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우 칼럼] 1907년 ‘평양 대부흥’은 사실 ‘평양 대회개운동’이었다
By 기독일보 편집부 (press@cdaily.co.kr)
입력 2019.08.06 09:17 AM
세종대 트루스포럼 황선우 대표.
1893년, 미국에서 파송된 마펫 선교사는 평양 만수대에 '장대현교회('널다리골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를 세운다. 1899년에는, 병인양요(1866) 때 토마스 선교사를 참수했던 박춘곤이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는다. 이후 1904년에 길선주 장로의 주최로 새벽기도회가 시작되고, 1907년에 길선주가 목사가 되면서 이 교회에서 대부흥, 아니 대회개운동이 열린다.
1907년은 신분제와 여성 차별로 가득했던 조선시대였다. 갑오개혁(1894)으로 신분제는 형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일할 땅과 교육권을 양반 출신들이 착취하고 있었기에 노비 출신들은 여전히 노예였다. 그리고 집회 장소가 작아 여자 교인들은 자신의 교회에서 따로 모이게 하고, 남자 교인들만 장대현교회에 모이게 할 정도로 여성 차별 역시 여전했다. 1월 6일을 시작으로 열린 장대현교회 집회에서, 양반과 남성들은 노비와 여성들을 괴롭혀온 것을 회개한다.
당시 순포(경찰)였던 방은덕은 장대현교회에서 집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1월 8일 집회에 찾아온다. 집회 중 사람들의 회개기도를 엿듣다 보면 범인을 많이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방은덕은 순포 일을 하다 말고 갑자기 회개를 한다. 방은덕이 표현하기로 “천당에 와서 죄인을 잡으려 한” 죄에 대해 고백한다. 범죄를 다루는 순포도 인간의 본질적인 죄를 다루지는 못했다. 집회를 이끌던 길선주 목사는 방은덕을 위해 기도한다.
1월 13일 집회는 유독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길선주 목사는 집회를 이끌다 말고 고백을 한다. “다 저 때문입니다.” 길선주는 친구의 유산을 몰래 가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계속 숨겨오다, 자신이 설교하던 이 집회에서 공개적으로 밝히며 회개한다. 집회 참석자들로부터 회개가 다시 터져 나온다. 부흥 역시 다시 타오른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부흥'이라는 것은 결과였다. '회개'가 없었으면 부흥은 있을 수 없었다. 회개로 가득했던 장대현교회 집회는 한반도의 교회 역사에 부흥을 가져다줬다. 그 부흥은, 1948년 5월 31일 대한민국 제헌국회를 기도로 시작하기까지 이끌었다. 그리고, 기독교인을 박해하던 조선을 신앙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게 했다.

평양 만수대에 위치했던 장대현교회.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앞 줄 가운데, 길선주 목사. 길선주의 왼쪽, 그레이엄 리 선교사(장대현교회 담임목사). 길선주의 오른쪽, 마펫 선교사(장대현교회 개척자).
그러나 오늘날, 평양의 장대현교회는 사라졌다. 1911년 105인 사건에서 일제가 조선의 신민회와 기독교인들의 항일 운동을 탄압할 때 장대현교회 교인들이 투옥된다. 그리고 1919년 3.1 운동에 길선주 목사와 교인들이 참여하면서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1945년에 조선이 독립한 이후에는, 장대현교회가 소련과 북한의 공산주의 치하에서 반공 투쟁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하지만 북한 정권에 의해 장대현교회는 무너진다. 그 자리, 평양 만수대에는 1972년에 김일성 동상이 세워진다. 2012년에는 김정일 동상도 함께 세워진다.
1907년의 장대현교회와 2019년의 김일성 부자 동상을 바라보는 한국 교회에게 필요한 건 뭘까?
2007년 부산에서, 1907년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기념하여 'again 1907' 집회가 있었다. 1907년의 부흥을 재현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하지만 부흥은 성공하지 못한다. 이 집회에는 1907년의 부흥에 대한 갈망만 있었지, 1907년과 같은 회개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게 필요한 것이 '부흥'이라고 볼 수도 있다. 부흥이라는 결과로서 김일성 부자 동상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다시 장대현교회를 세우는 것은 한국 교회가 소망해야 하는 바다. 성경책만 가지고 있어도 처형당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는 부흥은 한국 교회의 사명이다. 하지만 그 부흥을 이루기 위해 한국 교회가 해야할 일은, 1907년에도 그랬듯 '회개'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교회, 평화라는 이름 하에 북한 정권의 악함을 분별하지 않는 교회, 사랑만을 말하며 진리를 말하지 않는 교회가 해야할 일은 회개다. 교회가 앞장 서서 북한의 인권 실태를 더욱 알려야 하고, 북한 정권과의 분별 없는 연합에 분별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또한, 죄의 문제로 씨름하고 있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 역시 회개다. 1907년에도 그랬듯, 회개만이 부흥을 가져온다.
대한민국의 교회들이 일제시대에 신사참배하던 이들과 다른 결정하기를 바라며.
By 기독일보 편집부 (press@cdaily.co.kr)
입력 2019.08.06 09:17 AM
세종대 트루스포럼 황선우 대표.
1893년, 미국에서 파송된 마펫 선교사는 평양 만수대에 '장대현교회('널다리골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를 세운다. 1899년에는, 병인양요(1866) 때 토마스 선교사를 참수했던 박춘곤이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는다. 이후 1904년에 길선주 장로의 주최로 새벽기도회가 시작되고, 1907년에 길선주가 목사가 되면서 이 교회에서 대부흥, 아니 대회개운동이 열린다.
1907년은 신분제와 여성 차별로 가득했던 조선시대였다. 갑오개혁(1894)으로 신분제는 형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일할 땅과 교육권을 양반 출신들이 착취하고 있었기에 노비 출신들은 여전히 노예였다. 그리고 집회 장소가 작아 여자 교인들은 자신의 교회에서 따로 모이게 하고, 남자 교인들만 장대현교회에 모이게 할 정도로 여성 차별 역시 여전했다. 1월 6일을 시작으로 열린 장대현교회 집회에서, 양반과 남성들은 노비와 여성들을 괴롭혀온 것을 회개한다.
당시 순포(경찰)였던 방은덕은 장대현교회에서 집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1월 8일 집회에 찾아온다. 집회 중 사람들의 회개기도를 엿듣다 보면 범인을 많이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방은덕은 순포 일을 하다 말고 갑자기 회개를 한다. 방은덕이 표현하기로 “천당에 와서 죄인을 잡으려 한” 죄에 대해 고백한다. 범죄를 다루는 순포도 인간의 본질적인 죄를 다루지는 못했다. 집회를 이끌던 길선주 목사는 방은덕을 위해 기도한다.
1월 13일 집회는 유독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길선주 목사는 집회를 이끌다 말고 고백을 한다. “다 저 때문입니다.” 길선주는 친구의 유산을 몰래 가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계속 숨겨오다, 자신이 설교하던 이 집회에서 공개적으로 밝히며 회개한다. 집회 참석자들로부터 회개가 다시 터져 나온다. 부흥 역시 다시 타오른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부흥'이라는 것은 결과였다. '회개'가 없었으면 부흥은 있을 수 없었다. 회개로 가득했던 장대현교회 집회는 한반도의 교회 역사에 부흥을 가져다줬다. 그 부흥은, 1948년 5월 31일 대한민국 제헌국회를 기도로 시작하기까지 이끌었다. 그리고, 기독교인을 박해하던 조선을 신앙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게 했다.

평양 만수대에 위치했던 장대현교회.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앞 줄 가운데, 길선주 목사. 길선주의 왼쪽, 그레이엄 리 선교사(장대현교회 담임목사). 길선주의 오른쪽, 마펫 선교사(장대현교회 개척자).
그러나 오늘날, 평양의 장대현교회는 사라졌다. 1911년 105인 사건에서 일제가 조선의 신민회와 기독교인들의 항일 운동을 탄압할 때 장대현교회 교인들이 투옥된다. 그리고 1919년 3.1 운동에 길선주 목사와 교인들이 참여하면서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1945년에 조선이 독립한 이후에는, 장대현교회가 소련과 북한의 공산주의 치하에서 반공 투쟁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하지만 북한 정권에 의해 장대현교회는 무너진다. 그 자리, 평양 만수대에는 1972년에 김일성 동상이 세워진다. 2012년에는 김정일 동상도 함께 세워진다.
1907년의 장대현교회와 2019년의 김일성 부자 동상을 바라보는 한국 교회에게 필요한 건 뭘까?
2007년 부산에서, 1907년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기념하여 'again 1907' 집회가 있었다. 1907년의 부흥을 재현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하지만 부흥은 성공하지 못한다. 이 집회에는 1907년의 부흥에 대한 갈망만 있었지, 1907년과 같은 회개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게 필요한 것이 '부흥'이라고 볼 수도 있다. 부흥이라는 결과로서 김일성 부자 동상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다시 장대현교회를 세우는 것은 한국 교회가 소망해야 하는 바다. 성경책만 가지고 있어도 처형당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는 부흥은 한국 교회의 사명이다. 하지만 그 부흥을 이루기 위해 한국 교회가 해야할 일은, 1907년에도 그랬듯 '회개'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교회, 평화라는 이름 하에 북한 정권의 악함을 분별하지 않는 교회, 사랑만을 말하며 진리를 말하지 않는 교회가 해야할 일은 회개다. 교회가 앞장 서서 북한의 인권 실태를 더욱 알려야 하고, 북한 정권과의 분별 없는 연합에 분별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또한, 죄의 문제로 씨름하고 있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 역시 회개다. 1907년에도 그랬듯, 회개만이 부흥을 가져온다.
대한민국의 교회들이 일제시대에 신사참배하던 이들과 다른 결정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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