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년을 기념하며 교회가 파악한 바로는 한국에 1백년이 넘는 예배당이 5백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24 교회를 찾아 역사를 더듬고 사진을 찍었다.
- 사람 취급도 못 받던 백정이 장로가 된 승동교회
- 절처럼 생겨서 지나가던 승려가 "참 요상하게 생긴 절도 있네"라며 합장하고 지나갔다는 강화읍성당.
- 1915년 강화내리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다. .....이후 매년 5월이면 강화도 교인들은 연합하여 부흥회를 열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은 돌을 하나씩 들고 마리산에 올라가 산정상에 돌로 제단을 쌓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다. 마리산은 강화도의 갈멜산이다. p71
- 목재와 기와를 강화 본도에서 배로 실어 와 응개지 나루터에서 소달구지로 운반했다. 이때 소 두 마리가 과로로 죽고 말았다. 그래서 교인들은 이 교회를 '소 두 마리를 제물 삼아 지은 교회'라고 한다. 강화 서도 중앙교회
- 1866년 병인박해 때 끌려온 양반댁 규수들 역시 고문을 받고 배교를 강요당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며 고통을 감내했다고 한다. "내일이면 꽃을 피우리라" p103
- 새 예배당을 지으면서 처음으로 의자를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부인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건방지게 의자에 앉아 드릴 수 있느냐?"며 마룻바닥에 앉아 예배드렸다고 한다. 실제로 기독교 역사에서 의자가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천주교도 17세기 이후부터 의자를 사용했고, 동방정교회는 지금도 서서 예배를 드린다. p104
- 건축비 마련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했다. 비 내리던 어느 날, 기적이 걸어 들어왔다. 우산을 끼고 온 검소한 차림의 방문객이 드린 헌금으로 ㄱ자 예배당을 건축했고 挾傘者 예배당이라 불렀다. p159
- 새로운 예배처가 필요했다. 교인 이종구가 채마밭 백 여 평을 바쳤고. 군산 앞바다가 소나무를 내놓았다. 여름에 큰 물난리가 나서 안면도에서 소나무를 싣고 오던 배가 군산 앞바다에서 침몰해 소나무가 근처 성당포로 실려 온 것이었다. 그 나무들을 헐값에 사서 예배당을 건축했다. p181
- 유교와 불교 문화가 바다라면 안동교회는 그 위에 홀로 떠 있는 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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