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한 자는 범죄치 않음

요한일서 5:14-21


14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
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을 줄을 또한 아느니라 16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17모
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18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
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 하느니라 19또 아는 것
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20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
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21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1.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얻음


본문 14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다 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안 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구하는 것은 100% 다 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기를 힘을 써야 됩니다. 즉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3에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욕심으로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면 그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사람의 뜻대로 구한다고 다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찾습니까? 성경에서 찾습니다. 또 하나님의 섭리와 성령의 감동과 신앙양심으로 찾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을 구할 때에는 얼마든지 주십니다.


본문 15절에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구한 것은 다 이루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은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 것은 반드시 주실 것이므로 이미 받은 줄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2.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


본문 16-17절에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 길을 걸어가는 성도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입니다.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는 중생한 신자가 짓는 죄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또 중생한 영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겨 있기 때문에 (요 5:24), 다시는 사망이 없습니다(요 11:25-26). 그러므로 옛 사람을
따라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영적 사망에 이르지 않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


또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는데, 이 죄는 믿지 않는 불택자의 죄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죄 사함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롬 6:23). 사람에게는 원죄가 있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죄 하나를 범했을지라도 그 죄 값으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
다. 현세에서도 영이 죽은 자이고, 내세에서는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자 중에서도 언제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안 믿어도 다음에 예수님을 믿을 사람 같으면 택한 백성이며, 그때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입니다. 택한 백성의 죄는 예수님께서 그 죄 값을 물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택자의 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사함 받을 수가 없습니다. 즉 사함 받지 못하는 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또한 사함 받지 못하는 죄는 성령 훼방죄와 짐짓 짓는 죄, 그리고 불택자의 죄로 죽을 때까지 예수 믿지 않는 죄입니다. 이러한 죄는 사함 받지 못합니다. 성령 훼방 죄는 성령의 역사인 줄을 중심으로 알면서도 죽을 때까지 거역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면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데, 죽을 때까지 성령을 반대했기 때문에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또 짐짓 짓는 죄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0:26-27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라고 하였습니다. 짐짓 짓는 죄도 성령의 역사인 줄 알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줄 알면서 고의적으로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반항하는 죄입니다. 성령 훼방 죄나 사망에 이르는 죄나 짐짓 짓는 죄는 다 같은 것입니다.


성도가 짓는 죄에 대해서


하여간 죽을 때까지 믿지 않으면 사함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믿으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아무리 성령의 역사를 반대 하다가도 회개하고 믿으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즉 누구든지 회개하고 믿는 사람은 전부 다 죄 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중생한 성도가 짓는 죄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짓는 죄는 이미 예수님이 죄 값을 다 지불했기 때문에 지옥 가는 죄는 아닙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이 짓는 죄도 죄는 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 값을 다 물어 주신 죄이기 때문에 지옥에는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의 값을 다 물어 주셨지만, 죄이기는 하므로 하나님께서 회개 시키게 하시려고 물질문제, 자녀문제, 여러 육신의 문제 등으로 징계 하십니다. 그런데 징계해도 회개하지 않으면 쫄딱 망하게 만드십니다. 마지막에는 죽는데 이르게 하십니다. 그래도 택한 백성이므로 불 가운데서 벌거벗고 나온 것과 같은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일이 없도록 삼가 조심하며, 생명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3.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범죄치 않음


본문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 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중생한 자를 가리킵니다. 중생한 자라는 의미는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난 자, 즉 거
듭 난 자입니다. 거듭 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죽었던 영혼이 살아 난 것입니다. 또한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라고 하였는데, 중생한 영은 범죄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라는 뜻은 성령께서 성도를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4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신 자 곧 성
령께서 지키시기 때문에 악한 자가 감히 만지지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은 범죄치 않는다는 것이 오늘 본문 말씀에 확실히 나타나 있습니다. 범죄치 않는다고 했으면 범죄치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되겠는데, 간혹 범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생한 영혼이 범죄치 않는다”라는 것을 “습관적이고 상습적으로 범죄하지 않
는다. 그러나 혹시 실수로 범죄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이처럼 범죄치 않는다고 확실히 나와 있는데 이것을바꾸어 해석한 것은 진리에 바로 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이 범죄 하는 것은 뭐가 범죄 하는 것일까요? 믿는 사람은 중생한 영과 육신의 부패성이 있는데 육신의 부패성이 범죄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범죄하는 것은 육신의 부패성, 곧 옛사람이 범죄하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은 새사람이
기 때문에 범죄하지 않습니다. 중생한 영은 하나님만 좋아하고 하나님 말씀만 좋아합니다. 또한 중생한 영은 죄를 절대 반대 합니다.
따라서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자기 속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새 사람은 선을 행하려 하고, 옛 사람은 죄를 지으려 하여 서로 싸우다가 옛사람대로 살면 죄를 짓고 새 사람대로 살면 의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 속에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범죄 하는 것은 옛 사람이고 이것을 따라가면 범죄 하는 길입니다. 의를 행하는 것은 새 사람이고 중생한 영혼을 따라가면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확실한 말씀입니까?


또한 중생한 영혼은 악한 마귀가 만지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 한 성구만 믿어도 아주 참 좋습니다.
전에 명륜교회에 강희숙 권찰이라고 있었는데 삼선교에 살았습니다. 나이가 한 삼사십쯤 되었는데 혼자서 새벽예배에 나오는 젊은 여자였습니다. 삼선동에서 명륜동으로 오려면 동소문고개를 넘어야 됩니다. 그런데 혜화동 로타리쯤 오다보니 어떤 남자 한 명이 따라오더랍니다. 그래서 빨리 걸었더니 또 빨리 따라오더랍니다. 거의 다 따라 잡힐 만큼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난 자 마다 범죄 치 아니하는 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 도 못하느니라” 하고 이 성경말씀을 갔다 댔다고 합니다. “악한 자가 감히 만지지도 못하는 데 어딜 따라오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남자가 ‘이 여자는 예수쟁이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대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 남자는 예수 골수분자(骨髓分子)를 ‘괜히 붙잡았다 큰일 나겠다’고 생각하고 달아난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잡힙니다. 그러니까 성경말씀으로 마귀를 이겨야 합니다. 이 한 구절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생활


본문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고, 온 세상은 마귀에게 속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올라갑니다. 세상은 마귀에게 속했기 때문에 내려갑니다. 성도는 올라가고 세상은 내려가니까 서로 마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난과 핍박이 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그래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따라서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온 세상과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다 마귀에게 속한 줄 알아야합니다. 불신자속에 역사하는 공중에 권세 잡은 자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2:2에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불순종의 아들들, 즉 말하자면 불신자 안에서 역사하는 영은 공중 권세 잡은 마귀입니다.


또한 예수 믿는 사람도 불순종 하게 되면 마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인데 반해 불순종 속에는 마귀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지 악한 자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악한 자, 마귀에게 속한 불신자를 따라가면 안 됩니다. 불신자는 악한 자에게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
은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야지 불신자가 하자는 대로 따라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추석을 지키려고 무덤에 가서 절하거나 제사 드리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성도는 제사 안 지내고, 차례도 안 지냅니다. 세상 사람들은 차례를 지낼 때 조상이 와서 먹는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귀신 섬기는 것이고 마귀 섬기는 것입니
다. 무덤에 가서 절하는 것도 마귀에게 하는 것입니다. 조상은 벌써 세상 떠나서 천당을 가거나 지옥을 갔지, 거기에 있을 리가 없습니다.
육신은 곧 장막 집이라 했는데, 죽은 사람을 묻어 놓고 그 앞에 절하고, 입었던 의복 앞에 절하는 것은 모두 우상을 섬기는 행위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에 절을 하거나 제사 음식 먹는 것 모두 안 됩니다. 온 세상이 마귀에게 속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요새 예수 믿는 사람들도 무덤에 가서 절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귀 섬기는 것인지 모르고 하나님께 죄 짓는 것인지 모르고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묘지가 일산에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장례 지내러 갔었는데, 열두 명 정도 되는 여자들이 무덤 곁에 서서 찬송을 한참동안 불렀습니다. 인도 하는 사람은 아마도 전도부인 같았습니다.
한참 인도 하더니 그 다음에는 “절해라, 절해라” 하니까 전부다 넙적 엎드려서 절을 했습니다. 찬송을 부르지 말든지 절을 하지 말든지 둘 가운데 하나를 해야 될 것 아닙니까? 마귀 섬기려면 뭐하려고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모르고 죄를 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르고 짓는 죄도 죄입니다. 양잿물을 모르고 먹어도 죽습니다. 모르고 지어도 죄이고, 죄 값은 반드시 사망입니다. 모른다고 해서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모르는 것은 자기가 배우지 못해서 모르는 것이고, 또 성경을 보지 않아서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죄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말씀을 제대로 알아서 죄를 짓지 않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영적 지각 있는 생활


본문 20절에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에게 영적 지각을 주었습니다. 참된 자는 하나님이신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또한 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참 하나님을 알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 안에 있게 됨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고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우상을 멀리하는 생활


본문 21절에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우상 섬기는 것이 큰 죄이므로 우상에서 멀리 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 하라”는 것은 자신이 우상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더 귀히 여기는 것이 우상인데 자기가 우상이 되면 안 됩니다. 또한 자기 남편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남편이 우상이고, 아내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

하면 아내가 우상이고,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자녀가 우상이고,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돈이 우상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우상이 되지 않도록 항상 우상에서 멀리 떠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에스겔 14:2-4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그런즉 너는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
에 무릇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많은 대로 응답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자기 마음과 자기 생각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을 따라가지 않고 항상 하나님 말
씀을 따라가는 생활을 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큰 은혜와 복을 받는 방법


겸손할 것


본문 6절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
느니라”고 했습니다.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
다. 의지할 것이 없어서 하나님 앞에 굴복해야 합니다. 싸우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싸우고 다투지 말고 그 나라와 의만 구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순복할 것


본문 7-8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
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
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라고 하셨는데, 하나님 뜻이면 무조건 순복해야 합
니다. 성경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어디든지 하나님이 가라 하시는
데에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지 말라 하시면 죽어도 굶어도 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 뜻이면 무
조건 순복하는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할 것


마귀를 대적하라고 했는데, 마귀를 대적하는 것은 마귀 일을 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 시험에 들지 않고, 마귀의 충동에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의 인도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는 대적해야 이
기지 피하면 더 따라옵니다.


심을철 목사님이, 마귀는 개와 같아서 도망가면 더 따라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엎드리면, 달려들던 개가 도망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돌을 집어 들려고 엎드리는 것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돌로 자기를 칠까봐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를 피하면 계속
따라와 결국 물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찬가지로 마귀를 이기려면 피하지 말고 대적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귀의 일을 많이 해주는데, 거짓이나 교만으로 마귀의 일을
합니다. 마귀의 특징은 거짓입니다. 그런 마귀 일을 해주지 말고, 대적
하여 ‘사탄아 물러가라’하면서 이겨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마귀가 들어
가서 예수님께 십자가를 멀리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
만 생각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마귀에게 속아 마귀의 일을 해주면 안 됩니다.


김현봉 목사님이 “마귀 일 하루 세 번만 해도 괜찮겠다”고 하셨는
데, 불안한 마음이나 걱정하는 것, 분을 품는 마음이나, 혈기부리는 마
음, 말다툼하는 것이나 언쟁 등이 다 마귀의 일입니다. 근심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귀가 와서 ‘근심해라. 근심해라’합니다. 마귀와 단
짝이 되어서 근심하고 걱정하면 근심걱정에 빠집니다. 근심할 일이 생
길 때에는 주께 맡기고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또 근심이 들
어옵니다. 그러면 또 맡겨야 합니다. 그렇게 맡기고 나가면 더 이상
근심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어떻게 해 보려고 걱정을
하면 마귀에게 걸려든 것입니다. 근심을 대적해야 합니다. 근심걱정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다 한가지인데, 결국 ‘죽을까봐’입니다. 그러니
까 생명 내놓고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라고 하면서 나
가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
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
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빌
1:20)”라고 했습니다. 이생에서의 하루가 짧아지면 내생의 하루가 길어지는 것인데, 자녀들의 생명도 자신의 생명도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뱀이 하와를 속일 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
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
시더냐(창 3:1)”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참으로’라고 한 말이 틀린 것
입니다. 이 때에 하와가 사탄이 들어온 것을 알고 ‘사탄아 물러가라’
했다면 마귀를 이겼을 뻔 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온 것도 모르고 마
귀와 대화를 하는 중에, 결국 속고 말았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
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
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4-5)”고 했습니다. 선의 반대는 악인데, 하나님은 ‘절대 선’이시기에
하나님의 뜻에 맞으면 선이고,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악이라고
판단하십니다. 뱀은 ‘너도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맞는 것
은 선, 자기에게 맞지 않는 것은 악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환영하는 것은 선, 자기를 반대하는 것은 악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
께 맞는 것은 선이고 하나님께 맞지 않는 것은 악인데, 자기가 기준이
되는 것을 보니 이것이 하나님과 같이 된 것입니다. 그 정도 되면 말 다한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마귀가 역사하여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하면, “사탄아 물러가라. 십자가가 필요하다”라고 하고,
교만하라고 충동할 때에 “사탄아 물러가라. 난 겸손해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에,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
라(마 4:10)”고 답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가지 시험을 다 이기셨
습니다. 절하는 것은 신앙을 양보하는 것인데 예수님은 절하지 않으시
고 다 이기셨습니다. 항상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데(벧전 5:8), 그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것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기도
를 많이 해야 합니다. 하루 2시간 이상 기도하고, 성경을 하루 10장
이상 읽으라고 신학생들에게 시키는데, 직장인들도 아무리 바빠도 성
경을 하루 3장 이상은 읽어야 합니다. 밥은 세끼 먹으면서 성경은 왜
하루 3장 못 읽습니까? 성경을 하루 3장 안 읽는 사람은 밥 세끼도
먹지 마십시오. 엎드리는 시간, 사모하는 시간, 은밀한 시간, 바위 틈
낭떠러지에서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점점 가까워져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자기를 통해 나타나게 해야 합니다. 세상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
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약 4:8-9)”라고 했습니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에
서 ‘손’은 행동을 가르칩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했는데 손을 깨끗이 하라는 것은 행동을 깨끗이 하라는 것입
니다. 또한 ‘두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
음인 두 마음인데, 세상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사랑하면 안 됩니다. 세상이 우리를 따라와야지,
우리가 세상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면, 세
상 것은 뒤로 따라옵니다. 세상 것은 뒤돌아서서 잡을 것이 아닙니다.
돌아서서 세상 것을 잡으려고 하면, 세상 것이 달아납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따라가면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에게 이루어집니다. 세상이 나를 보고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따라오게 됩니다.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다 좋아합니다. 그런데 돌아서서 세상을 잡으려고 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지기 때문에, 세상이 나로부터 달아나게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세상은 손을 뒤로 내밀
어 세상을 잡으면 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순복하면 이렇게 세상
것이 다 따라 오고, 우리는 “재미 좋습니다”라고 할 수 있게 되는 것
입니다. 마귀는 날마다 우리에게 와서 마귀 일을 하도록 유혹하면서,
‘네가 제일이다’라며 거짓말합니다. 거기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하나
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믿는 일을 바로 하고 주 앞에서 낮출 것


본문 9절에,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고 했습니다. 세상 것을 가지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애통할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세상과 짝하면
서 믿는 일 제대로 안 하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고, 마귀를 대적하
지 않고 세상 것으로 웃는 사람들은 얼마 안 가서 애통과 비참한 일
이 오는데, 이것을 알고 믿는 일을 잘 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우리는 믿는 일에 부요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는 일에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오락이나 운동구경하는 것에 집중하면 안
됩니다. 세상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잘 쓰면서 하나님을 위해서는
쓰지 않습니다. 믿는 일 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고 애통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6:24-26절에,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
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고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믿
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안하고 세상과 짝하고 나가며 하나님을
본 남편으로 삼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세상 나라를 의지하
고 살았습니다. 호세아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가는 이스라엘
을 세상과 짝하지 못하게 가시로 막았습니다. 그래도 안 되니까 개유
(開諭)하여 들로 내몰아 연단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것은 굉장해 보이나 막상 이루고 나면 고난이 더 많습니다. 무언가 이루고 나서 이제 되었다고 생각했다가 더 죽을 고생이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문 10절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
라”고 했습니다.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내 것은 다 주의 것입니다”라
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주의 것이 다 내 것이 됩니다. 우리의
것을 다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으면, 하나님의 것이 다 내 것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