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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헤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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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 사명 하나 붙들고 수원시 영통구에서 목회를 시작한 송태섭 목사가 교우들에게 늘 강조한 것은 “진실하라”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철저한 말씀중심의 초대교회를 지향해 온 그는 교회 내적 성숙함을 바탕으로 예장 고려개혁 총회와 한국교회 연합운동에 성실한 모범을 보이고 있다.

교단의 설립 멤버이면서 부총회장과 총회장을 역임한 송태섭 목사가 교단 총무로 10년 이상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은 한국교회연합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위해서다.

"교단 규모가 작아서 본의 아니게 총무 일을 10년 넘게 맡고 있는데, 제가 총회장 재임시절 후배들을 위해 한기총에 가입한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올해로 설립 23주년이 된 예장 고려개혁은 예장 고신 총회에서 갈라져 나왔고, 보수 중에서도 상보수로 통한다. 오랫동안 연합 사업에 동참을 하지 않았었는데, 후배들을 위해서는 혼자 독불장군으로 있을 수는 없다는 송 목사의 생각이 교단 내에 공감대를 형성시킨 것이다.

그가 2년의 총회장 임기를 마치고 나니 후임 총회장이 한국교회 연합운동에 교단 대표로 나서주기를 요청하면서 총무를 맡아달라고 한 것. 그것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기총 총무협의회 회장과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총무를 역임하면서 연합사업의 중심에서 섬겨온 바 있는 송태섭 목사는 경기경찰청 경목위원과, 수원 남부경찰서 경목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수원시기독교총연합회 공동회장과 한기총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안정과 연합운동이 바르게 세워지는 일에 일익을 감당하면서 여호수아 같은 후계자를 세우는 것이 현장 목회 4년을 남겨두고 있는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는 송태섭 목사의 35년 목회 이야기를 들어봤다.

초대교회 같은 교회 지향

사업 실패나, 불치병 같은 극적인 사건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송태섭 목사는 잘나가던 사업을 돌연 정리하고 목회의 길로 들어선다. 예장 고신 측 교회였던 서울 만리동교회에서 철저한 보수신앙을 바르게 배우며 집사로 섬기던 그는 어느 날 목회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폭풍처럼 몰려와 거부할 수 없게 됐다. 계약신학교에 들어가 신학공부를 시작했고, 그곳에서 평생 스승인 이병규 목사를 만나게 된다.

"제가 그 어르신을 만난 것은 큰 복입니다. 목사로서 본받아야할 게 너무 많습니다. 신앙의 정조, 진실함, 깊이 있는 성경연구 등... 헤아릴 수 없죠. 지금도 매주일 산 기도를 가시고, 두 달에 한 번은 교단 내 전 교역자가 산 기도를 하고 있어요. 계신 총회는 일당백입니다. 한 사람이 백의 몫을 감당할 정도로 신앙으로 잘 무장 돼있어요."

스승 이병규 목사는 오로지 예수님 중심의 목회였고, 삶이었다고 말하는 송태섭 목사는 자신의 목회가 그 어른을 닮아가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었고, 지금도 진행형임을 고백한다.

송 목사 역시 오랫동안 산기도로 영적 무장을 해왔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황무지 같은 수원 영통지구에 발을 들여놓을 때만해도 목회가 뭔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전혀 몰랐고, 가난한 지역에서 서민들과 함께 살아보겠다는 마음이 전부였다. 산 기도는 그가 목회의 힘을 얻는 원천이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길이었다. 특히 개척 초기 뒷산에 굴을 파고 기도에 열중할 때는 간첩으로 오해받아 수원 정보과 조사도 받았다.

1977년 10월 2일 첫 예배를 드리고 다음해에 교회 부지를 매입하여 예배당을 건축했다. 사업으로 모은 재산을 교회에 바쳤기 때문에 물질적 어려움은 크지 않았으나, 문제는 그 부지에 주민들이 수호신처럼 여긴 당산나무가 있었다는 것이다. 수원시청으로부터 허가를 받고 나무를 베어냈지만,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혔고 지역사회 정착에 큰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영적싸움 또한 만만치 않았으나, 그럴수록 더욱 강해지는 것이 신앙의 힘이었다. 처음에는 이곳에 흙벽돌 20평 예배공간을, 다음에는 50평, 그리고 대지 300평 건평 350평의 현재 교회가 세워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역의 어려운 이웃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노력은 처음 출발부터 시작됐다. 리어카와 자전거, 광주리 등을 구입하여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과일, 배추, 생선 등 각종 물품을 팔아 생업에 종사하도록 도왔다. 80년대 초에는 주택 7채를 건축해 어려운 주민들이 생활할 수 있는 주거환경을 조성해 주기도 했다. 당시 교회의 도움으로 생활고를 달래던 사람들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대부분 자녀들을 성공적으로 키우고, 안정적인 생활을 할 뿐 아니라 그들이 현재 교회의 기둥이 되어 어려운 이웃을 섬기는데 앞장서고 있다.

지금도 경원교회는 교회주변에 주택 4채를 지어 어려운 성도들이 생활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연말이면 가난한 지역주민들에게 쌀을 나눠주고, 외국인 학생 장학금 지원 등 성숙한 나눔의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선교원으로 시작된 어린이집은 25년 역사를 자랑할 정도로 주민들을 가까이서 섬겨왔다.

또한 경찰 선교를 비롯하여 농촌교회 지원, 신학교와 월드비전선교회, 수원기독교호스피스 등 단체를 후원하며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2007년에는 캐나다에 에벤에셀교회를 개척해 교역자를 파송한 경원교회는 2010년도 필리핀에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해외선교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캐나다는 송태섭 목사가 직접 선교사로 활동하던 곳이라 각별하다. 자녀들 중 자신의 뒤를 이어 목회자가 나오기를 은근히 기대했지만, 꿈으로 끝나면서 송 목사는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는 두 형제들에게 선교사를 도와 교회다운 교회, 초대교회같이 이 시대 본이 되는 교회를 이루어 보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해외선교의 비전과 열정을 심어주고, 실천하기 위해 해마다 단기선교를 실시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12차례 진행되고 있다.

차별화된 믿음 차별화 된 삶

경원교회는 지금도 주일에 물건을 사거나 파는 것을 금하고 있으며, 오락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온전히 주일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당연한 일이면서도 현실적으로 찾아보기 쉽지 않은 모습이며, 경원교회가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주일 저녁예배를 오후 2시에 드리기 시작한 것은 선두주자에 가깝다. 모교회에서 배운 데로 자신의 목회에 적용했고, 초기 교우들은 도시락을 갖고 와서 서로 나눠먹으며 초대교회처럼 친교를 나누고 온전히 주일을 지키게 했다. 이로 인해 처음에는 이단이라는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었는데, 우리가 잘 아시다시피 지금은 일반화되어 있는 일이다.

한 때는 개발지역으로의 교회 이전도 생각해 보았으나, 하나님이 정해준 자리에서 작더라도 바르게 하자는 생각이 더 강했던 탓에 35년을 수원시 영통구를 떠난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이 지역이 개발지역이 되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더욱이 교우들 상당부분이 20년을 훌쩍 넘긴 뿌리 내려진 신앙인들이라 교회는 더욱 견고해진 상태다.

현재 동 교회는 장로가 다섯 명인데 이들 중 3명이 올해 은퇴를 하고 그 뒤를 이어 3명의 장로가 새롭게 세워질 예정이다. 은퇴하는 장로 3명은 올해 65세로 아직 법적 은퇴시기는 아니지만 후배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기위해서다.

그러면서 아주대학과 교회주변 대학에서 청년들의 발길이 이어져 젊은이들의 열정이 가득한 교회다.

"저희 교회는 제2의 논산훈련소입니다. 대학생들이 영적 훈련을 잘 받고 학교를 졸업하면서 해외로 나가는 학생들이 있는가하면, 대학원 진학이나 직장 따라 전국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헤어지는 것은 섭섭하고 당장 교회적인 도움은 없다해도, 신앙훈련을 잘 시켜 내보내는 것은 보람이 큰일 입니다."

송태섭 목사는 그들이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믿음과 차별화된 경건한 삶으로 전국 각지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그것이 한국 복음화에 기여하는 길이 아니겠냐고 말한다. 실제로 경원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다가 교회를 개척한 제자들이 10여 명에 이른다. 비록 적은 액수지만 나름대로 생활비 지원 등을 통해 교회의 자립을 돕기도 했다.

이런 점이 경원교회가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내 교회만을 생각지 않고 한국교회 전체를 아우르고, 바른 믿음과 바른 삶을 추구하며, 무엇보다 진실 하라는 담임 송태섭 목사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 일은 송 목사 자신이 먼저 진실한 삶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송 목사는 시간약속부터 철저하다. 부득이한 경우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철두철미한 약속이행이 교우들의 신뢰를 얻는 첫걸음이라는 것. "신뢰가 무너지면 권위가 무너집니다. 지도력은 신뢰가 바탕이 돼야합니다."

송 목사는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능력과 함께 사람사이의 신뢰임을 언급하면서, 35년간 장기 목회를 할 수 있었던 것도 하루하루 진실하게 살아가기 위한 노력인 것 같다고 말한다. 특히 후배들에게 목회자는 장거리선수라면서, 진실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시간약속 잘 지키기, 거짓말 안하기라고 덧붙였다.

대형 교단 소속도, 대교회도 아니지만, 경원교회가 말씀에 뿌리를 내린 건강한 교회로 세워진 비결일 것이다. 더욱이 코흘리개 주일학교 어린이가 자라서 지금은 장년이 되고 집사와 권사, 장로로 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그들의 자녀들이 다시 이곳에서 반듯하게 자라나고 있다. 이 나라의 대들보가 될 청소년들이 꿈을 키우고, 세계를 향한 비전을 품고 있는 청년들이 장년층 대비 높은 출석률을 보이며, 젊은 패기와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나이 마흔을 넘긴 집사들한테도 송태섭 목사는 자연스럽게 반말이 튀어나오곤 하는데, 이는 개구쟁이 시절부터 성장과정을 지켜 봐와서 부모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개척시절 주례를 섰던 신부의 딸 결혼 주례까지 서게 돼 어머니와 딸을 주례서는 기록도 세우게 되었다.

건강한 교회가 많은 때, 한국교회의 연합운동도 바르게 세워질 수 있고, 한국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