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교회, 한국기독교 역사 사적지 선정…이바구길 명소 입소문

한강 이남 설립된 최초의 교회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 2018.01.26 19:46

- 독립운동·신사참배 반대 등
- 순교한 주기철 목사 첫 시무지
- 6·25전쟁 땐 피란민 수용소로
- 교인들 합심해 구국기도운동도

-교회 내 역사관에 관련자료 전시
- 연간 2000여 명 방문 인기 

한강 이남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부산 동구 초량교회가 최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역사위원회가 지정하는 ‘한국기독교 역사 사적지’에 선정됐다. 

지난 23일 부산 동구 초량교회 역사관에서 김인준 행정목사가 견학 온 송도제일교회 중등부 교인들에게 초량교회 126년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부산 동구 초량교회는 지난 24일 오후 교회당에서 ‘한국기독교 역사 사적지’ 제3호 지정 감사예배를 열었다고 밝혔다. 한국기독교 역사 사적지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역사위원회가 지정하며 제1호로 서울 승동교회, 2호로 김제 금산교회가 선정됐다. 이날 행사는 초량교회 담임 김대훈 목사 사회로 1부 예배가 진행됐고, 2부는 총회 역사위원장 김정훈 목사 사회로 ‘한국기독교 역사 사적지’ 지정식으로 이어져 지정증서가 전달됐다. 3부는 총회 역사위원회 부위원장 함성익 목사 사회로 ‘현판 제막식’이 열렸다. 

현재 부지에 1922년 건립된 옛 초량교회 건물. 초량교회 제공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역사위원회는 2015년 9월 제100회 총회에서 상설위원회로 조직됐다. 역사위원회는 6·25 전쟁 때 77명이 순교한 염산교회의 옛 예배당을 복원하고, 주기철 목사의 일제강점기 의성경찰서 수난 기념사업을 벌이며 한국기독교 역사 사적지를 발굴·보존·연구·지정하는 일을 펼치고 있다. 

초량교회는 1892년 11월 7일 미국북장로교 선교부 소속 윌리엄 베어드(William M. Baird, 1862~1931) 선교사가 현 중구 코모도호텔 부근인 ‘영서현’에 사택을 건축하고 사랑방을 예배처소로 개방해 선교함으로써 설립됐다. 초량교회의 전신인 이곳 ‘영서현교회’는 한강 이남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라고 총회 역사위원회는 설명한다. 베어드 선교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마산 진주 김해 상주 안동 경주 대구 목포 전주 등지로 광범위한 순회 전도여행을 다녔다. 

영서현교회의 교인이 늘어나면서 1912년 영주동 봉래초등학교 앞에 있던 동사무소를 매입해 교회당으로 사용했다. 이때 명칭이 ‘영주동교회’다. ‘영주동교회’는 1922년 호주 선교부로부터 현 위치의 대지를 구입해 새 건물을 짓고 이전했다. 이후 ‘초량 3·1교회’로 불리다 최종적으로 ‘초량교회’로 개명됐다.

일제강점기 초량교회의 목사와 교인들은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등 항일 구국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순교한 주기철(1897~1944) 목사의 첫 시무지로 이름이 높다. 주기철 목사는 목사 안수를 받은 직후인 1926년 1월 10일부터 1931년 7월 5일까지 초량교회 제3대 위임목사를 역임했다. 1926년 신사참배 반대 안을 경남노회에 제출했고, 노회는 신사참배가 우상숭배라고 결론짓고 가결했다. 그는 마산 문창교회로 이임 후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연행돼 투옥됐고 고문받은 끝에 1944년 옥중 순교했다.

초량교회 인근에 있던 백산무역회사(백산상회)에서 활동한 애국지사 중에도 초량교회 신도가 다수 있었다. 백산상회는 백산 안희제 등이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1914년 세운 회사로 상해임시정부 및 광복군을 지원하는 군자금 모금에 큰 역할을 했다. 초량교회 윤현태, 윤현진 형제 집사의 활약은 아직도 회자된다. 윤현진 집사는 백산상회가 후원한 독립자금 30만 원을 상해 임시정부에 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임시정부 재무 차장이 돼 재정을 총괄하기도 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초량교회는 전국 교역자와 교인들이 몰려 피란민 수용소로 기능했다. 교회 유치원은 휴원했고 뜰과 마당은 온통 천막으로 덮였다. 교인은 합심해 피란민 구호에 전력을 기울였다. 1950년 여름 초량교회에서 전국의 목회자와 성도가 국난 극복을 위한 금식 구국기도 운동을 전개했고, 기도가 끝난 9월 15일 기적처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다. 휴전 후 고향으로 돌아간 목회자들은 “인천상륙작전 성공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은 하나님의 은혜”라 간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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