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기독교 - 수원YMCA

1968년 3월 21일 창립한 수원 YMCA는 수원종로교회에서 뿌린 내린 삼일학교 교장 장기홍 목사와 돌집교회로 불리는 수원장로교회 박봉양 목사가 중심이 되어 수원에 민간사회운동 단체를 결성하기로 결의하면서 출발됐다. 1967년 초순경 수원장로교회에서 예배드린 것을 기화로 장기홍 목사가 이사장으로, 박봉양 목사가 총무로 선임되어 수원 YMCA가 조직된 것. 결국 수원 YMCA의 태동은 감리교와 장로교가 화합하여 만든 사회선교기관의 합성판이라고 할 만하다.

“수원 YMCA는 젊은이들이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함께 배우고 훈련하며 역사적 책임 의식을 계발하고, 사랑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 일하며, 민중의 복지향상과 새 문화 창조에 이바지함으로써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려고 한다는 ‘한국 YMCA 목적문’에 따라서 작게는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고 나아가서 더불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노력하고 있다.” 황용원 사무총장의 말이다.
 한국근대사에서 ‘젊은이’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구조를 갖춘 조직이 YMCA다. 앞서, YMCA의 정신적 근원을 보면 7세기 영국의 청교도주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근대민주주의 근원으로 작용했던 청교도 정신은 독일의 경건주의에 영향을 미치고 근대 세계선교의 불을 당겼다. 다양성 속의 일치를 추구한 초대교회의 사도 의식을 회복하려는 에큐메니즘에도 강력한 영향을 끼쳐 청교도정신과 경건주의의 복음적 소양이 YMCA 출발의 근원이 됐다.
 이것은 1884년 6월6일 런던의 조지 윌리엄스에 의해 YMCA가 탄생하기 전인 1562년, 네델란드에서 예수의 명령과 약속을 지키기 위한 청년들의 ‘성서읽기 운동’ 과 1628년, 파리의 ‘성서공부모임’ 과 1677년, ‘전심전력으로 그리스도에게 매달리는 모임’ 등이 YMCA의 전초운동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한국에 건너온 YMCA는 1903년 10월28일 조선말기 서울 유니온회관에서 창립됐다. 질레트 헐버트 등 37명의 동·서양 인사와 한국인 인사들이 모여 ‘황성기독교청년회’를 창설, 여병현 등 이사 13명의 한국인들이 YMCA 세계기구에 간사 파송을 요청해 1901년 9월 질레트가 한국 최초의 YMCA 간사로 선임됐다. 그 후 한국 YMCA는 인사동에 회관을 마련하고 배재학당에 학생 YMCA를 창설하게 된 것.
초기 기독교신앙단체로 출발한 YMCA는 먼저 실업 체육교육을 실시했다. 1906년, 이상재가 교육위원장으로 1910년, 이승만이 학생부 간사로 일하는 등 민족지식인들과 교회지도자들이 참여, 우리나라에 최초로 농구, 오케스트라 합창단, 야구단이 차례대로 생겨났다.
 그 후 한국에 정착한 YMCA는 일제치하의 3·1만세운동을 비롯해 군부독재 체제의 광주학생운동, 6·10만세운동 등 대표적인 사건들에 적극 참여하여 민간사회운동을 전개했을 뿐 아니라 시대의 부응에 맞게 시민사회개발운동으로 대중문화운동을 주도했다.
 80년대 이 후 YMCA는 여성지도력개발, 지역사회개발 등의 활발한 활동을 벌이면서 대중운동과는 또 다른 성격의 사회복지, 농촌계몽, 대중운동, 민주화운동, 시민운동 등으로 발전하면서 한국사회에 큰 동력을 제공했다. 그리고 90년대 들어서는 지역별로 사회복지시설을 갖추고 시청자연대운동, 여성지도력개발, 공명선거 감시, 저질방송을 막기 위한 시청률 경쟁 그만두기운동, 생명문화운동, 어린이 농촌학교, 청년·학생통일문화 한마당, 의정감시운동 등 수많은 시민운동을 이끌어왔다.
 이렇게 기독교사회운동단체로서 출발한 YMCA는 유신정권 시절인 1968년, 민간사회운동단체의 불모지인 수원에 삼일학교 교장 장기홍 목사와 돌집교회 박봉양 목사가 주축이 되어 탄생했다. 그 후 수원 YMCA는 다양한 사회의 변화에 따른 시민의식이 건전한 방향으로 진척될 수 있도록 시민의 자율적 역량을 신장시키고, 민주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의 양식을 정착시키는 등 시민문화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했다.
 특히 1991년, 황 총장이 취임한 이후 미래의 주역이 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물려줄 자연유산을 지키기 위해 경기도에서는 처음으로 ‘환경의 날’, ‘통일한마당’, ‘지구의 날’, ‘어린이 날’을 순차로 제정, 매년 행사를 개최했다. 또한 시민중계실의 법률상담 및 소비자활동, 공선협 및 유권자운동, 곤충탐사단, 상설재활용매장, 녹색가게, 벼룩시장, 청소년 소비자단, 민주시민의식 향상을 위한 시민정치교육,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학당, 어린이날 기념 초록 동요제,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수원시민통일한마당 행사, 소비자대학, 고교 YMCA 조직 및 청소년활동 등 수많은 행사를 펼쳐왔다.
 이에 대해 이상명 간사는 “수원 YMCA는 수원을 다양한 꿈을 가진 도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따라서 꿈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과 열린 학교를 통하여 그 꿈이 서로 네트워크 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YMCA가 민주적인 지도력을 통하여 시민들이 꿈과 비전(vision)을 가질 때야 비로소 지역사회가 건강하고 활기차게 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YMCA는 여타 사회조직과 달리 결정기구와 집행기구가 분리되어 있다. 조직의 독선을 막기 위해 이사회와 실무진이 분리되어 협의와 토론을 통한 결정과 집행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조직의 분쟁을 최소화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가장 민주적이고 균형 잡인 방법인 것으로 해석됐다.
 무엇보다 “작년까지 이사장직을 했던 신현태 전 국회의원은 한 번도 수원 YMCA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YMCA가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정치 활동이 YMCA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워했다”는 황 총장의 말에서 우리나라에서 한 세기의 허물을 벗은 YMCA의 단단한 조직을 읽을 수 있었다.
 황 총장은 “수원 YMCA는 지역사회의 시민운동을 통하여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산파와 교량의 역할’을 할 뿐 결코 시민들의 주체나 시대의 주역이 될 순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렇게 한국 YMCA와 맥을 같이한 수원 YMCA가 사회교육, 청소년문화운동, 교육민주화운동, 공정선거감시운동 등 민주화 운동을 거쳐 오늘날 환경운동, 소비자보호운동, 지역공동체운동에 힘쓰고 있는 중심에는 분명 ‘사랑과 정의’라는 청년 예수의 가르침이 녹아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