 나도 내일의 유다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찾아야 한다.”

-죄를 찾으면 어찌 하나.

“완전히 무장해제시키면 된다. 성경에는 ‘너희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깨끗해진다’고 했다. 죄는 회개하는 즉시 깨끗해진다. 단, 진실한 마음이어야 한다.”

방지일 목사의 생애에 관한 기획전시 ‘방지일 목사 특별전’은 9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인천 갈산동 한국선교역사기념관에서 열린다. 

백성호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